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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털복숭이 Aug 13. 2020

억울한 피해자들

상처입은 몸과 마음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스마일센터에 법률상담을 하러 간다.

스마일센터는 범죄피해자의 정신적 안정을 위해 심리치료 및 법률상담, 임시주거시설 입소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법무부의 피해자 보호 지원 제도 중 하나이다.

일주일에 한 건에서 많으면 세 건 정도의 상담을 하는데, 대부분은 성범죄 피해자들이고 가정폭력이나 데이트폭력의 피해자들도 더러 있다.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 여성분들이다.

그런데 최근에 어쩐일인지 상해 피해를 입은 남자 두 분을 상담하게 되었다.  




한 분은 30대로 보이는 젊은 남자 분이었는데 노숙자와 시비가 붙어 상해를 입게 된 경우였다.

피해자가 계단에서 길을 막았다는 이유로 노숙자는 자리를 피하려는 피해자를 쫓아가 주먹으로 명치와 얼굴부위를 수 회 때리고 넘어진 피해자의 머리와 몸 부위를 발로 밟아 전치 4주의 상해를 입힌 사건이었다.

이미 1심 판결이 선고된 후였고, 피고인은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의 형을 선고받았다고 했다.

피해자는 이후의 절차에 대한 궁금증과 치료비 등 손해에 대한 피해보상을 위해 상담을 신청하였다.


우선 피고인이나 검찰의 항소 여부에 따라 판결이 확정되거나 항소심 재판이 계속될 수 있다.

피고인만 항소한다면 불이익변경금지원칙에 의해 1심 판결보다 피고인에게 불리한 형이 선고되지 않는다.

만약 검찰도 항소한다면 형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억울한 피해자로서는 탄원서 등을 제출해 본인의 힘든 사정과 피고인을 엄벌해 처해 줄 것 등을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치료비와 위자료, 즉 손해배상을 어떻게 받느냐였다.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해야 할 것인데, 승소한다고 해도 경제적 능력이 없는 노숙자가 피해자에게 제대로 된 배상을 할 수 있을리 만무하였다(만약 피해자가 장해나 중상해를 입거나 사망한 경우에는 본인이나 유족이 범죄피해구조금을 신청할 수 있다).

판결문은 한낱 종이쪼가리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은 적극적 손해와 소극적 손해, 정신적 손해로 이루어져 있으니 각각에 해당하는 금액을 계산하여 모두 더한 금액을 청구금액으로 하면 될 것이고, 소가가 3000만원 이하인 경우에는 소액재판으로 진행되니 스스로 소장을 작성하여 나홀로 소송을 해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소장을 작성하는 방법과 증거서류 수집하는 방법도 구체적으로 알려주었다.

하지만 피해자도 알고 있을 터이다. 배상받기 힘들거란걸.


정확하게 사건의 진행과정이 어땠는지는 양 쪽 말을 다 들어봐야겠지만, 피해자로서는 노숙자에게 재수없게 걸려 마른하늘에 날벼락으로 몸은 몸대로 상처를 입고 치료한다고 돈은 돈대로 쓰고 이리저리 신경쓰느라 시간도 버리고 마음도 다치고 말았다.

피해자는 자꾸만 그 날의 기억이 떠올라 길거리를 걷다가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일이 종종 있으며, 그래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근래 여성을 향한 묻지마 폭행 기사를 접하고 두려움에 몸서리쳤는데, 신체 건강한 남성도 이런 일을 겪는 세상이니 무탈하게 하루를 보내는 게 감사할 지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분은 60대가 가까워보이는 중년의 남성분이었다.

심하게 다치셨는지 목발을 짚고 절뚝절뚝 걸어오셔서 의자에 앉았다.

사건의 경위는 이러했다.

피해자는 친구와 친구의 지인(친구와 업무적으로 얽혀 있는 관계)과 술자리를 가졌고 그 후 당구장에 가서 게임을 하다가 피해자가 속임수를 썼다는 이유로 친구의 지인과 실랑이를 벌였다. 피해자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대리기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친구의 지인이 다가와 피해자의 멱살을 잡아 흔들고 목을 손날로 한 대 가격한 후 우측 다리를 걷어차 넘어뜨렸고 피해자는 무릎이 돌아가는 전치 12주의 큰 상해를 입고 말았다.

