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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털복숭이 Jun 30. 2021

마이 베스트 트래블메이트

동생과의 추억 곱씹기

하늘길이 막힌 지도 어언 1년이 훌쩍 넘었다.

이렇게 될 줄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코로나가 막 심해지기 직전 작년 1월 설날 연휴에 동생이랑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갔다 왔었다. 육아 스트레스를 핑계 삼아 부모님과 시부모님 찬스로 당시 4개월이었던 꿀댕이를 뒤로 한 채 걱정 반 설렘 반으로 떠났던 온천여행은 지금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일본이라 주변 눈치가 보여 조심조심 다녀왔는데, 그 때 안 갔으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싶다.  


비행기 표를 끊고 그것만 오매불망 바라보며 따분한 일상을 견디는 나였는데, 여행을 못 가게 되니 반복된 하루하루에 지루함이 겹겹이 쌓이고 있다. 중간중간 국내여행도 하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바람도 쐬고 있지만, 그걸로는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랄까.

여행계획을 세우며 무엇을 먹을까 어디를 가볼까 들뜬 마음으로 이것저것 리서치하고, 하루는 빡센 여행자 모드로 박물관과 미술관을 둘러보고 하루는 현지인처럼 느긋하게 시장을 구경하며 공원에서 빵을 뜯을 상상을 하고, 무엇을 입을까 어떤 책을 들고 가볼까 고민하며 설레는 기분으로 짐을 싸고, 마침내 여행 당일 부푼 마음으로 공항으로 향하는...내가 사랑하는 이 모든 과정들이 아마도 국내여행에선 많은 부분 생략되기 때문일 것이다. 일년에 한 두번 반값으로 화장품을 쟁이는 면세찬스는 덤이고!


여행에의 갈증이 심해졌다가 어쩔 도리가 없으니 체념하기를 반복중이다.

극도로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 전에 놀러갔던 여행지 사진을 뒤적여보거나 여행서적을 읽으며 대리만족을 하다가, 아… 결국에는 현실의 벽을 마주하고 더 깊은 우울 속으로 빠져든다.

보통 일 년에 두어번정도 여권에 도장을 꽝꽝 찍었다.

도장이 빼곡하게 찍힌 종이를 볼 때면 괜스레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대학생이 되기 전에는 부모님과 단체여행을 간다거나 1개월짜리 짧은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정도였고,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주로 여동생과 여행을 다녔다. 마음맞는 친구들과 다녀온 적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내 본모습을 여과없이 보일 수 있고, 식성도 비슷하고, 계획이 틀어졌을 때의 미안함과 짜증도 조건없이 용서하고 또 용서받을 수 있는 관계인 동생은 제일 좋은 여행메이트였다. 결혼 이후에는 주로 남편과 갔지만 육아여행을 핑계로 동생과 또 갔다올 수 있었지. 후후


우리는 홍콩, 일본 여러 차례, 파리, 프라하, 프랑스 남부, 이탈리아 여러 도시, 미국 뉴욕과 서부, 방콕, 싱가폴 등을 함께 여행했다.

동생이 대학교를 일본에서 다녀서, 대학생때는 동생을 핑계로 방학이면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본은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불편하다는데, 동생이 일본어로 다 말해주고 교통편도 착착 해결해주니 아주 좋았다. 동생 기숙사나 원룸에서 자면 되어서 경비도 얼마 들지 않았고 동생이 가이드며 통역사 노릇을 완벽히 해 주어서 정말 편하게 돌아다녔던 기억.

졸업 후에도 틈만 나면 우리는 시간을 맞춰서 비행기표를 사고 여행 계획을 짰다.

스스로 돈을 벌기 전에는 비행기 표를 미리 예약한 후 엄마한테 연락해서 결제해달라고  통보하는 식이었는데, 부모님은 딸 둘만 여행가는 것을 늘 걱정스러워 하시면서도 말리지 못할 것을 아셔서 그런지 결제는 해 주셨다. ㅎㅎ


로스쿨에 입학하기 전 갔던 한겨울의 뉴욕, 둘이서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유니언스퀘어에서 타임스퀘어까지를 걸어다니고 저렴한 가격에 티켓을 득템해 뮤지컬을 보고 한인민박 사람들과 어울려 맛있는 음식을 해먹고 겁도 없이 브룩클린 거리를 정처없이 걷다가 유대인 마을에 들어서는 바람에 날이 어둑해지도록 지하철역을 찾지 못해 처음으로 둘이서 벌벌 떨었던 기억 등 그때 그 15일의 추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딱 기분좋을 정도의 찹찹하고 상쾌한 공기가 가득했던 가을의 프라하와 파리도 정말 좋았지. 도시가 작아서 걸어서 모든 것이 가능했던 프라하와 거리 곳곳, 발 닿는 곳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아름다워 걸을 수밖에 없었던 파리, 젊었던 우리는 참 많이도 걸었다.

더 이상 걷는 여행은 하지 않으리, 다짐에 다짐을 하고서도 또 다음 번 여행지에서 어김없이 고생해 준 발과 다리를 밤마다 주무르며 미안해하곤 했던 우리. ㅋㅋ

어느 날엔 좀 특이한 곳을 가고싶어, 사람 많이 없는 곳…

여러 옵션을 두고 검색한 끝에 니스와 에즈, 생폴드방스, 그라스 등 프랑스남부로 결정을 했지. 그 때가 니스에서 테러가 났던 직후라 부모님이 매우 걱정을 하셨는데, 원래 그럴 때가 가장 안전하다는 아무말을 시전하며 우리는 떠났다.

여유로운 무드와 살랑이는 느낌,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낭만이 가득했던 그 여름.

나중에 안 사실인데 여기 우리나라 사람들이 신혼여행지로 많이들 가는 곳이었다. 그럴만 해.

모든 것이 천천히 흘렀던 니스 해변, 골목골목 예뻤던 생폴드방스


참 깨끗하고 안전했던 싱가폴은 부모님이나 아기와 함께 가족여행으로 와도 좋을 것 같았고, 비싼 것에서부터 벼룩시장에 이르기까지 쇼핑할 것들과 아기자기한 카페, 멋진 뷰를 자랑하는 팬시한 라운지클럽이 잔뜩 있는 방콕은 더 늦기 전에 여자친구들과 다시 찾고 싶은 곳이었다.


이탈리아는 흠…한 챕터의 일부분으로 기록을 남기기에는 지면이 모자라, 다음 번에 자세하게 다시 쓰는게 좋겠다.

2015 겨울, 당시 로스쿨을 막 졸업한 커플이었던 나와 남편은 각자 여동생과 형이랑 여행을 하다가 피렌체에서 만나 베네치아를 넷이서 함께 여행하는 일정을 계획했는데, 특히 피렌체 더몰(아울렛) 사건은 나와 동생, 남편에게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정도만 언급하고 넘어가는걸로.




주절주절 쓰고보니 참 많이도 같이 쏘다녔다 싶다.

동생과 함께 하는 여행 언제 또 해볼 수 있을까.

얼른 하늘길이나 열리면 좋으련만…이 놈의 지겨운 역병은 목숨도 길어서 버전을 바꿔가며 존재하지를 않나 백신도 못 믿겠고, 다시 또 엄중한 상황이라는 오늘자 기사에 걱정만 한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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