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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재 Aug 05. 2024

초고속 결혼, 제가 해 봤는데요

독신으로 살자 마음먹은 해에 연애와 결혼까지 한방에 끝내다

만난 지 6개월 만에 초고속 결혼


전설처럼 남들이 하는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내 이야기가 되다니. 근 10년간 꽉 막혀있던 나의 연애 운이라는 것이 우주의 기운을 받아 한 번에 만개를 했던 듯싶다. 아, 이번 해도 또 (결혼 못 하고) 가는구나 하고 지칠 대로 지쳐 맞이한 새해. 내 인연은 이 세상에 없나 보다 혼자 씩씩하게 살아가자며 혼자 사는 방법에 관한 책들을 키워드 바꿔가며 샅샅이 찾아 잔뜩 주문부터 했다. 그리고 독신으로 살면서도 외롭게 지내지 않기 위해 회사 외의 소속을 만들기로 했다. 싱글 여성들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 도와주는 커뮤니티 개설에, 성당 활동도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독신 마스터플랜을 착착 진행시키던 그 무렵, 비슷한 시기에 같이 부서 이동을 해 온 동료 분에게서 혹시 소개팅 받아 볼 생각이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무소의 뿔처럼을 가장한 비장함은 온 데 간데 사라지고 혹시 모르니 소개를 받아보기로 했다. 나보다 하나 연하라고 하니 한 살 차이에 어이없게 누나 소리나 듣지 않고 오면 다행이겠다 하면서 큰 기대 없이 나간 소개팅. 약속 장소가 위치한 역 출구를 나서는데 웬 중저음 목소리의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혹시..." 그 와중에 체크한 키, 덩치. 나보다 다 크다! 만나기로 했던 소개남이었다. 그가 예약해 둔 식당에서 큰 불편감 없이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식사를 하고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이제껏 그런 제안을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평일 퇴근 후 시간이었어서 마주 보는 식 말고 한쪽 면에 같이 기대어 이야기 나누자고 했다. 나로서는 호감의 표시? 여우짓? 이였다기 보다는 같은 직장인으로서의 약간의 배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가 생리적으로 싫거나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면 굳이 제안하지 않았을 제안이기도 했다. 슬슬 자리를 파할 무렵, 바로 다음 날 내가 사는 지역 근처로 볼일이 있어 올 일이 있는데 같이 저녁 먹을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 이건 형식적인 애프터 약속보다는 좀 급해 보이니 그린 라이트인가, 일단 좋다고 했다. 그다음 날, 바로 그 주의 주말,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만나게 되었고 그의 결정적인 한 마디를 기점으로 연인 사이가 되었다. 새해에는 독신 모드였는데 두 달이 채 되지도 않아 갑자기 연애 모드로 전환되었다.


그와 나는 일단 먹는 게 참 잘 맞았다. 나한테 일방적으로 맞추는 거였더라면 나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챘을 텐데 실제 내가 좋다고 맛있다고 여기는 음식을 그도 맛있다고 좋다고 했다. 그리고 나와 쓰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어떤 연애에서는 상대가 너무 구두쇠라 항상 결제할 시간이 다가오면 신경이 쓰였는데 이 사람과의 연애에서는 으레 그가 밥을 사면 커피는 내가 사는 식의 소위 말하는 여자 사람대접받는 연애가 자연스럽게 가능했다. 그와 카페를 가면 꼭 마주 보지 않고 같은 방향을 보고 앉곤 했는데 그는 소개팅 때 내가 이 제안을 했을 때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엄청나게 큰 의미를 두고 한 제안은 아니었지만 좋게 풀리는 데에 작용을 했다니 약간 놀라웠다. 내가 재택을 하는 날엔 그와 함께 근무를 하기도 했다. 결혼을 한 이들이 종종 SNS에 올리던 사진의 장면을 나도 연출할 수 있음에 만족했다.


결혼이 급 진전된 비결이랄까. 나는 종교적인 이유로 혼전순결주의자이다. 아마도 나의 그간 연애 사업이 순탄치 못했던 이유는 이 부분이 컸을지도 모른다. 그와 점점 더 가까워지게 되면서 한 만화방 데이트에서 이 사실도 털어놓게 되었는데 이 얘기를 들은 그로부터 "그럼 빨리 결혼해야겠네?"라는 말이 대번에 나왔다. 뭇 여성들이 남자 친구를 그렇게 구워삶아도 나오기 힘들다는 그 한 마디. 그때부터 우리의 데이트는 결혼 준비가 주제가 되었다. 결혼 준비에 대해 A-Z까지 알려준다는 백서 같은 책을 사서 그 무엇보다 식장 예약이 가장 먼저라는 결론을 얻고 평소 내가 눈여겨봐 왔던 명동성당 온라인 스케줄표를 확인했다. 여름은 너무 덥고, 가을이 가능할까 보는 순간 너무 괜찮은 일자, 괜찮은 시간에 딱 비어있는 것이 아닌가. 현장에 예약금을 가져오는 순으로 확정이라 가는 차 안에서 그는 부모님께 본인의 결혼 계획을 알렸다. 노하우가 괜히 있는 게 아니었어, 진짜 식장을 예약하고 날짜를 떡하니 박아두니 일사천리로 모든 게 이뤄졌다.


예물 예단, 스튜디오 생략, 드레스, 메이크업 업체 투어하고 정하기, 청첩장 만들기... 양가 부모님 인사드리기, 가장 떨렸던 상견례까지 물 흐르듯 착착착 진행이 되었다. 어느샌가 보니 식장이었고 스튜디오를 안 했다고 전해 들은 사진 기사님께서 우리를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면서 찍어주시느라 나는 신부 대기실에는 딱 5분 앉아있고 식장에 들어갔다. 내가 원했던 성당 결혼식, 내가 활동하는 성가대에서 불러주는 축가, 센스 있는 신부님의 주례 3박자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결혼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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