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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Aug 09. 2018

레몬마켓과 공포 마케팅 (2)

지난 글에 이어 이번에는 주니어 영어 시장에 만연한 공포 마케팅의 사례를 풀어보고자 한다. 

먼저, 공포 마케팅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공포 소구(Fear appeal) 마케팅은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고통, 손실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강조하며 소비자를 설득하는 방법이다. 이상적인 모습, 유쾌한 결과를 기대하도록 하는 일반적인 마케팅과 달리 불행을 예방하거나 부정적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상품을 소개하고 구매를 권유한다.

출처: 중앙일보 [공포 마케팅의 명암: 두려움을 자극하라, 그러면 팔린다] 


즉, 공포마케팅은 소비자에게 이 상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나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며 구매를 유도하도록 하는 광고의 방법인데, 문제는 사교육 시장에서 가장 잘 먹히는 전략이 바로 이 공포 마케팅이라는 점이다.

정아은 작가의 '잠실동 사람들'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영어 학원에서 공포 마케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많은 학부모와 자녀들이 거기에 어떻게 휘둘려지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오늘, 수정은 학교를 마치고 온 지환을 데리고 영어 학원에 다녀왔다. 축구부 해성과 태민이 다니는 로피아는 요즘 이 동네에서 가장 ‘대세’인 학원이다. 대세인 학원답게 학원비도 인근에서 가장 비싸다. 정규반 수강료에 교재비, 온라인 학습비, 개별 클리닉 클래스까지 포함하면 한 달 평균 오십 정도 되는 돈이 들어간다. 높은 수강료가 마음에 걸렸지만 눈 딱 감고 오늘로 레벨 테스트 날짜를 잡았다. 아이의 평생 영어가 달렸는데 오십 정도는 써줘야 하지 않겠는가. 큰맘 먹고 갔는데, 정작 지환을 등록시키지는 못했다.

  “아이 파닉스부터 떼야겠네요.”

레벨 테스트 뒤 차트를 들고 나타난 학원 상담실장이 이렇게 말했을 때 수정은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럼 파닉스반이 따로 있나요?”

  “저희 초등부는 파닉스를 떼야 들어올 수 있습니다.”

 수정은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다. 레벨이 안 나와서…… 이 학원에 다닐 수 없단 소리구나! 실장은 그 뒤로도 자기 학원 레벨 규정이 엄격하다는 둥 이 동네에서 이 나이까지 파닉스를 안 뗀 애는 처음 본다는 둥 듣기 민망한 얘기를 길게 늘어놓았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둘러 지환을 데리고 나오는데 얼굴이 홧홧했다. 하늘색 벽지에 연보라색 소파가 깔린 넓은 로비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녀만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 '잠실동 사람들' 중에서


자녀에게 영어교육을 시키기 위해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우선 주위의 지인에게 묻거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검색을 해본다. 수만가지 잡다한 정보의 바다 속에서 모모 학원이 좋다더라 정도의 답변을 간신히 얻은 후 동네에 있다는 그 학원, 혹은 비슷한 학원에 아이를 끌고 상담을 하러 간다. 


학원 문을 열고 들어가 이미 수많은 아이들이 수업을 하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면 우리 아이가 이미 늦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아이에게 진단평가를 시켜보고 상담교사와 평가 결과에 대해 상담을 해보면 백이면 백, 아이의 현재 영어 실력은 문제가 많은 수준이라고 엄숙히 선언한다. 심지어 아이 실력이 엉망진창이라며, 영어공부를 도대체 어떻게 이따위로 해왔냐고 혼을 내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서 슬쩍, 이 학생은 우리 학원에서 맞는 수준을 찾기 어렵고, 굳이 등록을 하고 싶다면 제일 수준 낮은 반에 겨우 끼워넣어 줄 수는 있다고 말한다. 그것도 정원이 다 찼기 때문에 지금 당장 등록하지 않으면 곧 마감이 될 것이라고 덧붙이면서. 일부 학원 중에서는 프리미엄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하여 일정 레벨 이하의 학생은 받아줄 수 없다고 딱 자르기도 한다. 일정 수준 이하의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받았다가 기존 학생들의 학부모들의 불만을 살 수도 있고, 거절당한 학부모 입장에서는 더욱 학원에 등록하고 싶어서 안달을 하게 된다.



서울경제, [여전히 활개치는 학원가 '공포 마케팅']



이 상황까지 오면 다른 아이들보다 뒤쳐졌다는 불안과 초조, 아이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죄책감,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하는 올바른 선택이라는 자기 합리화 등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게 되고, 보통의 학부모들은 패닉에 빠져 상담교사가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하게 마련이다. 거의 아이를 볼모로 잡고 하는 협박이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자기 아이의 일인데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학부모가 얼마나 될까. 결국 영어 사설 학원의 공포 마케팅은 다른 아이에 비해 우리 아이의 영어 실력이 얼마나 뒤떨어졌는지 강조하여 학부모에게 공포감을 일으켜 학원 등록을 유도하는 전략인 것이다.


영어 사설 학원의 경우가 좀더 심할 뿐, 어린이를 위한 방문 학습과 온라인 프로그램, 혹은 교재와 전집 류의 홍보 문구도 종종 학부모의 불안감을 부채질하곤 한다. 물론 좋은 학원이나 교육 프로그램 덕분에 우리 아이의 영어 실력이 향상된다면 그것도 그 나름의 의미는 있을 수 있으나, 이러한 공포와 불안감이 결국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것, 우리 아이가 정말 필요한 것을 보지 못하게 학부모의 눈과 귀를 가려버린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는 사실이 있다. 바로 아이의 영어교육은 학부모가 중심을 잡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부모에게 분명한 목표와 계획이 있어야 한다. 영어를 잘 모르고 정보가 부족해서 걱정이 앞서고 자신감이 부족할 수는 있다. 하지만 막연한 생각으로 나섰다가는 이리저리 휘둘리며 불안과 초조에서 비롯된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리고 그 잘못된 결정의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아이에게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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