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할아버지의 헌법소원
2023년 연말, 다음 해의 헌법재판소 국선대리인*으로 선정되었다.
당시 반복적인 일에 무료함을 느끼던 차라 업무 환경에 조금이라도 생기를 줘 보고 싶은 마음에 가볍게 지원한 것이었는데, 덜컥 선정되어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생각한 것보다 일이 너무 많을까봐.
* 형사사건에서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사선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피고인을 위해 법원이 국선변호인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처럼, 헌법재판소도 기본권 침해를 받아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는 사람들이 경제적 여건으로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는 경우를 대비해 국선대리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24년이 되고 몇 달이 흘러 국선대리인 선정에 대한 기억이 점차 흐려질때쯤, 헌법재판소로부터 두꺼운 우편물이 왔다.
옷! 드디어 나에게 사건이 배당되었구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니, 폭행죄로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할아버지가 자기는 폭행을 저지르지 않았으니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청구한 사건이었다.
반드시 접촉해야만 폭행죄가 성립하는 것이 아니고 손을 올려 상대방을 때릴 듯이 위협하기만 해도 폭행죄가 성립할 수 있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폭행죄 성립요건을 잘 알지못해 헌법소원을 청구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수사기관에서 근거도 없이 처분을 했을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
우편물을 받고 몇 시간이 지났을까.
회사로 전화가 왔다. 본인 사건 국선변호사가 맞냐면서.
청구서에 적힌 인적사항을 보고 사건 당사자가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목소리를 들으니 그 억양과 말투를 통해 어떤 분인지 대충 예상이 되었다.
까칠하고 고집이 센 느낌?
그리고 뭐랄까… 앞으로도 엄청나게 전화를 많이 할 것 같은 예감?
역시 그런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지.
당사자 입장에서 억울한 건 알겠는데 할아버지는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를 걸어서 앞으로 어떻게 할거냐, 만나야 하지 않겠냐, 만나서 직접 경위를 설명하고 싶다, 헌재에서 받은 서류가 무엇이냐 등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나는 형사기록이 도착하면 기록을 먼저 보고 사건 내용을 파악한 뒤 궁금하거나 여쭤볼 것들을 정리해서 연락드리겠다고 매번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며칠 뒤 형사기록을 받아볼 수 있었다.
기록을 통해 살펴본 사건의 경위는 이러했다.
청구인인 할아버지는 아내와 함께, 피해자는 모, 남편, 자녀와 함께 각각 주거지에 거주중으로 이웃지간이다.
할아버지 가족과 피해자 가족은 복도식 아파트인 자신들의 주거지 현관 앞의 계단으로 통하는 방화문을 열어두는 문제로 평소 갈등을 겪어 왔다.
할아버지는 방화문을 열어두려고 하고, 피해자는 닫아두려고 하면서 서로 말다툼을 하기도 했고, 할아버지는 피해자의 남편, 자녀와 언쟁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 할아버지와 피해자는 또 위와 같은 문제로 말다툼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 피해자는 할아버지의 아내를 향해 “네 년 눈깔을 프라이팬에 튀겨버릴 거야.”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다음 날 피해자를 협박으로 경찰에 신고하였고, 경찰을 통해 사건 접수 사실을 전달받은 피해자는 자신 역시 할아버지로부터 폭행 피해를 입었다고 진술하였으며, 경찰은 피해자를 할아버지에 대한 협박 혐의로, 할아버지를 피해자에 대한 폭행 혐의로 각 입건하여 수사를 개시하였다.
경찰의 피의자신문에서 할아버지는,
본인은 피해자와 언쟁을 한 사실이 있으나 모두 피해자 측에서 먼저 욕설을 했기 때문이며 피해자가 본인의 목 뒷부분 옷깃을 잡아당긴 일이 있었고, 이 사건 당시에도 피해자가 본인 처를 향해 협박성 발언을 했으나 본인은 그냥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을 뿐이며, 본인은 피해자를 향해 손을 드는 등 폭행을 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다.
