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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Jun 24. 2024

백정 사위 송관수 님에게,

박경리의 <토지>를 읽고

송관수 님에게,


일 년 전 여름 첫 권을 읽은 이후 토지 20권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지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토지>는 일 년을 저와 함께 하였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은 그날과 그다음 날은 책이 주는 감동과 먹먹함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삼사일이 지난 뒤에야 독후감을 남겨야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책들과는 달리 <토지>라는 소설은 어떻게 독후감을 써야 할지 무엇을 써야 할지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소설은 1897년부터 1945년까지 48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다룬 데다가 주요 등장인물이 백여 명이 넘을 정도로 많은 인물이 나오며 경남 하동 진주 서울 하얼빈 신경 용정 동경 상해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지역을 망라하였습니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내내 가슴 떨리는 시간도 많았고 심장이 울컥하게 한 사람도 많았으며 같이 여행하면서 긴장되는 시간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때 최수지라는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로 <토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최수지는 주인공 최서희역할을 맡았었지요. 그때는 최서희와 김길상의 성장 이야기와 사랑 이야기에 푹 빠져 다른 인물의 이야기는 스쳐 지나가는 수준이었습니다. 양반 댁 아씨와 하인의 사랑이야기라니! 사춘기 소녀의 감성에 꼭 맞는 소재이지 않습니까? 최서희와 김길상, 그리고 평사리 최참판 댁의 흥망성쇠를 중심으로 드라마를 보았더랬습니다.

드라마에서 송관수라는 인물은 본 적도 없는 것 같고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만, 소설을 다 읽고 찾아보니 김성환 배우가 배역을 맡았더군요. 생소하기만 합니다.


2004년에도 <토지>가 드라마로 방영된 적이 있었습니다. 유준상 배우와 김현주 배우가 주인공을 맡았었지요. 그때도 저는 길상과 서희의 사랑과 결혼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회령의 마차 사고를 기점으로 하여 결혼을 하는 데까지 열심히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그 후에는 데면데면해졌던 것 같아요. 분량과 제작 여건과 비용 때문이었겠지요. 서희와 길상 중심으로 드라마를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결혼을 하고 나니 관심이 멀어졌습니다. 기억에 남았던 건, 악역을 했던 유해진 배우뿐이었어요.

소설을 다 읽고 지금에야 찾아보니 송관수 역은 탤런트 박진성 씨가 맡았었네요. 송관수로 나오던 박진성 배우가 간간히 생각이 나는 것도 같습니다. 제가 좋아했던 배우였거든요. 하지만 송관수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이며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었습니다.


<토지>는 5부작 20권으로 된 소설입니다.

1부 4권은 1897년부터 1908년까지 평사리 최참판댁의 비운의 시작과 몰락을 다루고 있고요,

2부 4권은 조준구와 일제의 눈을 피해 만주 용정으로 도망친 서희를 포함한 평사리 일행의 치열한 삶이 1910년부터 1918년 정도의 기간 동안 그려져 있습니다.

3부 4권은 용정에서의 치부로 조준구를 평사리에서 쫓아내고 서희 일행이 고향으로 귀향한 후인 1920년부터 1929년 광주학생운동까지 백성의 삶이 마치 그 시대에 있었던 듯 보이고 있고요,

4부 3권은 1929년부터 1937년 정도까지의 인간만상을 보여주는데, 서희와 길상의 자손을 비롯한 자손들의 고뇌와 일제 치하 고단한 삶, 지식인의 번뇌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5부 5권은 1940년경부터 해방까지가 나타나는데, 일제 시대 막바지 백성의 일상과 독립운동 인사들의 고뇌와 이념의 발생과 분열을 다루고 있습니다.


송관수 님은 1,2부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죠. 아마 이름 정도는 등장했을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 정도까지는 기억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송관수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보고 익힌 것이 3부의 첫 권인 9권에서 입니다.

1908년 평사리에 의병이 일어나 최참판댁을 치고 들어가 곳간을 허물고 곡식을 나누었고 조준구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런데 조준구를 찾지 못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산으로 들어갔지요. 이때 의병 속에 송관수라는 인물이 있었다는 게 3부 9권에서 나왔습니다.


송관수의 첫 등장은 한복이를 찾아가 군자금 운반을 위해 만주로 가 달라는 지령을 전달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한복이는 최참판댁 당수인 최치수를 죽이게 한 김평산의 둘째 아들인데 김평산의 큰 아들 거복이가 일본 순사가 되어 만주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이를 이용해 군자금을 안전하게 전달하려는 목적 때문이었지요. 이때만 해도 송관수라는 인물이 <토지>의 3/4/5부 전반에 걸쳐 이렇게나 많이 등장하고 이만큼이나 큰 역할을 할 줄 저는 몰랐습니다. 그저 서희와 길상의 파트가 왜 이리 적을까, 하는 주인공 위주의 생각만 할 따름이었지요.


