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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휴업 Jul 02. 2024

2024/07/02

짧은 글 연습

  "귤 꽃이 무슨 색인지 알아요?"
  창 밖을 보며 감탄하는 내게 그녀가 물었다.
  "노란색?"
  "흰색. 봄이 되면 알게 될 거예요. 향이 참 좋아요"
  그녀는 나를 위해 귤 꽃을 준비한 것처럼 흐뭇한 표정이었다
  "어? 고양이예요. 봐요"
  그녀의 말에 나는 창너머로 고양이들을 구경했다. 귤나무 밑에서 얼굴이 동그란 갈색 고양이와 새끼 얼룩고양이가 금방이라도 도망갈 것처럼 기웃거렸다.
  "남자아이인데도 새끼를 끼고 다니네요. 신기한 일이에요"
  그녀는 고양이의 성별을 금방 알아봤다.
  "혹시 먹이 같은 게 있어?"
  나는 말했다. 그녀는 말린 황태를 가져와 고양이들에게 던졌다. 수놈 고양이는 새끼가 먹는 걸 기다리고 나서 자기도 먹었다. 나는 수놈 고양이에게 '겨울이', 새끼 고양이에게 '가을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겨울이는 사람을 경계하지만 가을이는 내가 글을 쓰고 있을 때 방 안으로 들어올 정도로 서스름이 없었다.

  그날 밤 그녀는 자신이 쓴 소설 하나를 보여주었다. 나와 같은 이름의 주인공이 나오는 글이었다. 그녀는 그 부분을 애써 지적하며 부끄러워했다. 나는 그 소설에서 어느 장애인 여성을 좋아하게 된 귤 농장의 농부였다. 그녀는 실제로 다리를 절었고 발음이 조금 어눌한 사람이었으니 자전적 소설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정말 시설에서 자란 건지는 차마 묻지 못했다. 잘 쓴 소설이었다. 너무나도 말이다. 지방소설가로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글은 중앙소설가의 그것이었다.

  "우리 엄마는요. 책을 참 좋아했대요. 엄마는 자신에게 좋은 문장을 써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같이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었대요. 근데 정작 결혼은 식장 주인이랑 한 거죠. 그래서 하루종일 야채를 썰고 설거지를 해야 했대요."

  섬으로 온 뒤 나는 매일 귤나무를 바라보았다. 가끔 가지치기를 하고, 꽃을 따고, 비료를 주고, 열매를 솎으며 귤밭을 돌아다녔다. 그러는 사이 귤꽃은 콩알만 한 청귤이 되었고, 청귤은 이내 노란 빛깔을 띄게 되었다. 그해 겨울 집 앞 귤나무에서 딴 귤을 먹고 나는 놀랐다. 그 귤은 섬의 사계절을 머금고 있었다. 이듬해 나는 아버지의 식당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족의 과거를 청산하여 나의 미래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거라면 한동안 돈 걱정은 없을 것이다.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나는 평생 그 옆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글연습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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