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몰고 온 파장 또는 새로운 시작
"우리 이제 거리 좀 두자."
코로나 시발점을 기준으로 쓰임이 가장 많이 달라진 말이 이것 아닐까. 코로나 전에는 감정적 거리였다면, 코로나 후에는 그 누가 생각해도 물리적 거리를 지칭하게 된 '거리두기'. 이 부분에서는 당연하리만치 이견이 없을 테다.
정 넘치는 한국인들에게 사람 간 거리를 둔다는 것은 굉장히 어색한 일이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구내식당에서는 옆자리, 앞자리를 비워둬야 하고 카페에서는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마스크를 써야 한다. 이것마저도 초기에는 코로나 눈치를 보기보다 내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사람들 눈치를 보기 일쑤였다. 이젠 어느 정도 적응했지만 말이다.
사람을 워낙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현 사회적 분위기가 두드러기 날 정도로 안 내킬 수 있겠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한낱 바이러스에 의해 제지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더불어 퇴근 후의 자유를 몽땅 빼앗겼다 느낀다면, 아쉬움으로 시작한 감정이 분노로 마침표 찍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사람에 의해 발생하고 사람에 의해 번져 다시 사람에게 돌아온 바이러스, 코로나.
우리의 정서상 사람 간의 끈끈한 결속력, 인적 재산으로만 따져본다면 단점(불편한 점이 더 어울리는 말이겠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꽤 단편적인 부분으로 눈에 보이는 표면적인 것에 집중한 우리의 편협한 시각으로부터 야기되는 게 아닐까.
직접 마주 보지 않아도 손을 잡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무의식 중에 행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도 그렇다. 지금 누군가 함께 있으면서도 자리에 없는 사람과 폰으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만남을 약속하기 위해 선행하는 것 또한 문자, 메신저를 통한다. 외국 회사와 미팅을 할 때도 굳이 비행기를 타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같은 회사에 있어도 메일로 업무 보고를 하며, 메신저로 퇴근을 알리기도 한다. 이 외에도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만큼 많은 비대면 활동이 생활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살아가는데 '사람'과 '관계'가 정말 중요한 요건이겠지만 거리를 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만나지 않고도 관계를 지속해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어색함에서 비롯된 불안한 감정을 모르는바 아니다. 이제 달라진 환경에 맞게 '사람'을 대하고 '관계'를 맺고 이어나가는 방법도 조금 바꿔보면 된다. 오히려 잦은 만남으로 인해 불거졌던 문제들에서 한걸음 물러나 나를, 그리고 내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것이 긍정적인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소중한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 본다.
사람들 관계의 크레딧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말, 거리두기.
이제 멀리 보아도 오래 볼 수 있는 그런 편안한 거리감에 적응해 보는 건 어떨까.
분명 숨통이 탁 트이는 순간을 느끼는 시점이 있을 것이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