송관수 당신은 산에서 의병 생활을 하다가 의병이 흐지부지되고 각자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질 때 우연히 어느 백정의 집으로 피신을 갔습니다. 그때 만난 백정의 딸과 연을 맺고 두 아들과 딸을 하나 낳고 백정 놈의 자식으로 살게 되었지요. 실제 백정은 아니었지만, 백정의 사위도 백정으로 취급받는 하류 인생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스로 최하층 백성의 삶 속으로 들어간 당신. 갑오개혁과 동학운동으로 신분이 타파되었고 일제 식민지가 되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돈이 양반인 세상이 되었건만, 여전히 백정은 온갖 사람들-심지어 상민과 천민, 노비 출신의 동류들에게서도 천대와 질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당신을 피신시켜 주고 목숨을 구해준 당신의 장인과 백정의 딸인 당신의 부인은 천대와 질시가 하루 세 끼 먹는 밥처럼 익숙하여 늘 고개를 숙이고 다녔고 어깨를 움츠리며 걸었습니다. 아니, 거의 집 밖을 나다니지 않았습니다.


이런 연유로 자연스럽게 당신은 형평사운동(일제시대 백정들이 사회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조직한 정치결사)에 가담하였습니다. 집이 진주에 있었던 것도 형평사에 참여한 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겠지요. 당신의 아버지가 동학에 참여했기에 신분 타파와 평등 사회에 대한 생각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배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형평사운동과 함께 송관수 님은 지리산에 근거를 독립운동조직에 소속되어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전개라고 수도 있겠습니다.


<토지>에는 독립운동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환의 지도아래 동학의 잔당들이 모인 지리산 모임이 있고, 서울의 지식인들이 모여하는 계몽운동, 사상운동, 문화운동, 언론운동이 있고 만주와 연해주에서 총 들고 싸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당신은 지리산 모임에서 행동책, 연락책을 맡았었고 우두머리 김환이 죽고 나서는 그 조직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원래 조직과 활동이라는 것이 말하는 사람은 많고 행동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우두머리를 하고 싶은 사람은 많고 책임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판을 벌이고 싶은 사람은 있으나 뒤수습까지 생각하고 움직이는 사람은 적습니다. 생각이 많아서 조사와 생각으로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은 넘쳐나지만 한 톨의 가능성만으로 행동으로 먼저 움직이려는 사람은 적습니다. 이것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그런데 송관수 당신은 위에 말한 모든 것에서 항상 후자인 사람이었습니다. 말보다 행동이었고, 나서기보다 뒤에서 수습하며 책임을 지는 쪽이었고, 먼저 움직이고 나중에 빠져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있을 때는 드러나지 않지만 없고 보면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고 일이 도무지 도모되지가 않습니다.

일이 잘 될 때도 설레발치지 않았고 일이 안 된다고 해서 좌절하지도 않았습니다. 항상 무언가를 하려고 일을 도모하였고 암흑의 시기 절의에 빠진 사람들이 허우적댈 때도 긍정과 희망으로 타인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당신은 조직의 네트워크였습니다. 하동 진주 서울 부산 지리산 이 모든 곳을 당신은 직접 다녔고 전했고 움직였습니다. 그 속에서 백성의 어려움 움직임 생각을 듣고 읽고 느끼며 일을 하였습니다.

때로는 자신도 힘들고 지치고 울분이 가득 찰 때도 수십 번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 감정을 터트리지 않았고 조용히 감싸며 삭이며 의지와 행동으로 승화해 내었습니다.


실전에서 움직이던 당신이 큰소리를 낼 때는 어쭙잖은 지식인 독립운동가들과 자리를 같이 할 때였지요. 지신인들은 일본이 힘이 센 것을 논하고 국제정세가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중국과 미국과 영국이 일본을 물리쳐주지는 않는지 논하곤 했습니다. 지식인들은 술자리를 가지며 독립을 논하고 일제를 성토하는 것으로 독립운동을 하는 것처럼스스로를 기만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당신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내 소견으로는 나라고 민족이고 간에 그거는 다 사람이 살아남기 위한 울타리가 아니겄소? 생각해보시오. 왜놈들이 우리 백성을 청풍당석에 앉히놓는다면 어느 누가 칼 들고 나갈 깁니까. 그러나 지금 바로 이 시간에도 왜놈은 우리 백성들 갑데기를 벗기고 있으며 조만간에 우리 조선사람들 씨를 말리고 말 것이오. 그러니 우리 모두 목이나 매달아 죽어부리까 그래야만 되겄소? 공배깨나 했다는 사람, 너 남 지간에 한다는 말이 일본은 심이 세다, 세계에서는 강국이다, 대항해 보아야 바위에 계란 던지기다, 그럴 바에야 더 배워서 시기를 기다리는 기이 낫다, 제에기랄! 호랭이 앞에서 기다리보아야 잡아 묵히기 밖에 더하겄소. 살아남을라 카믄 심약한 인간은 창을 맨들고 함정도 파고 덫도 놓고, 환하게 다 알믄서 와 딴전을 피우는 깁니까?"                     
                                                                                                           <토지 14권 53쪽>