피해자는 이미 두 차례의 수술을 한 상태였다. 얼굴도 많이 지쳐보였다.


경찰에 신고하였고 고소인과 피고소인 조사는 마쳤는데, 피고소인(친구의 지인)이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고 하였다. 실랑이가 있었던 것 까지는 인정하지만 피해자를 발로 차 넘어뜨린 적은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피고소인이 저렇게 발뺌하며 뻔뻔하게 모르는 척 하는 태도도 어이가 없지만, 문제는 증거가 피해자의 진술과 상해진단서밖에 없다는 데 있었다.


아니 우리나라처럼 길거리 곳곳에 씨씨티비가 있는 나라도 드물고, 옆에 친구가 그 상황을 모두 보고 있었고, 119 구급대에게 사건에 대해 말할 기회도 있었는데, 어떻게 증거가 하나도 없을 수 있냐고 물었다. 뒤이은 피해자의 대답이 정말 안타까우면서도 답답했다.


그 때는 정신도 없었고 남자(본인)가 맞았다는 게 너무 부끄럽고 쪽팔려서 누구한테 맞아서 다쳤다고는 말하지 못했고 턱에 걸려 넘어졌다고 말했다는 것이다(심지어 병원에서도). 가해자가 처음에는 치료비를 줄 것처럼 친구를 통해 말을 전해와서 수술이 다 끝나면 가해자가 사과하고 치료비를 줄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런데 계속 말과 태도가 바뀌더니 어느 순간부터 본인이 안 했다는 식으로 나와서 결국 사건이 발생한 후 한 달도 더 지나서 경찰에 신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친구가 참고인 조사를 받았으나 친구도 가해자와 업무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관계다보니 사실대로 대답하지 못했던 모양이라고 했다. 사건이 벌어졌던 장소에 있던 씨씨티비도 시간이 많이 지나 삭제된 상태였다.

그럼 친구나 가해자, 아니면 가족이나 다른 지인들과 사건에 대하여 나눈 대화를 녹음한 것이나 사건에 관해 문자를 한 것이 없는지 물어봤으나 없단다. 모두 전화통화나 대화로 이야기했는데 녹음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휴...한숨이 나왔다.


설상가상으로 경찰에서도 다른 증거는 없는데 양 쪽의 주장이 다르니 피고소인 상대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한 모양인데, 피고소인 말이 모두 '진실'로 나왔다는 것이다! ?? 정말로 맞아서 다치신 것 맞죠?

님은 엄청난 강심장???!

물론 판례가 거짓말탐지기의 과학적 정확성을 인정하고 있진 않지만 그래도 영향을 주긴 할 터이니 경찰이 불기소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로서는 본인의 주장을 입증할 증거를 계속 찾아보고, 탄원서를 써서 제출하고, 현재로서는 유일한 목격자인 친구를 상대로 참고인 조사를 다시 한 번 해 줄 것을 검찰에 요청하고, 친구와 가해자 간 나눈 대화나 문자로 피해자 주장사실을 입증할 수도 있으니 그러한 것들에 대한 수사를 요청하는 방법밖에는 없어보였다.

부디 입증이 잘 이루어져서 가해자가 처벌을 받기를.


사람을 너무 믿었던 본인이 잘못이라며 고개를 숙이고 자책하는 피해자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수술을 2번이나 받고도 여전히 성치 못한 다리와 앞으로 계속해야 하는 재활치료, 그 간의 치료비며 여러가지 비용, 친구 잃고 사람에게 상처받은 마음... 회복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어떻게 문자 하나 없을 수 있냐고요~ㅠㅠ  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상담실 문을 나왔다.




억울한 범죄피해자분들 이야기를 하니 나까지 속이 꽉 막힌 느낌이다.

사이다라도 한 잔 마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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