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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Nov 27. 2023

지금, 잃어버리는 중입니다

<물꽃의 전설>, 제주 다큐


*이야기는 늘 그렇듯 두서가 없으며 매우 주관적일 예정입니다. 



얼마 전 처음으로 렌트 없이 제주도를 며칠 짧게 여행하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라는 기사님과 수다를 떨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해주셨다(사실이 아닐 수도 있음. 반박 시 나 말고 기사 아저씨가 나쁨(??!!).).


[다 음]

-과거 제주도에는 여자가 70명인 마을에 남자가 3명인 식의 성비를 가진 마을이 많았다. 조금만 불리하면 남자가 도망가니까 도망가는 거보단 놈팽이가 나아서 여자가 참았다. 그러다 보니 힘겨운 해녀의 삶이 시작됐다. 이어도라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노래를 불렀지만 그거 사실,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았다는 얘기니까.

-어쨌든 육지에서 별 볼 일 없는 놈들이 유배를 와도 여자들이 잘해줘서 천국 같은 곳이었다

-삼다수는 원래 80년 된 물이었다. 증발하여 산을 타고 올라온 물이 다시 한라산 정상에서 물이 되어 땅으로 스며서 추출되는데 자연적으로는 80년이 걸린다. 다만 기업들에서는 그 주기가 20년이 되도록 중간에 파이프를 박아 넣었다. 그리고 공장이 바닷가에 있으면 못된 짓 하는 게 너무 표 나니까 좀 으슥한 곳에 지었다. 도민은 원래는 돈 안 내고 먹던 물을 돈 내고 먹게 됐는데 육지에서 1100원 하는 걸 300원에 먹을 순 있게 되었다. 그리고 육지 사람도 섬사람도 아무도, 80년 동안 바다와 하늘과 땅을 순환해 다시 물이 된, 이곳만의 귀한  물을 먹을 수 없게 됐다. 

-취직을 육지에 가서 하다 돌아왔는데 서울에선 나더러 자꾸 귤을 달래서 서울 갈 때마다 별 수 없이 귤을 돈 주고 사가지고 갔다. 제주도 사람이 귤을 돈 주고 사다니...

-너네 집 귤밭하냐만큼 많이 들은 말이 너네 엄마 해녀냐라고 한다.

-나는 50대라 제주어를 쓰지만 요즘 제주애들한테 내가 말해도 못 알아듣고 안 쓰는 단어가 많다. 결국 제주도 말은 우리 세대가 죽으면 사라질 예정이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이지만 제주도는 제주시 아닌 데 사는 놈은 전부 시골 놈이다. 제주도민들끼린 모두 암묵적으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어느 날 서귀포의 아는 녀석과 술을 마셨는데 그 녀석은 계속 서귀포도 '시'니까 도시라고 했다. 그러나 거나하게 술에 취해 집에 돌아가려고 택시를 부르면서 이렇게 말하며 스스로 시인했다고 한다. "아 형님 나 못 자고 가. 시골 가야지. 엄니가 잠도 안 자고 저 기다려요."


나는 이런, 내가 사는 곳에서 듣도보도 상상도 못 했던 재미있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한참 동안 듣는 일을 좋아한다. 모든 고유한 자신만의 이야기는 이상하게 너무 다른 환경에 있는 사람에게도 쉽게 가 닿는 힘을 가졌다. 그리고 자신의 주관과 해석이 들어간 이야기를, 쉽게 믿지는 않지만 그저 듣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기사님의 이 이야기들은 제주도 가려고 여행 떠나기 며칠 전에 혼자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보았던 '물꽃의 전설'과 비슷했다. 두 이야기 모두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고 자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봐, 이게 내가 사랑하는 이곳의 그 무엇이야"라고 오랫동안 그 속에 깊이 들어가 살아본 사람만이 내놓을 수 있는 해석을 덧붙인 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고. 


주어진 운명을 순하게 받아들이지만 하루의 과업이 너무 고되어, 말 그대로 신체에 가해지는 고통이 사선을 넘나드는 수준이어서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일이 부지기수여서 불렀던 해녀들의 노래 '이어도'. 

