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의 <토지>를 읽고
"내 소견으로는 나라고 민족이고 간에 그거는 다 사람이 살아남기 위한 울타리가 아니겄소? 생각해보시오. 왜놈들이 우리 백성을 청풍당석에 앉히놓는다면 어느 누가 칼 들고 나갈 깁니까. 그러나 지금 바로 이 시간에도 왜놈은 우리 백성들 갑데기를 벗기고 있으며 조만간에 우리 조선사람들 씨를 말리고 말 것이오. 그러니 우리 모두 목이나 매달아 죽어부리까 그래야만 되겄소? 공배깨나 했다는 사람, 너 남 지간에 한다는 말이 일본은 심이 세다, 세계에서는 강국이다, 대항해 보아야 바위에 계란 던지기다, 그럴 바에야 더 배워서 시기를 기다리는 기이 낫다, 제에기랄! 호랭이 앞에서 기다리보아야 잡아 묵히기 밖에 더하겄소. 살아남을라 카믄 심약한 인간은 창을 맨들고 함정도 파고 덫도 놓고, 환하게 다 알믄서 와 딴전을 피우는 깁니까?"
<토지 14권 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