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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예술의 힘

Never give up! Never give up!

by 홍지승

결국은 제대로 버텨내야 빛나는 진짜 예술의 힘.


2022년 가을에 동생이랑 이중섭 전시회를 보러 국립 현대 미술관에 간 적이 있었다. 어느 가을날 갑자기 급하게 번개처럼 잡은 약속이었기 때문에 나는 큰 기대도 없이 약속장소에 나가긴 했지만 그림을 보러 가자는 말에 그저 그 길을 함께 나섰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웬걸 그림을 보러 가서 그림에 심취하기보다는 화가 이중섭을 설명하는 글들과 그의 절친인 시인 구상이 쓴 글을 보고 눈물이 났던 건 굉장히 당혹스러운 감정이었다. 그림을 보러 가서 그림을 보고 감동을 받은 것이 아니라 글을 보고 울었다는 게 누구 들어도 이상한 일 아니었던가? 물론 전시 자체도 훌륭했고 그를 기억해줬으면 하는 기획자의 의도가 얼마나 정성스러웠는지 이중섭의 작품들로 꽉 차여진 전시 자체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그만큼 감동스러웠던 건 그의 그림뒤 아크릴판에 써진 저 글 때문에 나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주저앉아 울고 싶어 졌었다.



중섭은 참으로 놀랍게도 그 참혹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남겼다.

판잣집 골방의 시루의 콩나물처럼 끼어 살면서도 그렸고

부두에서 짐을 부리다 쉬는 참에도 그렸고

다방 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그렸고, 대폿집 목로판에서도 그렸고

캔버스나 스케치북이 없으니 합판이나 맨 종이, 담뱃값 은종이에다 그렸고

물감과 붓이 없으니 연필이나 못으로 그렸고

잘 곳과 먹을 것이 없어도 그렸고, 외로워도 슬퍼도 그렸고

부산, 제주, 통영, 진주, 제주, 서울등을 표랑정전(漂浪轉轉) 하면서도 그리고 또 그렸다.

구상-「이중섭의 인품과 예술」, 대 이중섭, 한국문학사, 1979년 4월, 141쪽



당시엔 왜 그런 마음이 들었던 건지 시간이 오래 흐른 뒤에도 나는 가끔씩 그게 더 헷갈리고 이상한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천천히 그 마음을 찾아 곱씹어보니 살면서 우리는 예상된 상황이나 예상된 감정에 깊은 울림이 오는 경우는 사실 거의 없었다. 사랑이 교통사고 같은 것이라는 것도 예상된 상황이었으면 사고라는 거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처럼 감정이나 느낌 그리고 마음속 울림 같은 것은 내가 느끼고 싶은 대로 느껴지는 감정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그 순간 갑자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그런 느낌은 내겐 당연히 새롭고 신기한 경험이 되었겠지.



풍요로운 시대의 결핍


나는 내가 오래전에 읽었던 여러 종류의 무용책들과 사진과 글들을 보면서 당시의 시대상과 암울한 시기에 맞물려 탄생한 예술이란 것에 아주 가끔씩 제대로 된 궁금증이 일어날 때가 있었다. 당시를 살아보진 않아서 그때가 뭐 어땠는지 정확히 알 지는 못했던 시간들이 있었지만 그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오랜 시간 공들여 비슷한 시기의 책들을 다시 천천히 읽다 보니 결국 그 시대상이 얼추 어떤 느낌인지 내 안에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요즘 내가 보는 지금의 세련되고 화려한 예술을 직접 마주한다는 게 그저 신나고 즐거운 일만은 아니기도 했다. 물론 결핍만이 또한 예술의 깊이를 설명해 주는 것도 아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 주는 감동의 끝은 결국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그 어떤 힘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한다.

