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찍힐까봐 부캐를 만든다고?

회사는 직원의 딴짓을 허하라

by 임희걸

직장인이면서 책을 쓴 작가의 북토크에 참여 신청을 했다. 책쓰기는 내 평생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다. 회사에 다니는 것만도 바쁜데, 시간을 쪼개 책을 쓰다니, 대단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한참 강연을 듣다보니 책에 쓰여있는 저자의 이름이 본명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강연이 끝날 무렵, 질문을 하라는 진행자의 말에 나는 번쩍 손을 들었다.


“필명을 따로 정하신 건, 부캐에 특화해서 책을 쓰기 위해서인가요?”


그런데 작가는 의외의 대답을 들려주었다.


“아니요, 사실 그렇게 심오하게 생각한 건 아니고요. 회사에서 일은 안 하고 딴짓한다고 찍힐까 봐서요. 저희 윗분들이 책 쓰고 그런 걸 좋아하시지 않아요.”


정말 너무너무 실망이었다. 브런치 작가 중에서도 필명으로 출간하신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그 분들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 이유를 해석했다. 필명을 쓰는 이유는 평소의 평범함을 버리고 부캐를 투영하여 전혀 다른 글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단순히 회사에서 모르게 하기 위함이라니. (물론 그런 이유로 필명을 쓰는 브런치 작가는 일부일 것이다.)


더욱이 그 작가는 ‘직장인이 보고서를 잘 쓰는 법’에 대한 책을 펴냈다. 사내 전문가로 선정해 직원 육성을 돕도록 하고 상을 줘도 모자랄 판이다. 일을 게을리했다고 안 좋은 시각으로 보다니, 정말 안타까울 뿐이다.


같은 회사원으로서 작가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대한민국의 회사들은 유독 부업을 싫어한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도 조금이라도 부업 비슷하기만 해도 아니꼬운 눈으로 바라본다. 대다수 회사는 사규를 통해 회사 일 외에 다른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심지어 자기 계발도 현재 직무와 직접 연관이 없으면 딴짓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4차 산업혁명 시대지만 개발자가 아닌 일반 관리직이 IT 시스템 개발 관련 교육을 신청하면 상사의 결재를 통과하기 어렵다. 당장 외국어가 필요한 회사가 아니라면 어학 교육 지원도 머뭇거린다.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지원해 주는 교육에 참여하면서도 눈치를 보아야 한다. 팀장은 직접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지만, 은근슬쩍 싫은 기색을 비친다.


“한 참 바쁠 때인데, 당장 필요하지 않은 교육을 가야만 하나…”


실제로는 부업이나 그 외의 ‘딴짓’이 업무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의 공부는 학자들이 발견한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일터에서는 공부는 경험을 통해 일이 되게 만드는 원리를 깨닫는 과정이다. 경험이 풍부할수록 복잡한 상황에서 최적의 문제 해결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 부모님은 늘 어떤 것이라도 좋은 경험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시도해 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불필요한 경험이란 없다. 당장 쓸 데가 없어 보이더라도, 경험하고 배워두면 언제가 큰 자산이 된다.”




후배인 B 대리는 대학 시절 만화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처음에는 만화 습작 그리기를 하다가, 나중에는 웹에서 만난 동호인들과 <만화 동인지>를 만드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동인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포토샵을 다루는 기술이나 잡지 인쇄와 관련된 을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인사팀에서 채용 담당자로 일하게 된 B 대리는 지원자들에게 배포할 채용 브로슈어를 전담해서 제작했다. 그동안 채용 브로슈어는 디자이너, 편집자, 인쇄 회사까지 거쳐야 했기 때문에 수 천만 원이 드는 과정이었다. B 대리는 그 과정의 상당수를 직접 해냈고, 덕분에 비용의 70%를 절감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회사는 근면과 성실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과거 생산자 우위의 시장에서는 열심히 만드는 과정이 중요했다. 시장이 계속 커졌기 때문에 품질이 좋은 제품을 빠르게 만들기만 하면 됐다. 근면과 성실을 기치로 최대한 노동 투입량을 늘리는 경영으로 효과를 보았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수요자 중심의 시장에서는 그냥 부지런히 열심히 제품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통하지 않는다.


