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발목을 잡는 맞춤법

맞춤법에 연연하지 않기로

by 임희걸

글쓰기 강좌 수강


몇 년 전 한겨레 신문 문화센터에서 <논리적 글쓰기> 과정을 수강했다. 글쓰기 수업을 듣는다고 실력이 늘어날까? 처음부터 그런 기대를 했던 건 아니다. 수영은 물에 뛰어들어 배워야지, 이론으로 배울 수 없다. 글도 잘 쓰건 못 쓰건 그냥 쓰며 버텨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한 번도 글쓰기 수업이란 걸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한 번은 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수업을 듣기까지는 도대체 글쓰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냥 무언가 글을 쓰기 시작할 지점이 필요했나 보다. 주말마다 2개월 정도 강의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업 내용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선생님은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 글쓰기의 기본임을 다시 상기시켜 주셨다. 송나라의 시인 구양수가 언급한 글쓰기의 기본 <삼다(三多)>이다. 학창 시절 수업 시간에 얼핏 들었던 기억이 난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지만, 쉽게 실천은 못하고 있던 방법이다.


'그래 결국 글쓰기는 다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구나.' 2개월의 수업에서 깨달은 바가 그것이었다.


그래서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주로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한다. 좋은 글감이나, 어떤 일을 겪은 심정을 메모로 남긴다. 메모를 쓰는 초기에는 책에서 좋은 문장을 따라 쓰곤 했다. 자신의 생각이든 책에서 본 것이든 메모가 누적되면 글감이 된다. 손으로 쓰는 행위는 머리가 돌아가도록 돕는 효과가 있었다. 신기하게도 메모를 하다 보면 다른 글감이 따라서 떠오르는 때가 많았다.


한겨레 수업 기억나는 또 한 가지는, 맞춤법과 비문 고치기였다. 논리적인 글이란 다름 아닌 비문을 쓰지 않는 것이라 했다. 틀린 문장만 쓰지 않아도 문장이 더 깔끔하고 조리 있어진다. 이미 우리의 글은 번역투의 문장이나 일본식 한자 조어에 많이 오염되어 있다. 고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비문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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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내용은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나의 딜레마가 시작됐다. 몇 줄 쓰지도 않고 맞춤법부터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좋은 주제를 담은 글, 흐름이 유연할 글을 쓰기보다는 틀리지 않은 문장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정확한 글에 집착하기 시작하니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마치 엄청나게 규칙이 복잡한 운동 경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머리로 규칙을 생각하다 보면 경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맞는 문장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글쓰기가 점점 두려워졌다. 나는 그리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닌데, 이상하게 글을 쓸 때만은 맞춤법에 매달리게 되었다. 그럴수록 글을 쓰는 게 더욱 힘들어졌다.


누구에게나 제대로 된 문장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엉망이고 표현력도 좋지 않은 글... 이런 걸 웹에 노출시킨다는 건 썩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마치 휴일에 씻지 않은 채로 편의점에 가다 헤어진 애인을 만나는 기분이랄까. 고작 5분 간 편의점에 가는 길이라도 최고로 멋진 옷차림에 말쑥한 상태였으면 좋겠다. 브런치에 쓰는 글도 그렇다.


SNS에는 비문이 넘쳐난다. 소셜 미디어가 늘어날수록 제대로 된 문장을 쓰는 사람이 줄어든다. 페이스북이나 블로그를 많이 보았더니 어휘력이 좋아졌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SNS를 많이 하는 아이를 보면 문해력이 떨어진다. 나는 간단한 맞춤법조차 틀리는 블로거들과는 다르게 쓰고 싶었다. 진짜 훌륭한 언어, 멋진 문장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욕심이 너무 컸나 보다. 완벽하고자 하는 욕망이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게 만들었다.


결국 압박감에 몇 달간 어떤 글도 쓸 수 없었다. 한 참 후에야 다시 용기를 냈다. 이번에는 빠르고 유연할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맞춤법은 포기하기로 했다. 초고는 잽싸게 쓰고 문장을 살피는 것은 퇴고할 때만 하면 된다. 마음을 그렇게 먹었어도 실천이 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정확한 문장에 대한 끊임없는 집착을 잠재우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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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에 쓰는 글은 미완성


'제대로 된 문장은 퇴고할 때만 잡자.' 이렇게 가볍게 마음을 먹었더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이번에는 초고를 잔뜩 쌓아놓고는 퇴고를 게을리하게 된 것이다. 내 브런치 <작가의 서재>에는 꽤 여러 편의 글이 쌓여있다. 그런데 글을 고쳐서 발행을 누르지 못한다. 언제부터인가 작가의 서재 안에 쌓아만 놓고 다시 살피지 않고 있다.


