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침대에 몸을 뉘인 채로 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혼잣말이었다. 저기 가장 밝게 빛나는 건 별이 아니라 위성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던 것 같은데. 감기가 온 탓인지 며칠 동안 몸살을 앓았다. 병원에 가보라는 동기의 말에 아침부터 내과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했다. 입동이 지난 지는 오래였지만 한동안은 포근한 날이 이어졌다. 기후문제가 심각해진 탓이었다. 작년 겨울에는 뭘 했더라. 이제 가을이 길어지고 겨울이 짧아진다는데. 그 잘났다는 세계적인 석학들이 뭐하고 있는 거야 대체. 기후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하는 건가. 그들이 실패하면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고? 나야 항상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놈이고 여분의 옷이라고는 서너 벌이 전부였이니 계속 같은 날씨가 유지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맨날 똑같은 청바지. 똑같은 셔츠.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며 이 날씨에 그런 꼴로 다니니 감기에 걸리는 거라며 다그치셨다.
- 어머니, 대문호 한강 작가 님을 보시지요. 원래 정신세계에 심취하는 사람은 자신의 껍데기에 집착하지 않는 법입니다.
나의 답에 어머니는 헛소리 그만하고 옷이나 사 입으라며 카드를 던져주셨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에잇세컨즈로 달려가 팬티 7개와 양말 7짝을 구입했다. 이후 나는 초밥집으로 달려가 특모둠초밥 두 쟁반을 시켰고 혼자 앉은자리에서 그걸 다 처먹었다.
오후에는 아이와 아이엄마를 만났다. 병원시간이 조금 애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애당초 선약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병원을 예약한 나의 잘못이었다. 아이가 잠시 편의점에 간 사이 아이엄마는 만나는 사람이 생겼다고 나에게 말했다. 같은 방송국의 후배라고 했던가. 매번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는 수수한 청년이라는 말과 함께였다.
- 요즘 같은 시대에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는 사람이라니. 왠지 좋은 사람일 것 같네.
나의 대답에 그녀는 조용히 미소만 지을 뿐 별다른 답은 하지 않았다. 아이를 태운 자동차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갈 때 조수석의 창문이 열렸다. 아이의 얼굴 너머로 그녀가 몸 좀 잘 챙기라며 인사를 건넸다. 내가 손을 흔들자 아이도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삐뽀. 어디선가 멀리 신호등 알림 소리가 울리고 있었고 자동차 달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병원에 갈 시간은 이미 지나있었다. 나의 작은 차에 몸을 싣고 매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늘을 보았다. 차가 작은 탓이었을까. 하늘이 좁아 보였다.
어딘가의 노승이 세상을 바꾸겠다며 자신의 몸을 불태웠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가을 같은 날씨가 계속 이어진 덕에 매장에는 손님이 넘쳐났다. 하루에만 2000만 원을 팔았다. 이번 달 본점 매출만 해도 4억은 될 것이다. 솔직히 내가 먹고살기 좋으니 기후위기 따위야 어떠한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깐 결국 나란 놈은 이 정도밖에 되지 못하는 놈이었다. 몸을 불태울 의지도 없으면서 방구석에 앉아 기후위기나 걱정하면서도 밀려드는 손님 앞에서는 현실을 놓지 못한다.
퇴근하는 길에 야간 진료를 하는 병원을 찾아 다시 진료 예약을 했다. 하얀 별이 뜬 밤 창가에 누워 차가운 공기에 머리를 기대어 도시의 소리를 듣는다. 행성 주위를 얼쩡거리며 그 빛을 반사하는 위성은 별의 꿈을 꾼다. 새로 산 양말과 팬티에 기분이 좋아지면서도 아우터 한 벌로 겨울을 버티는 나의 모습이 있다. 불가해한 세상 속에서 삶이 망가진 채로 의미 없이 주머니나 채우는 나를 바라본다. 몸이 나아지면 올겨울이야 말로 나의 작은 차를 타고 바다에 가겠다. 눈 내린 모래사장 앞에서 설탕을 가득 채운 뜨거운 코코아를 마시겠다. 하얀 별이 떴다.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