예술에 있어선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움이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보니 우리는 조금이라도 불편하고 힘들면 일단 포기부터 하려고 한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늘 그런 마음을 가슴에 품고 살아서 그런지 그런 죄의식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져 있어서 아직까지는 들키지 않고 잘 살고 있음조차도 잘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 적도 많았다. 그래서일까? 풍요로운 시대에서의 예술에 대해 남과는 다르게 약간의 거부감도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는지만 이 또한 정답은 없다. 그렇기에 삶과 예술은 같은 공간과 시간에서의 저마다 각자의 다른 행위일 수 있다. 그래서 예술은 그렇게 잔인하고 위대한 것인가? 싶기도 하다. 고통을 이겨내서 멋있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행위에 몰두할 수 있는 진짜 힘은 훗날 후대의 후손들에게 칭송받아 마땅한 그 엄지 척의 위대함은 누구도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예술은 더없이 잔인하다.


살아있는 자에게의 예술가로서의 명성과 성공보다 비극적인 삶 이후에 얻어지는 예술가의 명성처럼 허망한 게 있을까? 싶기도 하다.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이 그랬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가 이중섭의 삶 또한 그랬던 것 같다. 시대의 불운과 맞서 가난과 질병,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과의 헤어짐 앞에서 그는 얼마나 자신의 삶 안에서 허덕이고 헤매었을까? 생각해 본다.

특히나 광복 이후 곧바로 6.25 전쟁으로 인한 분단과 이념사이에서의 괴리를 현재를 사는 우리가 과연 가늠하고 알 도리조차 있었을까? 그는 고통의 세상에서 지치다 못해 꺾여 세상을 떠났을 것이고 그런 그의 재능을 안타까워한 주변 지인들에 의해 회고전이 열리기 시작해서 1970년대부터 그의 작품이 집중적으로 발굴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이야 또 다른 국민화가로 불리는 박수근과 투톱을 달리는 화가로 평가되지만 살아서의 그의 삶은 그 어디에서도 행복과 행운을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저 미술이 좋아서 보고 그리기를 끊임없이 했던 그의 삶도 결국 억울했던 시대를 벗어나 꽃을 피기보단 지기 바빴고 그런 그를 바라봐야만 했던 가족들의 고통과 힘듦도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젊고 빛나고 환한 시절에 보고 느끼는 예술은 그저 가볍지만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풍요롭고 좋은 시절의 박수받는 예술은 가난하고 핍박받고 어렵게 하루하루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과의 삶도 또 다른 관점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눈 크게 뜨고 보면서 마음 안에 사랑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예술이 좋았고 그 삶에 관심을 갖었다는 말 또한 쉽게 말할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은 늘 내가 예술과 그 행위를 하는 예술가들을 볼 때 자주 떠오르는 글귀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저 하고 싶어서 잘하고 싶어서 하는 일.


글도 그렇다. 매 순간 쓰고, 못 쓰거나 안 쓰면 병이 날 것 같고, 내가 마치 내가 쓴 글에 취해 행복하기도 했다가 어느 날은 내 주제에 무슨 글을 잡고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을까? 싶기도 한 그런 마음의 롤러코스트를 어쩌면 백번은 더 타야 몇 장의 괜찮은 글들이 나올 수 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렇게 예술은 허망하고 헛된 그래서 잡히지 않는 풍선 같은 것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었겠지만 그런 수많은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노트북을 켜고 그 앞에 초라하게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해도 그리고 그리고 그렸다는 그 글처럼 허망하고 헛된 멜로디가 주는 삶의 교훈은 생각보다 엄청 힘이 세다.

내가 고서와 오래된 잡지에서 본 예술가들의 이름 석 자는 그렇게 힘이 센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가 겪는 마음의 고통이 작고 쉽고 약한 게 아니라 그들의 겪은 고통에 비하면 힘들다 내색하거나 그걸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갖고픈 용기는 그 어떤 비난과 힐난이 아니라 그저 하고 싶어서 준비한 사람으로서의 태도만을 말하지 말고 그래도 하려고 했던 마음과 진심이 조금이라도 타인에게 진심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돈도 좋고, 명예도 좋고, 세상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그런 것들 사이에서 모든 걸 완벽하게 다 가질 수는 없다. 그저 자신이 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내가 사랑하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예술의 한 부분도 그것이 음악, 미술. 사진, 춤 그 외의 그 모든 것들이라도 나는 그것을 사랑했고 앞으로도 더 사랑하겠다는 마음 앞에서도 내가 누구보다 초라하거나 누추하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마음으로 한 걸음씩 걸어 나가는 건 생각보다 힘이 센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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