초고 쓸 때는 재밌는데, 퇴고는 참 재미가 없다. 내 마음대로 얽매이지 않고 동네 축구를 하다가 K-리그에 입성해 온갖 규정을 지키며 플레이해야 하는 느낌이다. 문장을 점검하고 글의 흐름을 챙기는 작업은 속도감이 떨어진다. 마음대로 슛을 쏠 때처럼 휘갈겨 쓰는 자유와 속도감이 그립다. 어느새 초고 쓰기에 비해 퇴고에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되고 말았다.


브런치나 블로그에 쓴 내 글은 모두 미완성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책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런저런 글을 뱉어내면 그게 쌓이고 쌓여 글 곳간이 풍족해진다. 그중에서 연관되는 주제를 묶어 책을 만들 수 있다. 출간을 해 보니, 어차피 책을 쓸 때는 여러 번 퇴고를 거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리를 만든다고 생각해보자. 바로 쓸 식재료는 잘 다듬고 썰어 두어야 한다. 바로 쓰지 않을 재료는 다듬지 않고 두는 편이 오래 보관할 수 있다. 보관용 식재료를 손질해 놓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 혹시 식재료를 못쓰고 버리게 되면 손질하지 않은 편이 덜 아깝다.


첫 책을 쓸 때는 출간 기획서를 먼저 작성했다. 큰 틀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글을 써서 메꾸는 식으로 써나갔다. 이 방법이 정석이겠지만, 생각보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갔다. 흐름상 꼭 들어가야 할 단락이 있는데 거길 채워 넣지 못하니 몇 주씩 시간이 흘렀다. 막혀 있는 상태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짧은 글들을 쓰면서 모아놓는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그게 브런치의 취지에도 더 맞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훨씬 글쓰기가 편해졌다. 그날그날 떠오르는 주제를 쓰는 편이 즐겁다. 확실히 글 쓰는 속도도 높아지고 더 많이 쓸 수 있다.


글이 쓰는 것이 아니라 다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처음 쓸 때 마음이 가벼워진다.


'어차피 나중에 다음을 거니까 생각나는 대로 쓰자!'


이렇게 마음먹으면 글을 쓰는 손이 거침없이 죽죽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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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할 때가 진검 승부할 때


글쓰기에 관한 책을 6~7권 정도 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중에서 늘 곁에 두고 다시 읽는 책이 있다. 야마구치 다쿠로 작가의 <결국 글은 쓰는 것이 아니라 다듬는 것입니다>라는 제목의 책이다. 제목을 딱 보자마자 이거구나 싶었다. 이 책은 퇴고의 방법을 전체적으로 모두 다룬다. 글의 흐름을 고치는 것에서부터 문장을 다듬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언급한다. 단어나 문장 부호를 고치는 법도 나와있다. 이외에 다른 몇 권을 참고로 해서 나만의 퇴고 절차를 만들었다.


나는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기 전에 스스로 6~7번의 퇴고를 했다. 처음 2~3번은 논리 전개의 흐름을 고쳤다. 다음 1~2번은 문장을 고쳤다. 나는 은유나 비유를 잘 쓰지 못한다. 좋은 글은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잘 빗댄 글이 많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 핵심 문장을 은유, 비유를 사용해서 고쳐 보았다. 그게 끝나면 다시 1~2번 맞춤법만 집중적으로 고친다. 맞춤법 검사기를 돌리고. 맞춤법 책을 보고 비문을 집중적으로 잡아내기도 한다.


다음으로, 참고 문헌이나 자료에서 똑같이 베껴온 부분은 없는지 검토한다. 글을 쓰다 보면 다른 이의 글에서 영감을 얻거나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디어만 가져오면 참 좋은데 메모해 둔 것을 적용하다 보면 문장이 아주 비슷하게 옮겨지기도 한다. 표절이 될까 봐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나 같은 무명작가의 글을 가지고 저작권을 문제 삼을 사람은 많지 않다. 그보다는 어딘가에서 따온 글이 섞이면 흐름이 이상해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소리 내어 읽으며 말이 씹히거나 읽기 어려운 부분을 고친다. 속으로 읽을 때는 이상하지 않다가도 소리 내어 읽으면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다. 또 긴 문장도 짧게 쳐낸다. 읽을 때 힘에 부친다는 느낌이 드는 문장이 있다. 이것은 으레 너무 길게 쓰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초고를 쓸 때는 문장이 짧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문장을 짧게 만드는 단계도 필요하다.


글은 고치면 고칠수록 좋아진다. 그런데 퇴고를 생각하면 첫걸음을 뗄 수 없다. 그래서 글감을 모은다는 생각으로 미완성작을 쏟아내기로 했다. 정확한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커지면 글을 쓰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맞춤법도 생각하지 않고 일단 쓰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조금 편하게 만들면서 글을 써 나간다. 한 편으로는 맞춤법에 맞는 글일까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다른 한 편으로는 퇴고를 좀 더 여러 번 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고민한다. 마음속에서 <쉽게 쓰겠다는 생각>과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갈등을 만든다.


그러고 보면 글을 쓴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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