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몸, 두 개의 심장
내 몸에는 두 개의 심장이 뛰고 있다. 하나를 두 개로 나눈 것이 아닌, 하나와 하나가 모여 두 개. 가만히 앉아 있어도 두근두근, 영 익숙지 않은 울림이다. 예고도 없이 찾아와 깊숙이 자리잡은 또 하나의 심장. 매 순간 두 개의 심장을 가졌다 불리는 스포츠 선수들은 지칠 새가 없이 뛰고 움직이는데, 실질적 기능을 하는 심장을 가지고 있음에도 에너지는 찾아볼 수 없고 그저 쉽게 지치고 자주 피곤하다. 그럼에도 선택받은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경이로운 일이라는 점에 감사하고, 더 감사한 건 두 개 모두 건강하게 뛰고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눈치챘을 테다. 그렇다. 새 생명을 품고 있는 중이다.
5년 전 처음 품었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결혼 후 임신이라는 것이 당연한 숙제 같다 생각해서였을까, 누구나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대단치 않아서였을까. 그때의 기분을 이제 와 정확히 읽기 힘들지만 아무런 감흥조차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나이 때문인지, 호르몬 과다 때문인지 온 신경이 두 번째 심장을 향해 있다.
첫째와 둘째의 터울은 예정일대로라면 5살. 남편과 애초에 계획하길 4살 터울까지만 허용하며, 엄마인 내 나이도 고위험에 들지 않는 것이 둘째의 청사진이었다.
뭐.. 계획은 계획일 뿐. 계획은 수정하라고 있는 거니까..
결국 다른 건 지켜진바 없이 '둘째'의 목표만 달성한 셈이다. 그래도 이만하면 50% 달성한 거니 준수한 결과일까. 점점 임신 자체가 어려워지는 요즘, 우리 가족에게 찾아와 준 새 생명은 그 자체로도 너무나 감사하고 고귀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임신임을 확인했던 아침 우리 둘의 반응은 놀랍도록 똑같았다.
"둘째 생겼나 봐"
"어? 아.. 와.. 우와!"
감탄사만 늘어놓은 이 말의 뜻인즉슨, '둘째라니? 진짜 생겼구나.. 이제 정말 애 둘이구나.. 우와 드디어!' 뭐 대충 이런 느낌. 솔직히 처음 맞닥뜨린 아침 7시에는 기쁘고 행복하고 감격한 그런 기분이 우리 둘에겐 없었다. 우리에겐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일이 눈 앞에 펼쳐져 순간 당황했다고 해야 할까. 당시의 기분을 당최 설명할 길이 없다. 그때만 생각하면 여전히 어안이 벙벙해진다.
둘째도 어김없이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가봐야 아기집만 겨우 확인할 수 있는 4~5주 정도인데 말이다. 어쨌든 흥분되고 긴장되는 일임에는 분명했다. 내 몸에 누군가 있고, 이제 더욱 나를 더 잘 돌봐야 한다는 생각에 눈으로 확인해야 조금 안심될 것 같았다. 사실 아침에 즐기는 진한 아메리카노, 밤에 즐기는 맥주나 와인 1잔과의 이별에 명분이 필요했다. 특히 쓰디쓴 아메리카노는 떠나보내기 힘들어 잠깐 임신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품는 동안 어느새 다다른 병원. 흥분을 식히고 의문을 잠재워주기 위해 다녀온 병원에선 번복할 수 없는 임신, 확실했다.
아, 진짜구나.
병원 다녀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입덧이 시작됐다. 너무 이른 감이 있지만, 이상하게도 병원에서 확인사살만 해주면 어쩜 그렇게 입덧이 바로 오는지 진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첫째 때도 그러했고 입덧으로 너무나 큰 곤욕을 치렀던 터라, 가장 걱정하던 부분이기도 하다. 첫째의 등원 준비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늦어지는 아침 식사 덕에 공복에서 오는 울렁거림이 아주 몹시 힘들게 한다. 그마저도 이제 며칠 겪었다고 잘 무찌르는 중이다. 아무래도 아이가 눈 앞에 있으니 힘들다고 드러누울 수 없어 어찌어찌 잘 넘어가는 듯해 보이기도 한다. 적어도 내가 봤을 땐. 현실과 타협한 정신력으로 승부하는 듯한 요즘. 타협이 일부 가능해서 다행이고, 타협할 정신력이 남아있어서 다행이다. 당분간 하루하루 어디에 지배당할지 1초 앞도 못 내다보겠지만, 그래도 또 아무렇지 않게 버티고 이겨내고 있겠지. 그마저도 다행이라 생각해보며 얼마나 더 아무렇지 않게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좋은 매일을 기대하기 힘들다면 이렇게라도 무탈하길 기대해보는 수밖에.
오늘도 좌 바나나, 우 입덧 사탕을 가지런히 놓고 하원까지의 6시간 프리덤을 쪼개어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