한편 피해자는,
사건 당일 밖에서 큰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청구인(할아버지)이 방화문을 열고 있어서 자신이 닫았더니 청구인이 “왜 닫냐?”고 하면서 손을 얼굴 앞까지 들어 올려 맞을까봐 두려웠다. 청구인이 키도 크고 손고 크고 하니까 무서웠고, 남편이 나와서 아내에게 손대지 말라고 조용히 이야기를 했는데 엘리베이터가 오자 청구인과 그의 처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갔다고 진술했다.
할아버지는 경찰에 사건 당시 상황이 녹음된 녹음 파일 녹취록 2건을 제출했는데, 이에 따르면 할아버지 측과 피해자 측이 방화문 개폐문제로 말다툼을 하는 상황, 할아버지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피해자가 집으로 들어가는 할아버지의 아내에게 협박성 발언을 한 것 등이 확인된다.
경찰은 할아버지를 피해자에 대한 폭행 혐의로, 피해자를 할아버지에 대한 협박 혐의로 검찰에 송치하였다.
이후 검찰은 할아버지가 제출한 녹음파일의 내용, 경찰에서의 각 피의자진술조서를 확인하고 각 상대방에 대한 처벌의사를 물었는데, 피해자는 할아버지가 합의를 한다면 자신도 합의할 의사가 있다고 하였으나, 할아버지는 자신은 피해자를 폭행한 사실이 없으므로 합의할 의사가 없다고 진술했다.
결국 검찰은 피해자에 대해서는 협박죄,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폭행죄에 대한 각 기소유예처분*을 한 것이다.
*기소유예처분이란 피의사실은 인정되지만 여러 사정(피의자의 연령, 성행,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 동기, 수단, 범행 후 전황 등)을 고려해 공소제기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될 때 하는 검사의 처분을 의미한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폭행의 피의사실 자체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방법을 알아본 끝에 헌법소원을 통해 위 기소유예처분을 취소시키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기록을 통해 사건의 경위를 파악한 후, 할아버지에게 사실확인을 위한 연락을 시도했다.
할아버지는 왜 이제야 연락했냐는 듯 성미 급한 말투로, 사실관계를 확인하려는 나의 물음에 그것 만으로는 사정을 다 알 수 없다며 그간 피해자와의 모든 에피소드를 읊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어야하나.. 적당히 끊을 타이밍을 보고 있던 와중, 할아버지는 전화로 이 모든 걸 얘기하기는 힘들다며 한 번 만나야겠다고 했다.
메일이라는 좋은 수단도 있지만 할아버지는 메일 주소도 없고 쓸 줄도 모른다고 하셨고, 말이 길어지면 호통이 떨어질 것만 같아 한 번은 만나야 할 것 같았다.
출장이 잡힌 날에 서로의 중간 쯤 되는 장소에서 할아버지를 만났다.
서류뭉치를 한다발 들고 계셨는데, 꼬장꼬장해 보이는 모습이 상상했던 그대로여서 흠칫 놀랐다.
한참동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사건 관련해서는 형사 기록상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좀 더 보충적인 내용을 첨가하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 이전부터 이어져 온 이웃간의 갈등은, 조금 보태면 뉴스 기사를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요즘 층간소음이니 흡연문제니 이웃 간 크고 작은 불씨로 다툼이 발생하여 형사사건으로 비화되는 케이스도 있고, 그런 소재의 영화도 많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과 다를바 없었다. 여전히 할아버지와 피해자는 껄끄러운 관계인채로 옆집에 거주하며 일상을 이어오고 있었다.
가장 안락하고 편안해야 할 집이 이웃으로 인해 불편해진다면? 불편을 넘어 공포로 다가온다면?
일상이 뿌리째 흔들릴 수도 있지 않을까?
당장이라도 이사를 갈 수 있다면야 다행이지만, 경제적 상황과 직장 등 여러 복합적인 문제가 결부된 생활의 터전을 한번에 바꾸기란 쉽지 않기에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서로 조금만 양보하고 타협하면 모두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인데, 조금만 조심하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하면 좋을텐데, 조금만 신경써서 부드럽고 유한 말투로 대화했더라면 이렇게까지는 안 됐을텐데.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쉬워 보이는데, 막상 당사자가 되면 어려운 것일까?