상군 해녀는 아무나 노력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타고나야 한다. 현순직 할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유달리 물질을 잘하고 물길에 능했다. 타고난 머리도 좋고 신체조건도 탁월했기 때문이리라. 최연소 상군해녀가 된 현순직 할머니는 그렇게 물질을 해 번 돈으로 아들 셋을 장가보내고 제주시에 각각 집도 한 채씩 해주실 수 있었다고 한다. 물질 중에 동생을 먼저 떠나보내기도 했던 할머니는 87년 동안 전국의 바다에서 해녀로 활동하셨었으나 이제 고령으로 물질을 하실 없다. 매일 뭍에서 작은 돌들을 들추며 약간의 해산물을 채집하는 소일거리를 하는 것이 할머니의 일상이 되었다. 이제 바다에 들어갈 수 없는 할머니는 일생 묻혀 지내온 바다가 그립다. 회사생활을 10년만 해봐도 한 우물을 판 자의 직관력 같은 것이 생기는데, 타고나길 상군해녀였던 사람이 매일 87년 동안 바다를 들어갔다면 도대체 그 사람에게 바다는 무엇이겠는가. 



역시 고희영 감독님이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해녀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그 삶을 들여다본 '물숨'의 메시지에는 인상적인 구절이 있다. 해녀들은 한 번의 참은 숨으로,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의 것만 바다에서 가져간다는 것이다. 너무 뭉클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매년 최소 한 이상 제주에 간지 오래되었다. 그냥 관광객 눈에도 매년 변하는 보이는데, 수십 년 매일 바다에 들어간 해녀들의 눈에 안타까운 손실이 보이지 않을 리가 없다. 



나는 사실 종종 환경오염에 대한 개인개인의 책임에 큰 관심이 없는 듯이 행동한다. 바다처럼 흘러가버리면 되돌릴 수 없는 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바다에 들어갈 때 선크림을 바르지 않지만, 빨대를 사용하지 말자고 하면서 어차피 재활용 안 되는 종이빨대로 교체하는 보여주기식 환경사랑실천과 그만큼 입 대고 마시도록 더 커져서 빨대보다 더 커진 플라스틱 뚜껑을 보면서 과연 이게 진짜 환경에 도움이 될지 궁금해진다. 텀블러를 깨끗이 씻으며 묻혔던 세제를 희석하는데 드는 물의 양, 그리고 종이컵 하나를 유기하고 처리하는 비용 중 뭐가 더 지구에 부담이 되는지 아무도 제대로 조사한 적 없이 느낌으로만 환경을 사랑하고 있다는 의심도 하고 있다(알고 싶어요). 

이렇게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환경보호에 무임승차한 파렴치한 지구의 기생충 '릴림'일뿐이고, 사실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이 환경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든 다큐멘터리라고 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미 넷플릭스에만도 어떻게든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려고 자극적 수치와 그림을 앞세운 다큐멘터리가 빽빽하게 나와 있으니까. 

어떤 일의 취지가 좋고 동기가 선하다고 해서 결과물의 완성도까지 무조건 좋다고 할 수는 없다고 늘 생각해 왔지만, 이번 만큼은 현순직 할머니의 삶을 어떻게 그렸든 내가 영화라는 필터를 통해 그 고유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작법을 논할 필요성을 잊은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아니 무슨 말과 앵글에도 그저 고스란히 전해지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곳에 대한 깊은 애정과 그를 표현하기 위한 6년의 시간 앞에서는 입을 다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고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그 다른 누가 내리고 내리고 윤슬로 빛나는 제주바다를 이렇게 아름답게 보여줄 있을까 싶어서. 이 필터를 통해 보이는 아름다운 바다를 보고도 이것을 잃어버리면 그건 이제 잃어버린 사람의 책임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시간 앞의 소멸에 자유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고, 사라지는 것들 중 혹시 인간의 의지나 부주의함 때문만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부분이 있는 거라 해도, 최소한 아름다웠던 것들을 기억하고 싶다. 어떤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기록되고 회자된다면 사라지지 않은 것과 때로는 거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통신이 발달하고 플랫폼이 다양해질수록 왠지 로컬의 특별한 이야기들은 점점 사라져 가고 사람들의 주관과 해석도 획일화되어 간다. 택시 아저씨 같은 사람들마저 은퇴하시고 나면, 누가 나 같은 육지 것들에게 저런 들어보지 못한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줄까.  


"삐빅, 지금,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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