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이 변화 부적응자를 만든다
“상무님, 단기간에 우리 영업본부를 구해낼 방법은 없습니다. 5년 뒤를 보고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쟁사들, 나날이 치밀해지는 규제와 법률,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고객 감소.
우리 회사의 영업 본부는 악조건 속에 실적 정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수년간 반복된 실적 악화에 직원들은 뭘 해도 안 된다는 부정적 생각에 빠져있었다. 젊은 직원들의 인사 발령 신청이 줄을 이었다. 상시 실적 부전에 빠져있는 사업본부에서는 일의 보람을 느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매년 사업계획을 세울 때가 되면 본부의 문제가 무엇인가 난상 토론이 벌어지곤 했다. 그때마다 결론은 늘 같았다. 조직이 구조적인 악순환에 빠졌는데 단기간에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따라서 직원들은 단기 성과가 악화되더라도 조직 체질을 개선하는 장기적인 방안을 찾자고 건의했다.
한참을 토론 내용을 듣고 있던 영업본부의 수장, D 상무가 한 마디를 던졌다.
“그래, 5년 뒤를 바라보는 전략 말은 참 좋다. 그런데 그런 전략을 내세웠다가 올해 실적이 더 떨어지면 내가 내년에 여기 없게 된다. 내가 없애진 뒤에나 먹힐 전략을 택할 것 같아!”
조직을 책임지는 임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그 말을 들은 직원 모두가 의욕을 잃은 눈빛이 역력했다.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단순히 생존만을 선택한 사람은 모순에 빠진다. 현재의 자리를 지키려고 애쓸수록 퇴보하는 모순이다. 자신은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계속 발전해 나가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으면 상대적으로 뒤쳐지게 된다.
뒤처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면 그때부터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두려움에 빠져 매사에 자신을 방어하려는 말과 행동이 먼저 나온다. 선배 중에 늘 두렵고 걱정이 많아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발전보다는 수성을 선택할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늘 긍정적인 혁신을 감행하는 리더를 기다린다. 경영 서적에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문제 투성이인 조직에 혁신가라 불리는 CEO가 부임한다. 그의 뚜렷한 혁신 전략에 처음에는 구성원 모두가 저항한다. ‘오랫동안 내려온 관례와 나쁜 관습이 쉽게 바뀔 리 없다.’ 직원들은 새로운 리더의 실패를 점친다. 하지만 계속해서 구성원을 설득하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에 직원들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인다. 결국에는 조직 전체가 변하기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현실에는 이런 혁신적 리더가 없다. 수많은 리더를 만났지만 책에 나오는 혁신가는 없었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스토리가 흔하다.
새로 부임한 CEO가 조직을 근본적으로 바꿔보겠다고 선언한다. 직원들은 사장이 바뀔 때마다 매번 있는 일이니 그러려니 한다. 초반에는 몇 가지 변화의 조짐이 조금 보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장의 혁신은 강도가 약해진다. 그렇게 이번 리더도 임기가 끝난다. "역시 우리가 맞았어." 직원들은 쓴웃음을 짓는다.
왜 조직은 그토록 변화에 저항하는가? 나는 어느 조직이든 기득권을 가진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제도와 정책으로 지속적인 수혜를 입는 계층이 있다. 이들에게 변화란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 오랫동안 누려왔던 혜택을 쉽게 포기하기 어렵다.
‘우리 조직의 핵심 인물들에게는 뚜렷한 기득권이 보이지 않는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기득권은 단순히 금전적, 물질적 이득만이 아니다.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득권이 만들어진다. 조금이라도 더 힘이 있는 부서, 영향력이 큰 직무도 기득권에 해당한다.
늘 대립하는 인사팀장과 총무팀장이 있다. 부서 간의 의견 차이가 생길 때면 늘 인사팀장이 권위가 승리한다. 여기에는 물질적 기득권은 개입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일이 반복되면 인사팀장에게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 생긴다. 인사팀장은 상황이 변화되어 자신의 위치가 바뀌기를 원치 않는다. 따라서 조직에 개혁이 필요할 때에는 어떻게든 저항하는 모습을 보인다.
인사 평가와 연봉 인상, 승진... 이런 것만이 기득권이 아니다. 일을 하는 중간중간 은연중에 이루어지는 <권력의 무게 중심>이 가장 큰 기득권이 된다. 때로는 리더의 눈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되면 기득권을 잃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한 리더십 강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것을 강권하면 그는 <꼰대>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과거에 아무리 잘해 왔더라도 자신의 방법을 계속 고수하려고 하면 <변화 부적응자>가 됩니다."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없다. 그러나 기득권, 인정, 타인의 부러운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욕심을 부리다 보면 사람이 변한다. 조직 전체가 어떻게 되든 직원이 어떻게 되든, 내 자리가 가장 중요한 리더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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