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처럼 발레를 만나다- 장운규 편⓵

숫자 7을 사랑한 러키세븐 (Lucky seven)의 사나이.

by 홍지승

어머니 손에 이끌려 운명처럼 발레를 만나다.


그는 1977년 7월 27일에 태어난 남자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숫자 7이 주는 특별함이 늘 자신의 가슴속에 있었고 자신과 참 잘 맞는다는 말로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미술을 전공하신 어머니와 철학을 전공하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친가와 외가 쪽의 가족들이 주로 미술가로 활동하는 가족들이 많았고 그의 친인척 중에는 추상미술로 이름을 날린 한 묵(韓 默) 작가는 한국근현대미술사의 산 증인도 있었는데 그는 이중섭을 절친으로 혼란스러웠던 시절 속에서도 이중섭의 시신을 수습한 친구로도 널리 알려져 있던 인물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여러 가지 교육을 시켜보았으나 다른 수업들을 배울 때는 그렇게 흥미 있어하지 않았던 자신의 아들을 보았고 그래도 어린 나이에 여러 가지를 시켜보다가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주고 싶었던 그의 어머니는 어느 날 발레를 한번 배워보면 어떻겠냐는 권유로 그는 발레의 세계에 첫 입문하게 되었다. 그때가 1986년 그의 나이 초등학교 3학년 여름이었다. 그 누구보다 가장 신기한 사람은 본인 자신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우연히 발레와 만난 그에게 처음부터 낯설고 어색하지 않았던 감정에서부터 어린 나이에 어떤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었던 '몰입'이라는 감정이 정확히 그게 어떤 것인지 조차 알 수 없던 나이에 그는 발레를 시작한 것이 그의 첫 행운이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는 첫 수업부터 춤을 출 때 발레가 재미있고 땀을 흘리면서 무언가를 집중해서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누구보다 그의 어머니 역시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렇게 발레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을 때 그가 처음 다녔던 발레학원은 한국발레의 선구자이었던 진수방의 조카가 운영하던 진수인 발레학원에서 처음으로 발레를 배웠고 그때 자신과 함께 발레를 배웠던 학원생 중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발레리나 김지영도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방과 후에 발레학원에 다닐 때 유니버설 발레단 남자 단원들이 현대무용가 강송원의 무용 공연에 출연할 발레 하는 꼬마 남자아이를 수소문해서 찾고 있았고 그때 그가 발탁이 되어 워커힐 야외 미술관 옥상에서 첫 외부 공연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일이 인연이 되어 유니버설 발레단의 공연이었던 <호두까기 인형>, < 고집쟁이 딸>에 연달아 전막공연에 참여하면서 발레 무대에 첫 데뷔를 하게 되었다. 그때의 공연 경험 덕분에 "발레에는 이렇게 큰 세계가 있구나"라는 깨달았다고 했는데 사실 그때는 어린 남자아이가 전문적으로 무용 교육을 받는 경우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기에 그 시작점이 남달랐고 특별하게 보이기도 했다.



사진출처: 본인제공. 진수인 발레학원시절. 옆에 남자아이가 장운규.



예술학교로의 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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