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중단한 글을 남기지 말자
브런치 작가의 서랍... 여기에 한 번 저장하면 이어서 쓰기가 쉽지 않다. (브런치 측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
적어도 내 경우는 쓰기를 멈추면 다시 시작하기가 꽤 어렵다. 어떤 때는 저장한 글을 며칠 뒤에 열어보고 이게 내가 쓴 글인가 싶을 때도 있었다. 원래 글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한 글감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메모장을 살펴보고 이런저런 기억을 떠올려봐도 뭘 쓰려했는지 도통 모르겠다. 이전에 글을 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인 듯 싶기도 하다.
특정 주제에 꽂혀 한창 열정적으로 글이 써질 때가 있다. '사내의 롤 모델로부터 배우기'라는 주제에 꽂힌 때가 있었다. 웹에서 관련된 글을 찾고 연관 분야의 책을 섭렵한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열심히 메모를 한다. 이런 때는 글쓰기 진도가 쭉쭉 나간다. 글에 막히는 지점이 별로 없다.
안타깝게도 이런 경험은 흔치 않다. 대부분의 글은 막히는 지점이 생긴다. 논리 전개 상 아이디어나 재료가 부족한 지점이 나타난다. 나중에 퍼즐 조각을 채워 넣자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며 작가의 서랍에 일단 저장을 해 놓는다. 적어도 일주일 안에 다시 쓰지 않으면 그 글은 아주 쓰지 못하게 된다. 지금도 그렇게 처박아 놓은 글이 5~6개가 있다.
처음부터 글 구조 작성이 끝나지 않아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얼레 설레 끼적여 놓은 글은 최악이다. 도대체 왜 여기 이런 문장을 써 놓은지 이해할 수가 없다. 왜 서두에 이런 예화가 들어가게 되었는지, 왜 결론에는 이따위 뻔한 말들을 늘어놓는 건지 과거의 나를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과거의 나야, 도대체 너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더 거니.'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뭘 쓰려했는지 떠오르질 않는다.
지금은 작가의 서랍에 저장한 글이 3편을 넘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일단 끝까지 쓰려고 한다. 참고 자료도 부족하고, 글 전체의 논리 구조가 명료하지 않더라도 아쉬운 부분을 건너뛴 채 마무리해 버린다.
어쨌든 마무리를 해서 발간한 글은 한 편의 완성된 결과물이 된다. 브런치에 내 작품수를 하나 늘릴 수 있다. 이렇게라도 해 놓으면 큰 위안이 된다. 브런치는 글 수가 내공을 나타내는 척도다. '한 70편 썼으니 나름 많은 열정을 바쳤네.' 하다가도 200편을 넘긴 작가를 만나면 어느새 위축이 된다. 설사 질적으로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얼핏 보기에는 오랜 기간 많은 쓴 사람이 승자라고 생각한다.
쓰다만 글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중단한 글이 10편이 있으면 뭘 하나. '그래도 내게는 중단한 10편이 있잖아!' 이렇게 위안해 보려고 해도 별도 도움이 되질 않는다. 프로에게 끝내지 않은 미완성품은 아예 시작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때는 궁여지책으로 한 편의 글을 2~3개로 쪼개어 완결을 짓곤 한다. 너무 주제 범위를 넓게 잡아서 글이 끝나지 않는 경우다. 분량이 점점 늘어나는데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에 글이 끝나질 않는다. 이럴 때는 쓰기를 멈추고 부분을 살핀다. 세부 글감 단위로 보면 괜찮은 상태라고 여겨지면 글을 쪼개어 여러 편으로 만들고 마무리를 짓는다.
작가의 서랍을 비우려면 엄격한 탈고 기준을 먼저 버려야 한다. 저장한 글이 차고 넘치는데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가 보기에 부끄러운 글이라 느끼기 때문이다. 대충 마무리해서 세상에 내놓기에는 부끄러워 선뜻 손이 가질 않는다.
사실 다른 이들은 타인의 글의 완성도를 꼼꼼히 보지 않는다. 내 가슴을 울리는 작은 감동이 들어있는 정도면 괜찮다. 삶에 위로가 될 작은 힌트를 얻는 정도면 괜찮다. 피식 웃음이 날 정도의 재미를 포함하는 정도면 괜찮다. 사람들은 글의 논리구조가 완벽하고 논조가 날카로워서 독자를 완벽하게 설득할 수 있느냐, 그런 기준으로 브런치를 읽지 않는다. 사실 웹 상의 글은 스킵하며 보지 그다지 꼼꼼히 읽지 않는다.
그런데도 내 고집을 버리기가 제일 어렵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을 만날지 몰라 휴일 아침 편의점에 갈 때도 화장을 하고 옷을 갖춰 입는 것과 비슷하다. 헝클어진 머리와 눈곱 낀 얼굴이 너무 신경 쓰인다면 간단히 세수하고 외출복으로 갈아입는 정도로 충분하다.
옛 애인을 만날까 봐 집을 나설 때마다 완벽한 치장을 하는 게 무모하듯, 매번 완벽하게 힘을 준 글을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부족하더라도 완성을 짓는 것이 중요하다. 가끔은 진짜 이 글감은 제대로 작품을 만들어봐야겠다는 때가 온다. 이때에 전력을 다해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