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후기 - 장운규 발레리노 편 ⓷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를 떠올려본다.

by 홍지승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약속.


어쩌면 발레는 드라마 도깨비에서 나온 대사처럼 "쓸쓸하지만 찬란하신 신(神)" 같은 예술은 아닐까? 합니다. 발레라는 '춤'이라는 예술 자체의 특성상 말이 없고 움직임으로만 자신이 맡은 배역을 표현해야 되기 때문에 남들이 생각하는 상상 이상의 인내와 노력이 절대적인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터뷰라는 미명하에 무용가를 만나지 않는 이상 곁에서 그들을 관찰할 기회조차 아예 없고 그들을 무대 위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가끔씩 예술가의 길은 그 길을 걸을 때마다 외롭고 괴롭고 힘들고 고독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그들을 만날 때마다 하게 됩니다.

무용수분들은 대부분 말들이 없고 불필요한 곳에 에너지조차 쓰지 않는 직업군의 사람들이라고 알고 있기에 저 역시도 되도록이면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해서 만나기도 하고 그 시간 안에서 같이 좀 더 많은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딱 10년 전, 제 아이가 초등 저학년생 이어서 집에서 '꼼짝 마' 하며 엄마로서의 역할에만 최선을 다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아이가 제게 주는 기쁨도 컸지만 반대로 가끔은 이유 없이 초라하고 괜스레 위축 들었던 날들도 적지 않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땐 왜 그렇게 마음이 조급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저 모든 게 불안한 마음에서 시작된 자격지심 같은 감정들이 욱~~ 하고 올라오는 날이면 한 번씩 마음의 생채기가 났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물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혼자서 멍하니 창 밖만 바라봤던 그런 기억조차도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리긴 했지만요.

그러던 어느 날 알고 지내던 무용계 지인 A 씨를 만나서 이런저런 수다 끝에 예술가의 성격과 정서 그리고 그에 준하는 실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저도 모르게 성격도 좋으면서 춤도 잘 추는 무용수가 과연 한국에 있을까요?라는 저의 질문에 되려 상대방의 입에서 갑자기 바로 톡 튀어나온 그 이름이 바로 '장운규 발레리노?'라는 이름 석 자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제가 글을 바로 올릴 수 있는 저의 개인 채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다른 목적의 원고들을 준비하고 있던 탓에 정말로 우연히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저 멀리멀리 날아간 것처럼 그렇게 오랫동안 이 일을 준비하는 있는 걸 알고 있던 지인분은 저에게 "그럼 한번 직접 만나보시겠어요?"라는 말에 약속을 잡고 당시에 그가 운영하던 아주 예쁜 화이트톤의 발레학원에 가서 노트와 펜만 들고 가서 그를 만났던 적이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금과는 또 다른 상태의 못난이 인형 같은 모습으로 우물쭈물하면서 발레학원에 갔었고 그가 제게 해준 많은 이야기들 앞에서 조차 제가 너무 준비를 부족하게 해서 간 것은 아니었나? 싶어서 속상했던 기억을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순전히 저의 자격지심 때문이었겠죠?



가지 않아서 몰랐던 그 길.


사실 유명 작가의 삶은 제가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무명작가가 유명 무용가를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서로에게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생각에 유명 무용가들을 만나서 그 이야기들을 잘 쓰고 싶었던 것은 지극히 제 개인적인 저만의 '사정'이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 간절함이 통해서 가끔씩 가뭄에 콩 나듯 그렇게 그들을 만날 때마다 제 나름의 기준으로는 알 수 없는 '마음의 부채'를 진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그것이 그저 유명과 무명의 간극이었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나중에 글을 써 보니 알게 되었던 건 그만큼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해 준 무용가들 덕분에 제 부족한 글이 그나마 빛이 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부터는 좀 더 진지하게, 좀 더 성의 있게 그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글을 책임감 있게 써야 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게 되었고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의 보면 그 마음의 빚의 무게는 제가 안고 가져가야 할 감정이기도 했었죠. 하지만 저도 처음부터 그런 사실을 알고 이 일을 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일을 하면서 배운 가장 큰 깨달음이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준비를 꾸준히 잘하고 싶었던 것은 정확히 말하면 저의 '일'인 것이지 그들이 봐줄 어떤 '편의나 매너'가 담보로 맡겨져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뷰'라는 이름으로 시간 약속을 잡고 직접 만나서 서로가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이 이야기들을 거짓 없이 제대로 잘 고르고 다듬어서 좋은 글로 올려야 하는 일을 앞두게 되는 순간이 오면 편견 없이 제대로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 것인지 대해서 깊게 생각에 생각을 더하며 신중을 거하게 됩니다.

