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읽은 거래처 직원

고객 응대의 고수가 된 영업사원

by 임희걸

영업의 고수


영업의 고수는 고객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업무는 같이 처리해 주기 때문에 마치 내 마음을 읽힌 듯한 기분이 든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연관 업무가 필요하다는 점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일을 하는데 바쁜 초보는 연관 업무까지 생각하며 일하지 못한다. 이게 고수와 초보의 차이다.


교육 부서는 교재를 다루기 때문에 인쇄 회사와 많은 거래를 한다. 이때 해당 회사의 담당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업무 처리 속도가 크게 달라진다. 담당자가 고수인 경우 내 일이 크게 편해진다.


우리가 이용하는 인쇄 전문 회사의 영업사원, K 대리는 고객 응대의 고수였다. 교재를 만드는 일은 업무 특성상 수시로 오타 수정이나 디자인 변경을 부탁한다. 나는 덤벙거리는 편이어서 수정 사항을 전달한 후에는 금세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K 대리는 내가 의뢰한 내용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임 과장님, 이번 디자인 수정은 이틀 전 수정해달라고 하신 부분을 반대로 고치라는 것이네요. 혹시 착오가 있으신 것은 아닐까요? 과장님께서 실수하실 리는 없지만, 혹시 제가 잘못 알아들었나 해서요."


"그래요? 확인해보니, 대리님 말씀이 맞네요. 이 페이지가 아니고 다른 페이지를 수정했어야 하는데 큰일 날 뻔했군요. 어떻게 그렇게 기억을 잘하세요?"


K 대리는 상당히 많은 고객과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세세한 사항까지 챙겨주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다 기억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빙그레 웃고 자세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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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서야 J대리가 고객의 세세한 요구를 기억하는 요령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저는 고객사 담당자들의 요청 사항을 유형별로 분류해서 메모합니다. 요청 사항의 종류가 얼핏 복잡해 보여도 분류해서 묶으면 몇 가지 유형으로 모이더라고요. 문제별 어떤 해결 방안을 고객이 좋아하셨는지도 잘 적어둡니다. 고객들의 문제가 비슷비슷한 패턴을 띄거든요. 이렇게 하면 기억하기도 쉽고 미리 정해진 솔루션에 따라 바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요."


더욱 놀라운 점은 말을 하지 않은 일도 미리 해주는 점이다. 우리가 맡긴 일이 끝나 교재가 최종 납품이 이루어지면 K 대리는 알아서 필요한 서류 일체를 보내주었다. 납품일이면 어김없이 세금계산서, 세부 명세가 기록된 남품명세서, 인쇄에 사용한 디자인 파일을 메일로 보내왔다. 처음에는 인쇄 회사의 IT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 자동으로 일을 처리한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정확하고 빈틈없는 일처리였다.


"IT 시스템이요? 저희 회사는 영세한 인쇄소인걸요. 그런 시스템을 만들 돈이 어딨어요." K 대리는 그렇게 말하며 웃을 따름이었다.


인쇄 같은 절차가 단순해 보이는 업무에도 많은 단계가 얽혀있다. 예산 담당 부서에 적법하게 예산이 지출되었는지 증명을 해야 한다. 회계부서에는 금전 지출에 문제가 없었는지 보고하고, 부가가치세를 납부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요즘에는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용 전자책 파일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교재를 인쇄하는데 쓰였던 디자인 파일은 형식을 변환하여 스마트 기기용으로 변환한다.


이 과정에서 일 못하는 담당자 서로 만나면 최소 5번 정도의 서류 요청을 해야 한다. 예산 담당 부서에 확인해 줄 견적서와 인쇄 기획서, 회계부서에 전해줄 지출증빙, 국세청에 제출하는 세금계산서, 업로드용 디자인 파일 등... 전화를 해서 요청하고 다시 문서를 받고, 내부 보고를 하는 과정이 줄줄이 이어진다. 참 아까운 시간이 이런 단순 업무로 소모된다. K 대리처럼 관련 문서를 한 번에 보내주면 며칠에 걸쳐 조금씩 처리할 일이 단 번에 해결된다. 고수는 문제의 뒤에 숨어있는 세계의 심층적 구조를 볼 줄 안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문제의 해법을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초보에 비해 해법의 종류와 깊이가 완전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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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만 보는 초보는 어떻게 고수가 될까?


고수들은 오랫동안 경험을 갈고닦아 머릿속에 체계적인 지식 구조를 만들어낸다. 문제 해결을 할 때 이 구조화된 지식 체계를 사용하여 솔루션을 꺼내 사용한다. 반대로 초보는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만을 본다. 초보의 머릿속에서는 지식이 구조를 이루지 못하고 흩어져 있다. 문제를 관통하는 해법을 쉽게 찾지 못한다.


초보는 문제를 하위 범주로 잘게 쪼개려고 애쓴다. 문제의 원인을 명확하게 짚어내지 못하다 보니 잘게 쪼개면 원인을 발견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진단을 하려면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복잡하게 얽힌 상황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잘게 쪼갠 상태에서 문제를 보다 보니 원인이 잘 보이질 않는다. 전체를 파악하면 문제가 정확하게 보인다.


초보자는 문제 해결을 위한 전략을 세우지 않고 우선 부딪혀본다.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니 명쾌한 해결 전략을 세울 수 없다. 전략과 계획 없이 일하면 하지않아도 되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얼마 가지 않아 제풀에 지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일의 고수는 어떻게 체계적인 구조를 이해하고 있을까? 자기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는 과정은 산을 오르는 과정과 비슷하다. 아직 올라보지 않은 산은 쉽게 그 형태를 짐작하기 어렵다. 반복해서 산을 오르면서 산의 전체 형태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을 하게 된다. 더 많이 산을 오른 고수일수록 산의 형세, 지형, 오르기 쉬운 곳을 알게 된다. 한 분야에서 다양한 상황을 겪으면 일과 관련된 지식이 쌓이기 마련이다. 단순히 경험과 지식을 축적하는데 그치지 않고, 하나의 구조 체계를 만들면 일의 고수가 된다.


우리는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을 모두 똑같이 이해하지 않는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라는 과학적 사실도 사람마다 그 원리를 다르게 이해한다.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이 각자 다르기 때문에 현상에 대한 해석과 반응도 서로 다르다. 따라서 산의 형세를 어떻게 파악하느냐도 차이가 발생한다.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해석과 견해를 내놓는다. 내 업에는 고수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절대 고수 1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다른 산의 모습을 알고 있는 여러 명의 고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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