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과 함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월 Jun 03. 2024

돈의 심리학에서 내 인생을 생각하다

모건 하우젤의 <돈의 심리학>을 읽고

나는 자기 계발서와 투자 및 성공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경제서적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때그때마다 달라지는 환경에서 몇몇 성공담을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사람들의 지갑을 터는 것 같아서다. 나는 쉽게 내 호주머니를 털리는 호락호락한 사람이고 싶지 않았다.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를 마지막으로 읽은 후 이십여 년이 넘도록 경제와 투자 관련하여 책을 전혀 보지 않던 내가 모건 하우젤의 <돈의 심리학>을 읽게 된 것은, 이 책의 주요 내용이 '저축'이라는 말을 어느 유튜브 채널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책을 읽는 것은 새로운 사실을 알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어서라는 말을 읽은 적이 있다. 주식 투자, 코인 투자, 부동산 투자 같은 자본주의적 행위를 거의 하지 않는 나는 내가 하는 반자본주의적 행태가 맞는 거라는, 괜찮은 거라는 확인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책을 다 읽은 지금에야 보니, '저축'은 책이 소개하는 스무 개의 이야기 중 한 가지였을 뿐이고, 모건 하우젤은 '돈'을 모으고 지키는 다른 열아홉 가지 방법을 '저축'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책의 이야기는 스무 개이고 380쪽가량의 만만치 않은 분량이지만, 돈을 모으고 지키는 방법은 다음의 4가지로 나름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내가 돈을 버는 것은 행운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돈을 잃는 것은 불운 때문일 수도 있다.

순전히 자신의 노력과 순간의 결정만으로 대박을 치거나 쪽박을 차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의 행운이 일 년 뒤 혹은 오 년 뒤 혹은 십 년 뒤 불운이 될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불과 며칠 전 SK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씨의 이혼 재판 소송의 2심 결과가 나왔다. 최태원 회장은 노소영 씨에게 1조가 넘는 돈을 위자료와 재산 분할로 나누어 주고 생겼다. 최태원 회장은 자신이 희대의 불운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문서로 증거를 대지 못하겠지만, 대한민국의 웬만한 성인들은-90년대 말과 2천 년 초반을 경험이 있는-SK가 지금의 초대형 재벌이 데에는 노태우 대통령의 사돈에 대한 특혜가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선경그룹이 휴대폰 사업을 지정받고 정유와 반도체 사업을 하게 것은 자체의 기술개발이 아니었다. 노태우 정권 시절, 각종 혜택을 받았을 그들은 행운을 누렸다. 그것도 과도하게. 행운이 30년 만에 불운으로 바뀌었다. 물론 불운이 스스로 불러 온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나는 2011년 2월에 현대중공업 주식을 고점에 샀었다. 당시는 계속 상승할 줄 알았다. 사람들은 낙관이 판을 칠 때는 계속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비관이 우세할 때는 세상이 전부 비관적으로 계속될 줄로 믿는다. 나도 그랬다. 내가 현대중공업 주식을 사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동일본 지진이 났다. 내 주식은 2/3토막이 났다. 나는 일본에 지진이 날줄 몰랐다. 나는 지독히도 불운했다. 위안받는 것은 불운한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다는 거다.

성공했을 때의 행운은 내 것은 아니며 실패했을 때의 불운도 어느 순간 타인의 것이 될 수 있다. 지금 당장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10살부터 투자를 시작한 워런 버핏은 75년간 투자를 이어왔는데 그가 본격적으로 부자가 되기 시작한 것은 그가 투자를 50년 동안 했을 무렵인 그가 60살이 넘었을 때였다. 즉, 무언가를 꾸준히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한다면 시간은 우리에게 마법을 선사하곤 한다.


책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버핏의 자산은 845억 달러인데 842억 달러는 버핏이 50살이 된 이후에 모은 것이고 815억 달러는 그가 환갑을 넘긴 후 모은 것이라고 한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무언가를 하루도 빠짐없이 끊임없이 계속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몇 년 전에 "일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책이 히트를 친 적이 있었다. 무언가를 성취하려면 적어도 일만 시간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앞서 이야기한 2011년에 산 현대중공업(지금은 한국조선해양) 주식을 나는 팔지 않고 지금까지 갖고 있는데 10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린 지금, 원금을 드디어 회복하고 얼마간의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끝없이 떨어지는 주가에 좌절하고 손실을 추가로 안 내기 위해 손절했다면 내 돈은 반토막도 건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10년을 버틴 건, 어떤 노력과 인내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저 게으르고 귀찮아서일 뿐이었다.


