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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Oct 01. 2023

혼돈의 미덕은 불공평함이지

위화, <원청>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서방세계에는 그리 곱지 않게 생긴 여자한테 “헬로 뷰리풀”이라고 하는 바람에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 남자가 있었다. 조 씨 가문의 외손이었던 그는 자색과 녹색이 조화된 양복을 즐겨 입고 입이 귀까지 찢어진 듯 붉은 기운이 볼까지 번져 있었는데, 깊은 흉터를 가리려는 목적으로 분칠을 하고 연지곤지를 찍은 것이었다. 그 남자는 세상에 나자마자 아비에게 버림받았으며, 상술한 흉터를 얻게 된 바로 그 사고 때 처를 잃었다. 그는 흑화하여 남녀노소 부자와 가난뱅이를 가리지 않고 덮치는 인생사 불행과 재난 그 자체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21세기초 그는 ”혼돈의 미덕이 뭔지 알아? 바로 불공평함이지.“라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를 남겼는데 그것은 곧 위화의 소설들을 관통하는 말이기도 하였다.


위화의 인물들은 유난히 가혹한 작가를 만나 흙밭에 구르고 겨울을 견디고 전쟁통에 처자식과 친구를 잃고 병에 걸리며 늙어 간다. 하지만 사실 삶이 그렇다. 조커의 말처럼 삶은 운 나쁜 누구 한 사람에게만 가혹하고 슬픈 것이 아니고 삶에서 랜덤으로 맞닥뜨리는 카오스 앞에서 우리의 의지는 생각보다 크게 작용할 수 없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필연 죽음을 향해 가고 죽음과 한패인 병과 아픔은 집요하게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다가 주로 우리가 삶이 완벽하게 행복하다며 무방비로 기쁨에 젖어 있을 때 우리를 기습해 온다. 사람으로 태어난 누구도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은 모두 태어난 김에 슬퍼야 한다. 혈육과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들과 언제든 확실히 이별할 것이라는 사실만이 우리 삶에 주어진 스포일러이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필연적 운명을 먼저 받아낸 사람이 담담하게 앞서 걸어가는 뒷모습을 따라 걷는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앞뒤로 슬픔을 나누며 연대하는 일. 삶이 기쁨으로만 가득 차 있으며 망연자실해 있는 사람들은 의지가 약하고 우울한 사람들이니 매일 힘을 내야 한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슬픈 역사 속에서 주어진 삶을 받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꾸 들려주는 위화의 마음일 것이라고 나는 해석하고 있다.



원청, 잃어버린 도시 - 위화

하루에 완독



#강한자만살아남던시대 #샤오메이나쁜ㄴ #가엾은린샹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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