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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Jun 08. 2023

역사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어 전달하는 방법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를 읽고

'역사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에서 아주 유명하고 한 획을 그은 역사가와 그들이 쓴 역사책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두 9명의 역사가들이 등장한다.

역사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어서인지, 다행히도 이 책에 등장하는 9명의 역사가는 이름이라도 들어본 사람들이다. 하지만 책에 등장하는 역사책 중에 읽어본 것은 2권뿐이다. 그것도 하나는 만화책으로 읽었다.


유시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역사관을 피력한 역사책과 역사가들을 이 한 권의 책에 집대성하였다.

각각의 역사가들이 쓴 역사책은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는지, 후대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연구하고 분석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유시민의 생각을 더해 놓았다.


하나의 역사책을 다 읽어 내기도 버거운데, 유시민은 9명의 역사가들의 역사책을 전부 읽고 비평하고 비교해 내었다. 책 중간중간에 내가 모르는 혹은 이름만 한두 번 들어본 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놓기도 하였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얼마나 많은 글을 써봐야 이 정도의 퀄리티의 내용이 엮어진단 말인가!


책을 읽어갈수록, 내가 몰랐던 역사가를 알고, 내가 몰랐던 역사책의 내용을 알고, 생소한 역사를 배우는 것에 뿌듯해지기 보다, 이 정도의 책을 써내는 유시민이라는 사람에 대한-심지어 그는 역사가도 아니고 학자도 아니다-존경과 감탄의 강도가 더 높아질 뿐이었다.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거지? 그와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가 있다면 유시민의 시간 관리법을 꼭 물어보고 싶다.


'역사의 역사'는 다음 9명의 역사가와 역사책에 대한 책이다.

거의 모든 내용이 감명 깊었다. 그래서 책을 천천히 곱씹으며 읽어갔으며 줄도 되게 많이 그었다. 다음에 더 빨리 찾아 읽기 위해서다. 뭐, 다시 읽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이 책에서 다룬 역사가는 다음과 같다.


1. 서구 역사의 창시자,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 역사가는 때로 사료의 공백을 상상력으로 극복해야 한다. 이들은 뚜렷한 목적을 품고, 명확하게 특정할 수 있는 대상에 관하여, 최대한 사실에 토대를 두고,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들으면서 지적 자극을 받고 정서적 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를 꾸몄다. 이들의 핵심은 '서사의 힘'이다.


2. 사마천의 <사기> : 인간 본성의 빛과 그늘, 삶의 의미, 군주의 덕성, 권력의 광휘와 비루함, 반복되는 사건의 패턴을 포착하여 드러내려고 하였다. 사마천은 또한 사실의 기록만으로 과거를 재현할 수 없다고 보고, 구전으로 떠돌던 이야기를 단서로 삼아 뛰어난 인물의 행적을 분석하고 평가함으로써 당대의 사회상을 구석구석 그려보았다. 사실 위에 상상력을 적절하게 덧입혀야 이런 글이 나온다.


3. 이븐 할둔, 최초의 인류사 <역사 서설>을 쓰다 : 7세기에 탄생한 이슬람 문명과 아랍 사회의 현황 및 특징을 기록했고, 당시 아랍 지식인들이 인간과 문명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정밀하게 기술한 최초의 인류사 책. 다만, 종교와 생활이 분리되지 않는 종교의 특성으로 지나친 종교적 찬양 문구가 난무하나 이는 이븐할둔의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현재의 우리가 충분히 그의 두려웠던 처지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4.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 랑케의 <근세사의 여러 시기들에 관하여> : 과거를 있었던 그대로 보이려 하려고 역사를 쓴 랑케. 하지만 역사가는 해부학을 배우는 학생이 아니라 노련한 과학수사대 요원과 법의학자가 시신을 다루는 자세로 역사의 사실을 대면해야 한다. 랑케는 사실에서 인간의 이야기를 끌어내지 못해서 그가 쓴 책들은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귀중한 문헌을 보관하는 도서관 깊은 곳에 잠겨 있다.


