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역사가 곧 발레의 역사- 장운규 편⓶

걸어 다니는 발레 인물 사전 이야기.

by 홍지승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입학.


영국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집에 입영통지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로 한국에 입국해서 얼마 되지 않았던 시간에 그는 신체검사도 받아야 했고 곧이어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진학도 앞두고 있었다. 다행히 이미 영국에서 한예종 무용원과 같은 시스템에 수업을 받았던 경험 덕분에 영국에서처럼 같은 무용 학교를 다니는데 시간표만 달라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서 적응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영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열심히 무용을 했고 그동안의 노력의 결과값이 무용 콩쿠르 수상으로 이어져 그의 군문제는 병역특례로 대체 가능하게 되었다.

무용원 재학시절 가장 기억나는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하고 물어보았을 때 그때는 초빙강사로 계신 분들이 엘리자베스 플라텔 (Elisabeth Platel), 에카테리나 막시노바(Ekaterina Maximova) 같은 유명한 무용수들이 상주해 있었다는 점이 가장 기억나는 일이라고 했다. 무용책에서만 봤던 무용수들이 눈앞에 보일 때의 신기했던 감정은 그 역시 마찬가지이었던 이유는 플라텔 (Platel)은 파리 오페라 발레단(POB)의 에뜨왈이자 전설적인 무용수 루돌프 누르예프가 아꼈던 무용수로도 유명한 무용수이었고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전성 기이었을 때 정점에 있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며 막시노바(Maximova) 같은 경우 러시아 볼쇼이 극장의 발레 스타가 초빙교수나 강사진으로 학교에 상주해서 수업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곳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고 학교에 가면무용 역사책에 나올법한 무용수들을 직접 볼 수 있었다는 점이 신기한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아울러 다른 친구들보다 영국에서 다져진 영어실력 덕분에 그는 남들보다 조금 더 자세히 춤을 배울 수 있었다는 점 역시 큰 도움이 되었던 시기로 기억된다고 했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서의 위엄.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 당시 무용원 김혜식 원장님의 권유로 그는 국립발레단에 2000년도에 입단하게 되었다. 앞서 상세하게 말한 그의 이력 덕분에 그는 다른 무용수들과는 다르게 오디션을 보지 않고 특채로 드미 솔리스트(Demi solist)부터 프로 무용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후 국립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로 10년간 활동하였다. 그가 입단하던 시점에 국립발레단은 재단법인화 되어 이미 자체적으로 변화의 중심에 있었고 그런 변화 덕분에 그의 입단 결심도 처음부터 자연스러웠고 결정되었다.

그 당시 이미 국립발레단은 1997년부터 일반인들에게 발레를 쉽게 소개했던 프로그램인 <해설이 있는 발레>를 기획하여 해설과 함께 발레를 본다는 컨셉 덕분에 발레의 대중화가 가랑비에 옷 젖듯 그렇게 관객들에게 스며들며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발레 대중화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던 시절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그의 입단은 그전에 활발하게 활동했었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발레 스타들이었던 이원국, 김용걸, 김지영, 김주원 다음을 이을 차세대 발레 스타라는 닉네임은 그에게 자연스럽게 붙여졌던 시절이기도 했었다.

국립발레단에서의 수석 무용수로서 활동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었는지 그에게 자세하게 물어보게 되었고 그가 활동한 그 10년의 세월 동안 가장 기억나는 일들이 있으신가요? 하고 물었을 때 그는 새로운 안무가들이 내한해서 직접 작품을 설명하고 가르쳐 주었던 방식이 있었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이해와 깊이는 다를 수밖에 없었던 점과 또한 트레이너가 아닌 안무자가 직접 춤을 가르쳐준다는 것에 대한 상세한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가령 예를 들면 발레의 한 장면에서 의미하는 음악의 박자와 카운트, 순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작품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와 설명이 직접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더 뛰고, 더 돌고 하는 식의 테크닉 위주가 아니라 왜 그 역할의 인물이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한 인간적인 이해가 더 먼저라고 했다. 그러니 결국 작품을 잘 배운다는 것은 안무자의 정확한 의도와 표현이 다듬어져서 무대에 올라갈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도 하며 작품에 대한 해석 역시 그저 무겁고 철학적인 해석만이 필요한 것이 아닌 때론 단순하고 담백하게 표현할 수 있는 부분에 설명을 곁들이면서 결국 춤에 대한 해석은 각자가 다 다를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하였다. 그러니 안무자에게 직접 들었던 설명 와 감정과 표현을 놓고 생각해 보면 결국 예술가로서는 작품이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고 그들 역시 내 작품에 대해서는 네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잘 표현해줘야 한다는 표현을 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그만큼 서로가 서로를 믿고 조율이 가능한 협업의 시스템이었기 때문이었다.




예술가의 역사가 곧 발레사의 역사


그가 국립발레단에서 만났던 외국 무용수 및 안무가들은 러시아 발레마스터 보리스 에이프만 (Boris Eifman) , 스웨덴 안무가 마츠 에크(Mats Ek), 아나 라구나(Ana Laguna), 프랑스 안무가 롤랑 쁘띠(Roland Petit), 21세기 최고의 현대 발레 안무가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Jean Christophe Maillot)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공연을 보러 갈 때마다 팸플릿에서 봤던 이름들이 술술 나오던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씩 검색하는 동안 그가 국립발레단에서 경험한 그 시간들이 마치 한 편의 무용역사책 같았다. 각자의 이야기를 이곳에 다 쓸 수 없기에 그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와 설명은 그를 직접 촬영한 영상으로 아카이브(archive)화 되어 남겨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남겨두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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