지금은 경영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고, 조금만 머뭇거리면 경쟁자가 시장을 독차지하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서 주도적으로 혁신하는 직원이 있어야 조직이 살아남는다. 직원 하나하나가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재빨리 파악하고 민첩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업무에 접목해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직원이 필요하다.


직원이 부업을 하도록 열어주면 기업은 가만히 앉아서 값비싼 경험 자산을 얻을 수 있다. 직원이 부업으로 새로운 분야를 경험하고 그 노하우를 일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 차원에서 신규 인터넷 쇼핑몰을 열었다가 실패하면 큰 손해를 입는다. 이럴 때 부업으로 쇼핑몰 운영을 경험해 본 직원이 있다면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과연 직원의 딴짓을 허용하는 것과 금지하는 것 중에서 과연 어느 쪽이 더 위험한 일일까?




보수적인 기업 문화에 있어서 우리 못지않은 일본 기업이지만 부업에 관해서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있다. 2020년 기준으로 전체 기업의 절반 정도가 공식적으로 부업을 인정한다. 닛산, 파나소닉, 소프트뱅크와 같이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모두 부업을 허용하고 있다.


많은 기업이 직원의 부업을 용인하는 것은 일본 경제가 더는 이전과 같이 높은 성장을 할 수 없고, 그 때문에 직원들이 만족할만한 보상을 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승진, 연봉 인상 등 보상을 줄일 수밖에 없는 기업으로서는 부업을 통해 모자란 수입을 충당하도록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도 기업의 성장 속도가 점점 떨어지는 상황에서 언제까지나 직원들에게 높은 연봉을 약속할 수는 없다. 그러니 직원의 부업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일본 기업들은 막상 부업을 허용해 보니 직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기 때문에 신사업 기회를 더 잘 포착하게 되었다며 기뻐하고 있다. 부업이 당장 업무와 연관되지 않더라도 직원의 비즈니스 안목을 키우는 간접적인 효과도 있었다. 특히, 연봉 1억 원 이상의 프로페셔널 직장인일수록 부업을 경험한 사람이 많다. 부업을 통해 새로운 사업 경험을 쌓고 이를 다시 본업에 활용해 높은 업무성과를 내기 때문이다.


최근 조직의 구성원들은 ‘왜 일하는가?’ 하는 일의 의미에 주목하고 있다. 사람이 일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생계를 유지하고 ‘경제적인 만족’ 얻기 위해 일하기도 하고, 일을 통해 타인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관계’ 때문에 일하기도 한다. 역량을 개발하여 자신의 ‘성장’을 보는 기쁨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MZ 세대 중에서는 훌륭한 경력을 쌓아 언제라도 새로운 곳에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고용가능성’을 중요시하는 사람도 있다. 본업만으로는 구성원이 추구하는 일의 의미를 모두 만족시키기 어렵다. 대한민국 기업은 근면, 성실만이 덕목이 되는 세상에서, 보다 역동적으로 일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는 세상으로 바뀌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직장인들도 자기 계발이나 부업과 같은 사이드 프로젝트의 방향에 대해서도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다. 평소 동료들에게 회사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것을 중요성에 대해 많이 조언하는 편이다. 가끔은 이미 자기 계발에 힘쓰고 있다는 동료를 만난다. 그들의 대답은 예외 없이 두 가지 중 하나다.


“영어 공부를 해요.”

“공인중개사 준비를 하고 있어요.”


부업에 관해서도 크게 2가지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퇴근 후에 배달 라이더를 해 볼까 하고.”

“유튜버가 어떨까?”


심지어 MZ 세대 후배들도 이러한 뻔한 대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MZ 세대는 개성이 강하고 주관이 뚜렷하다는데 그들도 한국인이라는 특성에서 벗어나지는 못하나 보다. ‘남들이 다 좋다는 거라면, 나도 해야만 한다.’라는 한국인의 특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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