할아버지의 말투나 태도를 보면 그게 좀 어려울 것도 같았다. 기록을 통해 본 상대방인 피해자도 한 성격 하는 것 같았고.
암튼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채 할아버지와의 첫 만남은 끝이 났다.
이젠 이 사건 자체에 집중할 차례였다.
가만보니 수사기관이 폭행 혐의를 인정한 근거가 너무 빈약했다.
폭행의 직접 증거도 없고, 사건 현장을 본 참고인의 진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건 현장을 담은 cctv도 없고, 오로지 피해자의 진술에만 의존하여 너무 쉽게 혐의를 인정해 버린 것 같았다. 더욱이 할아버지는 피해자의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았고 손을 올린 적도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었다.
이 점에 포커스를 맞추고 이전부터의 갈등상황을 부각하여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향으로 서면을 작성했다.
할아버지에게 메일주소가 없으니 서면 작성 후 할아버지에게 보여드리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일일이 사진을 찍어 문자로 전송하다가, 본인도 불편했는지 결국 메일주소를 하나 만드셨나보다.
그 후에는 소통이 좀 편해지긴했지만 불필요하거나 오히려 유해한 내용을 서면에 넣어달라는 요청을 수시로 하셔서 일일이 대응하며 설득하는 일이 좀 힘들기도 했다.
그렇게 몇 번의 메일 교환이 있고 난 후 서면을 제출할 수 있었다.
이후에는 기약없는 기다림이다. 결정이 언제 날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선고기일이 언제로 지정되었다는 통지를 받기 전까지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한 달에 한 번씩 생각날 때마다 전자소송 사이트로 사건 경과를 확인했지만 여름,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될 때까지도 헌재로부터의 통지는 없었다.
해를 넘기고, 뭔지 모르게 낯설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와 받았더니 할아버지였다.
자기 사건 어떻게 됐냐는 전화였다.
“제가 생각날 때마다 확인하고 있는데요, 아직 선고기일이 통지되지 않았어요. 무슨 소식 있으면 제가 연락드릴게요.”
할아버지는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냐는 볼멘 소리를 했고, 소식 있으면 바로 연락드리겠다는 말을 하고선 전화를 끊었다.
이쯤되면 나도 너무하다~ 싶을때쯤, 1년이 조금 지난 시점에 드디어 헌재로부터 문자가 왔다!
해당 사건의 선고기일이 지정되었다는.
이 소식을 얼른 할아버지에게 알렸다.
결과가 궁금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기대하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헌재 사건이 많은데다 이렇게 작은 사건에 일일이 신경을 써줄까 싶은 마음도 있었고, 주장할 내용이 있기는 했지만 아주 명확하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워낙에 성격 자체가 100%확신을 필요로 하기에).
만약 좋지 못한 결과가 나오면 할아버지에게 어떻게 잘 설명해야하나, 그 걱정도 조금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선고 당일! 그 날 너무 바빴는지 선고날인걸 잊고 있었는데, 할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처분 취소한다는 결정 나왔네요.“
“아 진짜요?? 너무 잘 되었네요~ 축하드려요!!.”
“네~ 결정문 보시는대로 메일로 좀 부탁드려요.”
뜻밖이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할아버지의 말투가 전보다 매우 유해지기는 했지만나에게 고생했다느니, 감사하다느니 하는 말은 하지 않았는데, 그게 내심 서운했다.
본인으로서는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나로서는 꽤 많은 품과 시간을 들이고 감정 소모도 했는데…
하지만 내 스스로는 정말 보람찬 결과였다.
헌법소원 사건에서 처분 취소 결정을 받아보다니! 첫 국선대리인 사건을 좋은 결과로 마무리지어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결정문을 받아 보았더니, 내가 주장한 내용이 거의 그대로 반영되었더라.
헌재가 작은 사건도 놓치지 않고 정의 구현을 위해 세심히 살핀다는 것을 느꼈고, 1%의 가능성이 있더라도 억울한 당사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 근거를 찾고 주장을 하면 좋은 결과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 뒤로 할아버지의 연락은 없었다.
어떻게 지내고 계실지.
부디 옆집 사람들과 큰 트러블 없이 잘 지내고 계시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