내가 현대중공업 주식 말고 10년의 시간을 버티며 생존한 적이 있었던가. 책을 읽는 동안 진지하게 과거를 돌아보니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일만 시간, 10년은커녕 백일도 버티기 힘들어 모임을 가입하고 돈을 내어 강제성을 획득하곤 하였다. 우리는 일만 시간의 법칙이나 '꾸준히'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알면서도 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돈은 시간의 마법, 복리의 마법을 부린다고 한다. 돈만이 아닐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십 년의 시간을 들여볼까, 하고 뻔한 결심을 해본다.


셋째, 불운이 와서 돈을 잃은 것은 투자의 실패가 아니라 수수료를 지불한 것이다.

모든 투자가 행운이고 성공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약간의 실패에도 크게 실망하고 불운을 느낀다. 모든 일에는 대가를 치르게 마련인데, 유독 내 돈에는 그러기 싫다.     

"그때 삼성전자 살려고 했는데, 회의가 길어져서 못 샀더니. 아깝다."

"그때 카카오 팔았어야 했는데. 팔려고 했거든. 혹시나 혹시나 하다가. 아이씨"

이런 류의 이야기를 수백만 번도 더 들었다. 나도 이런 이야기를 수백 번은 하였고 생각은 수천번을 했다. 이제는 누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솔직히 진절머리가 날 정도이다.

벌금과 과태료는 기분 나쁘지만 수수료나 수업료는 내가 기꺼이 지불하는 돈이다. 투자의 실패에서 오는 경험과 돈도 수수료라고 생각하자. 수수료 없이 좋은 컨설팅을 받기 어려우며 수업료 없는 배움은 알맹이가 아니다. 이미 지불한 수수료와 수업료는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투자에서 변동성은 거의 언제나 수수료이지 벌금이 아니다. 사장수익률은 절대로 공짜가 아니며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장수익률은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대가를 요구한다. 이 수수료를 내라고 강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디즈니랜드에 가라고 강요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입장료가 10달러 정도인 동네 행사에 가거나 아무 돈도 내지 않고 집에 있는 방법도 있다. 그러고도 여전히 좋은 시간을 보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통은 지불한 만큼 대가를 얻는다. 시장도 마찬가지다. 변동성과 불확실성이라는 수수료는 현금이나 채권 같은 값싼 공원보다 높은 수익률을 얻기 위한 입장료다. (P263)


넷째, 명품 옷과 가방이 필요 없는 작가는 좋은 옷과 세련된 스타일이 필요한 변호사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남들이 자동차, 주택, 옷, 휴가에 얼마를 쓰는지는 볼 수 있어도 그들의 목표, 걱정, 포부가 무엇인지는 볼 수 없다. 그와 나의 스타일이 같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다른 게임을 하고 있는 사실이다. 내가 시간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나와 다른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에 설득당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어제 멋진 스타일을 가진 친구를 만났을 때 솟아오르는 질투를 숨기느라 엄청난 에너지를 써야 했다. 친구와 나는 추구하는 바가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다. 그런데 늘 세련되고 우아한 그이를 보면 내가 초라해진다. 내가 가지지 않은 옥구슬 목소리, 우아한 손짓, 세련된 옷차림, 주목받는 스피치의 친구에게 거의 설득을 당하고 귀가했다.

집에 와서 책으로 마음을 씻어냈다. 법륜스님 같은 남편의 말로 머리를 비워냈다. 뻔한 사실을 알고도 실천을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보고 명상을 하고 좋은 친구와 가족을 곁에 둔다. 어제 남편은 스님 같았고 목사님 같았고 신부님 같았다. 감사한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다시 일상을 살다 보면 이 책을 읽고 기록하는 내 마음이 다시 퇴색할지도 모른다. 인간은 한 번의 결심으로 바뀌기에는 너무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럴 다시 꺼내보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 여기에 이렇게 독후감을 쓴다.

나는 이 책을 돈만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친 어떤 것들에 대한 조언으로 생각하였다. 돈에 한정하기에는 지금의 나는 조금 늦은 감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지금의 돈을 지키기라도 잘하면 좋겠다. 대신 인생 2막에 할 것들을 모건 하우젤이 돈에 대해 가졌던 지침을 갖고 실행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다만,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20대와 30대 초중반의 사람이 있다면, 가급적 <돈의 심리학>을 읽어보라고 권유해주고 싶다. 그렇다면, 그의 부모나 선배들이 여러 번 했던 시행착오의 횟수를 상당히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읽는 것과 실행하는 것에는 명백히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는 두어야겠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MET에서 길을 잃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