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요청의 의도 파악하기
우수 영업사원을 위한 1박 2일 워크숍 운영을 우리 팀이 맡았다. 2월에 행사를 진행해 보라는 지시가 떨어졌는데 2월에는 행사를 운영할 연수원 예약이 가득 차 있는 상황이었다. 담당자는 장소를 바꿀 수밖에 없다고 보고했다. 팀장은 정색하며 호통을 쳤다.
"행사 내용을 기획하기도 전에 장소 확보부터 실패했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매년 비슷한 행사가 진행되는데 미리 장소부터 예약해 놨어야죠."
팀장의 어이없는 질책에 팀원들 모두가 입을 비쭉 내밀었다. 올해 따라 연수원 예약이 이렇게 많아지리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팀원들은 별도로 모여서 어떻게 이 문제를 처리할지 논의했다. 그때 누군가가 질문을 던졌다.
"왜 꼭 2월에 행사를 진행해야 합니까? 그리고 왜 꼭 연수원에서 행사를 진행해야 하죠? 지방의 연수원까지 오려면 불편한 분들도 많을 텐데요."
일의 자초지종은 이랬다. 최고경영자는 연초 행사를 통해 올해의 마케팅 전략을 영업사원들과 논의하고 싶었다. 전년도 실적 분석 등 다른 행사가 많으므로 1월은 피하고 2월로 행사 시기를 정했다. 이 행사에는 외부 손님들이 참관하기로 되어 있는데 최고경영자로서는 이 기회에 우수 기관으로 상을 받은 회사 연수원을 손님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우리는 의견을 모아 팀장에게 대안을 제시했다. 연초 마케팅 전략을 공유하는 행사는 3월에 해도 늦지 않다. 다만, 1개월은 연기하는 명분이 있어야 하므로 3월 신상품 출시 일정에 맞춰 행사를 준비하고 신상품 프로모션 안내를 행사와 같이 진행하기로 기획안을 작성했다. 이런 아이디어는 적중했고 팀장은 물론 최고경영진까지 일사천리로 결재가 이루어졌다.
일의 배경을 이해하면 답이 완전히 달라진다. 만일 우리 팀이 2월에 행사를 강행하기 위해 외부 고객사에 연수원 사용 일정 변경을 요청했으면 어땠을까? 막대한 노력이 들어갔어도 일정 변경 동의를 얻어내기는 힘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해당 회사의 처지에서도 이미 직원들에게 공지해 둔 교육 일정을 변경하기는 어렵다.
팀장의 업무 지시나 타 부서의 협조 요청은 반드시 목적과 배경을 파악하도록 한다. 의도를 이해하면 훨씬 다양한 해답이 나올 수 있다. 그 의도의 범위 안에서 고객이 만족할 다른 답을 줄 수 있다. 의도를 아느냐, 알지 못하느냐에 따라 답의 가짓수가 달라진다.
때로는 일의 최종 소비자가 업무를 요청한 사람이 아닐 수 있다. 위의 사례에서 외부 VIP가 고객 리스트에 추가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장소를 바꾸는 것은 대안이 되지 않는다. 일정을 바꾸더라도 장소는 꼭 연수원이어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일의 최종 소비자가 누구인지 알면 일의 방향이 훨씬 명확해진다.
이 정도 되면 슬슬 질문이 하나 떠오르게 마련이다.
'그럼 왜 팀장들은 처음부터 의도를 말해주지 않지? 그랬다면 팀원들이 훨씬 쉽고 빠르게 대안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상사는 그렇게 쉽게 일의 목적과 배경을 말해주지 않는다.
왜일까?
팀장은 팀원이 나와 비슷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착각한다. 우리는 흔히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남도 알고 있을 것이라 넘겨짚는다.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지만, 눈치껏 파악할 수 있으리라 추측한다.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도 이런 상황을 자주 마주한다. ‘내가 왜 이렇게 불만인지, 틀림없이 저 사람은 잘 알고 있을 거야. 그러면서도 저렇게 행동한단 말이야!’ 생각할수록 점점 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상대는 우리의 마음을 전혀 모른다.
의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의도가 맞는지 확신할 수 없고, 짐작한 의도가 틀릴 수도 있다. 팀원은 잘못된 짐작으로 일을 그르칠 수 있으니 의도를 예측하기에는 조심스럽다. 따라서 일을 지시할 때는 일의 배경과 목적을 분명히 해 주는 편이 좋다.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이렇게 친절하게 먼저 정보를 주는 리더는 매우 드물다.
먼저 의도를 말하기에 미묘한 상황도 있다. 임원에게 지시받은 일인데 팀장이 생각하기에도 무리한 요구라 여겨진다. 직접 이야기하면 팀원들이 반발할 것이 뻔하므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말을 빙빙 돌리게 된다. 예를 들어, 상무님은 직원들을 위한 연례행사에 직원 가족까지 초대하고 싶었다고 한다. 노인과 어린이들이 다수 포함되면 식사, 안전사고, 이동 수단 등을 섬세하게 챙겨야 하므로 실무자 처지에서는 곤란한 일이다. 이런 의도를 일부러 감추고 팀장이 ‘행사 규모를 좀 늘리는 것은 어떨까?’라고만 의도를 전달한다. 서로가 핵심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니 업무 논의가 겉돌게 된다.
