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오보에 동서
우리 처제의 남편, 그러니까 동서는 오보에 전공자다. 오보에가 생소한 사람이라도 '넬라 판타지아'의 메인 선율이라고 하면 대번에 알아차린다. 동서는 가족관계로 얽혔지만 동갑이라 어른들이 없는 자리에서는 호규야 윤섭아 하며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좋은 친구이다.
대학 시절, 동서의 한 끗 다른 오보에 연주 실력에 처제와 처제 음대 친구들이 동서에게 '소울 오보에'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내가 그의 연주를 처음 직관한 것은 처제의 결혼식이었는데, 아직도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넬라 판타지아의 깊은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동서는 결혼 직후 독일로 유학을 가서 석사를 마쳤다. 그리고 올해 초 한국을 방문하고 곧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한국에 계속 발이 묶이는 상황이 되었다. 그게 벌써 몇 달이다.
하지만, 할 일 없이 낭비하는 것 같았던 이 한국에서의 시간은 궁극적으로 그가 진정 음악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역시 사람은 잉여가 되어야 깨닫게 되는가!).
"요양원 같은 곳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연주를 하고 싶어.. 사람을 살리는 음악을 하고 싶어."
같이 밥을 먹다가 그가 이 멘트를 칠 때 뭐랄까, 소름이 돋았다. 한국 나이로 우린 36이다. 낭만적인 일을 찾기보단 현실적으로 안정적인 일을 도모하는 나이다. 하지만 이 나이에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가슴이 뛰는 곳으로 달려가 보겠다는 그의 말을 들을 때 너무나 기뻤고 그의 열정을 응원하고 싶었다.
신기하게도, 그는 곧 동일한 꿈을 공유하는 3명의 독일 유학파들을 만나게 되어 팀을 결성하게 되었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오보에 콰르텟의 탄생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엄청난 실력자들이 한시간도 안되어 결성이 되었다는 것. 동서는 하나님이 붙여주신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된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 시간으로 어제, 대전에서 그들의 첫 공연이 있었다. 전해듣기로는 작은 공연이지만 무수한 감동이 있었던 공연이라고 한다. 영상은 와이프가 찍어 보내온 앙코르 영상이다. 넬라판타지아+주하나님지으신모든세계를 동서가 콰르텟 버전으로 편곡한 곡이다.
6월에도 공연을 하나 더 앞두고 있고, 앞으로 희망하는 요양원이나 병원, 혹은 음악이 필요한 어떤 곳이든 달려가고 싶다고 한다. 피아노 같은 무거운 악기가 없어 의자만 있으면 그 어디든 무대가 될 수 있다고 하니 혹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사람을 살리는 음악이 필요한 곳 있으면 댓글 주시길..!
윤섭아 너의 꿈을 응원해. 이제 시작이야!
p.s. 공연 유투브 영상 올라오면 한 번 더 글을 올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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