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 그리고 말복
쉬지 않고 울어대는 매미소리, 내리쬐는 햇살 둘러봐도 어느 하나 변한 게 없지만 아침 눈을 뜨고 처음 마시는 공기가 사뭇 다르다. 옅은 한기가 온몸을 감싸는 아침, 가을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우리나라의 절기 입추(立秋)가 지나고 어느새 말복(末伏)이다. 무더위에 갇혀있던 입추 이후 겨우 3일 지난 말복임에도 이리 선선한 공기를 맞이할 수 있다니 왠지 모르게 한껏 여유로워지고 싶다. 조금 느긋해져도 될 것만 같은 하루의 시작이다. 며칠 전만 해도 마치 목숨을 위협하는 듯 살인적인 더위라며 혀를 내둘렀는데 이미 기억 저 너머로 까마득해지려는 거보면 참 사람 맘 간사하다.
거실 온도계를 확인해본다. 평소보다 1도 낮다. 내 눈을 의심하다가 몸 상태도 의심한다. 급기야 몸에 닿은 바람의 흔적까지 부정한다. 몸이 좋지 않아 느낀 찬 기운임에 분명하다로 다다른 의식의 흐름. 감상에 젖다가도 눈에 보이는 사실에 가려져 결국 삼천포행이다.
몇 시간 뒤면 다시 덥다고 에어컨 리모컨을 찾겠지만, 몇 분 남짓한 이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하다. 아이의 기상과 함께 평온함도 물거품처럼 사라지겠지만 지금은 그냥 모르고 싶을 뿐. 더 오래 머물고 싶다면 일찍 일어나 아침을 맞이하는 수밖에. 아이를 더 재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아침이 주는 선물 같은 이 시간 오늘도 내일도 함께 이 고프다.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