팀장은 바쁘다는 핑계로 큰 방향만을 언급하곤 한다. 업무 목적과 배경은 실무자가 고민을 통해 스스로 간파하라며 실무자의 책임으로 미룬다. 팀장이 실무자일 때도 일의 배경을 상세히 알려주지 않고 일했으므로 업무 지시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셈이다. 시간에 쫓겨 상세한 이야기를 나눌 여유를 갖지 못하는 팀장도 많다. 그 외에도 처리해야 할 안건이 많으므로 빨리 핵심 전달하고 다른 일로 넘어가고 싶어 한다. 따라서 센스가 있는 팀원은 질문을 통해 팀장이 가진 정보를 최대한 확보한다.
우리가 착각에 빠지기 쉬운 함정이 하나 있다. '팀장은 바쁘고 정신이 없으므로 업무 지시를 그대로 듣기만 하는 편이 낫다. 질문은 귀찮아한다.' 이렇게 단정 지어 버린다. 의외로 팀장이나 임원은 질문을 좋아한다. 그러니 일단 물어보자. '뭐 저런 것까지 물어하지?'하고 생각하는 팀장은 드물다. 오히려 적정한 질문을 통해 본인에게 필요한 팩트를 찾아가는 팀원을 대견하게 느낀다.
"팀장님, 꼭 2월에 행사를 진행하려는 이유가 있을까요? 장소는 꼭 연수원이어야 하는 건가요? 외부 VIP들께서 방문하신다는데 좀 더 격식 있는 장소가 낫지 않을까요?"
분야와 상관없이 높은 성과를 올리는 세일즈맨은 질문을 잘 활용한다. 사람은 누구나 듣기보다는 말을 하고 싶어 한다. 질문을 통해 상대방이 진심을 털어놓게 하면 거래가 성사될 확률이 커진다. 마음을 열고 말을 시작하게 만들기가 어려울 뿐이다. 적절한 질문은 상대방이 대화의 주도권을 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상대의 말이 많아질수록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질문을 하면 팀장의 시간을 뺏는 것이 아닐까 우려가 된다. 나 같은 주니어가 반복해서 질문하는 것이 예의를 벗어나는 일이 아닐까 걱정도 된다. 그렇지 않다! 고객이든 상사든 연인이든 질문을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는 누구나 상대방이 말할 기회를 주고 들을 준비를 해주기를 바란다. 질문은 상대방에게 키를 넘겨주는 행위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너무 직접적으로 질문을 하면 곤란하다. "그럼 결국 행사를 사장님 취향에 맞추라는 거죠?" 이게 비록 사실이라 하더라도 예의와 존중의 범위를 넘어서는 질문은 조심한다. 간접적으로 목적을 파악하는 편이 낫다. "사장님께서 모시고 오는 VIP들께서 만족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팀장의 의견을 먼저 물어보면 좋은 질문 전략이 된다. "팀장님께서는 행사 날짜를 변경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간접적으로 숨어 있는 의도를 파악하기 좋다. 팀장은 자기 의견을 내기 전에 우리가 모르는 배경 정보를 고려한다. 따라서 팀장의 의견이 일의 제한 사항들을 포함한다고 생각해도 좋다. "글쎄… 적당한 이유가 있다면야 날짜를 변경하는 쪽으로 사장님을 설득해 볼 텐데 말이에요." 팀장의 이 말은 날짜 변경이 가능하지만, 명분을 만들어 달라는 뜻이다.
그 자리에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제안해 보아도 좋다. 물론 그 아이디어가 채택될 가능성은 매우 적다. 제안을 통해 참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목적이다. "장소는 연수원으로 하되, 다른 날짜를 말씀해 보시면 어떨까요? 아니면 원하시는 일정대로 진행하되 좀 더 격식 있는 장소를 제안해 보시죠." 이런 인스턴트 아이디어에 팀장이 대답한다. "장소는 꼭 연수원이어야만 해요. 외부 VIP들에게 연수원을 소개하려는 목적도 있거든요." 그러면 '아, 그런 목적이 숨어 있었구나!'하고 판단할 수 있다.
일을 빠르게 효과적으로 끝내고 싶은가? 그러면 의도를 간파하고 일을 시작한다. 의도를 간파하는 열쇠는 바로 '질문'이다. 팀장의 업무 지시에, 유관 부서의 업무 협조 요청에, 연인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질문을 활용해 보자. 누구도 질문을 한다고 뭐라는 사람은 없다.
내 마음을 몰라 준다고 서운해하는 사람은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