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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Dec 14. 2023

궁극의 어떤 것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이 영화에서는 언급되지 않는 영화지만 처음 어떤 영화에서 강하게 엔니오 모리꼬네의 존재를 - 음악가의 존재를 - 인지한 건 러브어페어였다. 사람이 이렇게 슬프게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 수 있다니. 헤이트풀8을 좋아했지만 그 해 엔니오 모리꼬네가 그토록 염원하면서 여러 번 실패한 수상에 그제서야 처음 성공했다는 건 영화를 보고나서 알았다.

이미 세상 사람들이 그 어려운 이름에 너무 익숙한데, 그깟 트로피 하나 뭐라고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 양반이 울먹이며 상을 들어 올리는 모습에 기분이 이상했다. 아내와 가장 먼저 기쁨을 나누는 모습엔 오열했다.


그리고 할리우드 너어네는 진짜…

늙고 훌륭한 은퇴한 양반, 이라는 의미의 공로상을 받은 아티스트가 이후에 진짜 본상을 받은 경우는 세상의 다른 장르에서 찾아봐도 잘 없을 것이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체스를 즐기고 수학을 잘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했던 생각은 얼마 전 일본 피아니스트 스미노 하야토(엔지니어 출신) 공연 갔다가 느낀 것과 동일하다.

음악에서 얼핏 음악가의 감정이나 몰입도 중요한데, 아니 사실 마치 그게 다이거나 가장 중요할 것 같은데, 사실 중요한 건 철저하게 계산된 음의 구성이고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그 철저한 계산을 감정적인 무언가로 느끼고 감동한다. 그런데 천재들은 자신이 계산한다는 걸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다. 본능적으로 빠르게 직관으로 계산해서 나온 결과물이어서, 그 계산이 너무 빨라서 그게 마치 계산이나 수학적 영역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감동은 사실 타고난 천재성, 철저한 계산에서 비롯되는 거라고 요즘 많이 느낀다.

부산 영화제에서 아무도 엔니오 모리꼬네를 못 알아봐 레드카펫에서 비 맞은 모습이 보도된 기억 같은 것들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젖어 영화를 보고 있는데, 영화관 안에 혼자 오신 씨네필 어르신들이 간혹 울컥하시는 모습에 같이 울컥했다. 거의 한 세기 동안 이렇게 먼 다른 땅의 사람들도 그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고 늙었다. 끝나고 기립박수도 나옴…​


“우리 모두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좋아해요. 그게 과연 가르쳐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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