돌이켜보니 저도 이런 종류의 글 쓰는 일을 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첫 제안을 받았을 때 글을 잘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일을 하라고 추천했던 것이 아니라 거짓말 안 하는 제 성품 하나 보고 권한다는 교수님의 말씀이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라면을 먹더라도 이 일을 꾸준히 준비해야 한다는 설명 또한 그때만 해도 가지 않았던 시간들 때문에 늘 언제쯤 잘할 수 있을지.. 이 정도의 무용사적 지식과 필력만으로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나 있을는지 싶어서 말은 안 했어도 매일 같이 불안했던 것도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시간이 꽤 오래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예술가들의 개인적인 역사에 있어서 거짓말이나 편견은 정말 견제의 대상인 감정이죠. 또한 좋아한다고 분별력 없이 글을 쓰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세상을 살아보고 나서 뭐가 옳고 그른지 알고 나서 글을 쓰는 일은 이제야 왜 여러 공연 관계자 및 교수님들이 그렇게 힘든 시간을 배곯아가면서도 참고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콜라값을 아껴서라도 돈을 모아서 티켓을 사서 한 번이라도 더 좋은 공연을 찾아보러 다녀야 한다고 말씀해 주신 까닭에 대해 이제야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름 석 자 걸고 정면으로 춤을 추는 무용가들에 대한 제 마음 또한 분명 '그 일을 열심히 한 그 사람에 대한 존중'입니다.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삶이 남들이 다들 부러워할만한 그 자리에 올라가기까지 과정과 아울러 그 자리에서 잘 버티고 내려오기까지 과정 또 내려와서도 흔들림 없이 잘 살아나가기까지의 삶을 오랫동안 지켜보는 일 또한 애정 없이는 지켜볼 수는 없는 일입니다. 또한 앞서 말한 대로 유명 기자나 유명한 채널의 힘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저처럼 유명하지 않은 작가에게 조차 진심을 다해 말을 해 준 무용가들을 보면 얼마나 고맙고 미안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극장에서 그가 추는 춤을 보고 환호하고 박수를 치고 돌아가는 관객들을 생각하면 제게 주어진 그 시간 안에서 듣고 나눈 그 이야기 한 마디, 한 마디가 인생의 한 조각퍼즐처럼 맞물리는 순간이 겹쳐질 때는 아주 무한대의 책임감이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하지요. 그러니 준비를 잘하고 마음을 다해서 이 일을 해야 함은 제겐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를 만났던 딱 10년 전 4월의 어느 날, 돌이켜보면 그때는 그도 지금보다 젊어서 그랬는지 계속해서 제게 왜 이런 인터뷰를 해야 하냐고 손사래만 열 번도 넘게 치던 그의 모습이 오늘은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욕심만 앞서서 한 저의 인터뷰 요청이 괜히 너무 부담감을 준 것은 아니었는지 싶어 저 스스로도 마음이 많이 무거웠고 그래서 그 기억조차도 갚지 못한 '마음의 빚'처럼 갖고 있기도 했었죠. 하지만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10년을 살다가 다시 같은 용건의 일로 만나고 나서보니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가 제 앞에 펼쳐졌고 덕분에 귀도 호강, 손가락은 부산하게 그의 말을 옮기느라 키보드가 모닥불 타듯이 타닥타닥 소리만 날 정도이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제게 주어진 어느 날의 딱 하루 중, 그 2시간 안에서의 그의 무용 인생 이야기 덕분에 삶이 파노라마의 순간처럼 순식간에 지나갔고 정말 인생이 찰나이자 순간이며 그런 의미와 별개로 그렇기 때문에 이 순간이 영원할 수도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는 여전히 달변이었고, 여전히 스마트했으며, 여전히 영국신사 같은 매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가 아주 많이 내린 지난겨울 오후에 그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와 시간에 늦을까 봐 1시간 먼저 가서 카페에서 질문할 내용들을 정리하고 기다리는 동안 이렇게 귀하게 들은 내용들을 바로 올릴 수 있는 채널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도 위안이 되긴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10년 만에 제가 그에게 한 말 중에 "약속 바로 못 지켜서 죄송했습니다"라는 저의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지난번처럼 귀하게 들은 이야기들이 날개 달고 저 멀리 날아가지 않고 이렇게 기록으로 남길 수 있어서 얼마나 위안이 되던 밤이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서로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잘 살아온 10년의 시간은 오래된 포도주처럼 잘 익어서 이제야 이렇게 맛있는 포도주가 되었다 싶은 마음에 전과는 다르게 신나게 인터뷰할 수 있어서 좋았고 물어보는 질문에 척척박사처럼 답해주는 무용가에게도 더없이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유치원 다니는 꼬마 아이가 담임 선생님께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고 싶었던 아이처럼 그날 제 마음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끝까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면 누군가의 기억에서 그저 소리소문 없이 연기처럼 그 이야기들이 이렇게 누군가에게 읽힐 수 있는 글로 남겨질 수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참 눈물 나게 감사한 밤이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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