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시간성이 드러나는 곳
라다크의 작은 마을 알치에는 무려 1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알치 곰파가 있다. 언덕 위에 우뚝 솟아있는 다른 곰파들과는 달리 평지에 지어진 탓에 여태껏 파괴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곰파라는 단어는 항상 신비로운 느낌으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사원의 주변에는 어김없이 마니차가 있었다. 기다란 통 안에는 법문이 적힌 종이가 들어 있다. 사람들이 통을 한번 돌릴 때마다 그 법문을 모두 읽은 효과가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사원 주위에서 이 마니차를 돌린다. 알치의 마니차는 조금 더 특별했는데 여태껏 많은 티베트 불교사원을 방문해 보았지만, 이렇게 시간성을 가지고 있는 마니차는 처음이었다. 마니차가 옛날에는 이런 모습이었겠구나. 옛 모습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었다.
달이는 이제 마니차가 익숙해졌는지 만날 때마다 마니차를 돌려보고 싶어 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선 곰파의 내부에서는 햇빛도 닿지 않는 어둑한 곳에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나는 벽화가 품고 있는 긴 시간성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숨죽이며 둘러본 채 밖으로 나와 다른 벽화들을 홀리듯 카메라에 담았다. 엄청난 것을 봐버린 기분. 라싸에서 본 여러 벽화들이나 곰파들보다 더 깊은 불교의 시간성을 느끼게 한 알치곰파.. 그 묵직함에 숨죽이며 절로 경견함을 느꼈다. 불교의 역사는 내가 생각한 것 너머에 있구나
시월임에도 조용하고 따스했던 알치- 푸르른 하늘. 선량한 사람들과 자유롭게 노니는 당나귀들 에메랄드 빛 인더스강, 동물을 좋아하는 달이도 거리를 걷는걸 무척 좋아했다. 다음에 라다크에 간다면 우리는 다시 알치에 갈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오래오래 머무르리라
알치를 떠나는 버스가 왔다. 이제 다시 만년설이 보이는 레로 돌아간다. 라다크에서의 여정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여행을 모두 마치고 남편은 지금도 인도에서 라다크의 알치가 가장 좋았다고 한다. 이렇게 시월의 라다크의 추위도 따스하다는걸 알았으면 겁먹지 말고, 라다크의 시간도 알치에서의 시간도 더 오래 잡을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