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방학생활
애초에 '슬기'와 '방학'은 곁에 둘 수 없는 단어가 아닐까.
사전적 의미에 열거되는 재능은 눈을 씻고 아무리 찾아봐도 없으니 말이다.
슬기 [명사] 사리를 바르게 판단하고 일을 잘 처리해 내는 재능
[유의어] 기지, 재치, 현명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시간을 '바르게 판단'하고 '잘' 해결해나간다는 건 평범한 일상이 아님은 분명하다. 사고 회로가 정지되는 순간이 자주 닥치니 말이다. 재치나 현명한 행동들 모두 여유로워야 그나마 만날 수 있는 초능력 같은 것. 그렇게 '슬기'와는 점점 멀어지다 못해 도망쳐 다닌다. 마치 남의 이야기인양.
35도를 웃도는 폭염에 코로나 4단계까지, 어떻게 대처해야 슬기로울 수 있는 건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 조기 방학까지 해버리니 휴가 일정도 못 맞춘 채 덜컥 독박 육아를 해야 하는 가정이 부지기수다. 나 또한 같은 상황.
집에만 있는 것도 힘든데 엄마랑 둘이서만 놀기에는 꽤 심심하고 답답한 일이 될 것 같아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본다. 그래 봐야 풀빌라, 호캉스, 계곡, 키즈카페가 떠올린 전부. 너무 더우니 수영장이나 계곡 같은 물놀이는 필수이며, 사람은 없어야 하고 시원해야 한다. 이 경우의 수를 모두 만족하는 곳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없.다.
뭐하고 놀지?
엄마표 미술놀이같이 이른바 홈문센이라 일컫는 장르의 놀이는 부지런함의 표본 같은 것. 그러므로 이미 나에겐 맞지 않는 옷이다. 그럼 뭘 입어야 우리 둘에게 꼭 잘 맞을까.
아이가 잠도 잊은 채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한 일이거늘, 요즘 처한 환경은 그 쉬운 일마저 참 쉽지 않게 만들어버렸다. 제한된 범위 안에서 해야 한다는 것 자체도 못마땅하지만 그 또한 우리의 능력 밖인 일. 능력이 닿는 최대한의 범위에서 최소의 힘을 들여 지낼 방도를 찾아내기 위해 머리를 잔뜩 굴렸다. 뭐 그렇다고 굉장히 특별한 일을 생각해낸 것도 아닌, 대다수 엄마의 보편적이고 평범한 여름 방학 계획.
첫날은 유치원 친구들과 함께 키즈카페 대관. 집에서 모여 놀게 하는 게 가장 최선임에도 불구하고 층간소음이 몰고 올 큰 파장은 겪고 싶지 않기에 공간을 통째로 빌렸다. 조기 마감으로 날아간 2시간은 너무 아쉬웠지만, 3시간 30분 가열차게 놀고 땀 뻘뻘 흘리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흐뭇하기도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했다.
둘째 날, 계곡 대신 인적이 드문 동네 뒷산 시냇물로 가려했지만 그간 비가 오지 않아 물이 다 말라버린 상황. 급 노선 변경하여 가게 된 곳은 독채펜션이다. 주택가에 위치한 어느 가정집의 공간을 대여해주시는 곳이라 멀지 않아 딱이었다. 숙박이 아닌 반나절 펜캉스를 즐기기로 한 우리는 시간을 잘 쪼개 쓰기로 한다. 그렇게 물놀이까지 원 없이 즐기고 뻗은 하루.
정신없던 이틀을 뒤로 한채 남은 3일, 그리고 주말까지 5일. 보낸 시간보다 남은 시간이 많다 생각하고 나니 다시 마음이 무거워진다. 함께한 이틀은 벌써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다음날, 아이는 물어온다.
"오늘은 친구들이랑 어디가?"
아이에겐 이틀 만에 이미 당연해져 버렸다. 순식간에 길들여져 버린 일정에 급격히 심심해진 아이 위해 어쩔 수 없이 또 찬찬히 계획이란 걸 세워본다. 친구 초대하기, 친구 집에 놀러 가기, 아침 산책 다녀오기 등등. 비록 준비한 건 없지만 남은 시간 부디 잘 지내주길 바랄 뿐. 그렇게 소소한 우행시를 준비해본다.
아무튼 재미나게
모쪼록 건강하게
최대한 많이웃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