5. 역사를 비껴간 마르크스의 역사 법칙,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 마르크스는 당시 사회의 모순에 분노하였고 이를 비판하기 위해 역사책을 썼다. 책에서 마르크스의 이론은 당시 시대적 한계에 의하여 승인되거나 배척할 만한 실증적 데이터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해관계와 직관적 판단에 따라 그것을 수용하거나 배척해야 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 사항으로 현재를 비판하고 과거를 끼워 맞추어 버렸다.


6. 민족주의 역사학의 고단한 역정, 박은식 <한국통사> 신채호 <조선상고사> 백남운 <조선사회경제사> : 당대사를 기록하고 서술하는 것이 역사가의 가장 중대한 임무라는 것을 박은식의 <한국통사>에서 알 수 있다. <조선상고사>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대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압록강 남쪽에 가두어 버렸던 고려와 조선의 역사가들에 대한 전면적이고 치열한 투쟁이다. 백남운은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의 사실을 이론에 끼워 맞춘 역사를 서술했지만, 우리 민족이 세계 문명의 보편적 발전 경로를 똑같이 밟아 왔다는 주장을 논증하기 위해 쏟은 열정만큼은 느낄 수 있다.


7. 역사가 된 역사 이론서, E.H.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 :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으로 현재의 문제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며, 역사가의 임무는 기록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만약 아무것도 평가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기록할 가치가 있는 사실인지 역사가는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8. 문명의 역사, 슈펭글러 <서구의 몰락>, 토인비 <역사의 연구>, 헌팅턴 : <서구의 몰락>은 어마어마한 독서 이력을 가진 천재만이 쓸 수 있는 최고의 횡설수설. 토인비는 문명은 외부 환경의 도전에 대한 성공적 응전의 산물이며 탄생한 후에도 계속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문명은 응전에 성공하면 성장/발전하고, 실패하면 쇠퇴하며 실패한 응전이 계속될 경우 해체한다고 하였다.


9. 역사와 과학을 통합한 다이아몬드 <총 균 쇠>와 하라리 <사피엔스> : 인류 발전의 역사는 환경의 산물이라는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역사학의 연구 성과를 받아들인 과학자의 역사책이고, 생물종의 성공적 진화가 종에 속한 개체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과학자의 연구 성과를 최대한 받아들인 역사학자의 역사책이다.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으로 현재의 문제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며, 역사가의 임무는 기록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이다. 만약 아무것도 평가하지 않는다며 무엇이 기록할 가치가 있는 사실인지 역사가는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232쪽, E.H.Carr)


유시민이 엄선한 9명의 역사가들 중에 내 맘을 가장 움직였던 사람은 E.H.Carr였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는 명제는 너무도 유명하여 공교육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하다.


나는 10여 년 전에 E.H.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어 보았다. 그러나, 도무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거의 이해하지 못한 채, 저 유명한 문구만 몇 번을 되새겼다.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를 보니, 내가 E.H.Carr의 책을 이해 못 한 것에 대하여 전혀 자책할 필요가 없었다. 원래 어려운 책이고, 함부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라고 했다. 다행이다.


나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하는 크로체의 말을 인용한 Carr를 적극 지지한다. 내가 역사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현재를 제대로 바라보고 미래를 조금이나마 넘겨 짚어보기 위해서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사가 곧 역사요, 역사가 곧 시사인 것이다. 나는 이것을 굳게 믿고 있다.


역사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오늘의 시사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다.

오늘의 역사를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어제의 역사를 깊숙이 바라보고 있다. 역사를 배우고 또 전달하는 역할을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수시로 고민하는 나는 이 책에서 유시민 작가가 남긴 말을 가슴속에 새겨두었다.


역사는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며, 역사가는 사실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229쪽)


유시민이 사마천과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를 높이 산 이유는 역사라는 사실에 역사가가 적절하게 '서사의 힘'을 녹여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실에 적절한 상상력을 더하여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었다.


나는 역사가는 아니지만, '역사'라는 사실에 적절한 '상상력'한 입히고 '서사'를 더하여, 역사는 멋지고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널리 알려주는 그런 역사해설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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