이런 당신을 보면서 저는 입으로만 떠들다 빛나는 세상이 왔을 때 공을 차지하는 그네들과 실컷 구슬을 엮어 보배로 만드는 고생을 자처하다 빛나는 세상이 도래했을 때는 공을 자처하지 못하여 뒤전에 물러나게 되고 마는 우리들이 떠올랐습니다. 마치 해방이 되고 친일 경찰을 하던 스즈키가 해방 경찰이 되고, 독립운동을 하던 투사가 변소에서 스즈키들에게 얻어맞게 되던 그때 그 일들처럼요.


소설에서 아슬아슬한 사건이 진행되다가도 당신이 등장하면 사건이 잘 마무리되고 다치는 사람이 적을 것 같아서 안심이 되곤 하였습니다. 내 주위에 당신 같은 사람이 있다면 같이 일하며 온전히 믿고 맡길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또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그런 큰 사람이었습니다.


누군가의 고발로 당신의 이름이 일본 순사에게 블랙리스트로 오르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안전을 위해 만주로 피신을 가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아내와 딸을 안전한 곳에 위탁을 해두고 혈혈단신 만주로 떠났습니다.

만주에서도 독립운동을 열심히 하려 하였으나 때는 이미 1940년을 넘어가고 있었고, 그 무렵부터 일제는 마지막 발악을 하던 때였고 중국도 자기들의 문제로 조선을 위해줄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만주에서조차 활동의 범위는 제약이 많았지요. 당신은 만주에 갔지만 스스로 비참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아마 나이가 들어감에 따른 서글픔도 있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당신은 어이없게도 해방을 몇 년 앞두고 호열자(콜레라)로 만주땅에서 홀로이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당신의 유해를 들고 온 당신의 아들 송영광이 진주와 도솔암에 갔을 때 당신의 존재는 더욱 빛이 났습니다. 소설을 통틀어서도 한 사람의 죽음이 이렇게도 모든 이들의 슬픔과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자아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 무던하던 장연학도 당신의 유해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습니다. 잉여의 몸으로 행동에 제약이 많았던 길상도 당신의 죽음 앞에서 내가 그 사람한테 죄인이다며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동지이자 사돈이었던 김강쇠는 몹쓸 놈 이랄라고 그 고생을 했던가, 하며 가슴으로 울었습니다. 당신으로부터 첫 지령을 받고 당신을 믿고 움직였던 한복이도 어머니를 잃었을 때처럼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당신의 아내와 당신의 아들과 딸은 당신이 죽고 나서야 당신이 수없이 많은 일을 하고 수많은 존경을 받았던 것을 절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신의 죽음이 좀 더 극적이었으면 하고 바랬습니다.

<토지> 속에서 가장 사랑하고 든든했던 인물이 멋지게 싸우다 죽었으면 했습니다. 기왕 죽음을 맞이한다면요. 아니, 아닙니다. 저는 당신이 죽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끝까지 살아남아서 "거봐라. 함정도 파고 덫도 치고 창도 맹글고 하니 결국에는 우리 세상이 온다 아이가!"하며 태극기를 흔드는 모습을 보았으면 했습니다. (이 모습은 장연학이 끝부분에 보여주기는 하였습니다.)  당신은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뜻밖의 전염병으로 당신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아마 해방 후 벌어졌던 이념의 분열과 남북의 분단을 당신이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제가 <토지>를 읽으면서 그야말로 '펑펑' 울었던 적이 딱 두 번있습니다.

처음은 2부에서 월선이가 죽기 직전 용이를 만났을 때입니다. 월선은 끝까지 죽지 않고 기다렸다고 평생 연인 용이가 도착하고 그의 얼굴을 보고 그의 말을 듣고서야 눈을 감았습니다.

'니 여한이 없제?'

용이로부터 이 말을 듣고 월선은 '야'하며 눈을 감았더랬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너무 애절하여서 이 장면에서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펑펑 울었더랬습니다.


두 번째 장면이 바로 당신의 유서를 읽을 때였습니다. 참 별것 아닌 단순한 글인데 왜 그리도 제 심장이 울려대던지요? 당신은 자신이 쓴 글이라 다 알겠지만 여기에 한번 더 적어봅니다.


홍이 보아라. 내가 아무래도 심상찮은 병에 걸린 것 겉다. 신경으로 돌아가자니 심상찮은 병 때문에 어럽울 것 겉고 가다가 죽어도 곤란한께, 아무튼지 만일을 생각해서 한 자 적기로 했다. 자손한테 물리줄 전답 한 때기 없는 처지에 무신 놈의 유서인가 할지 모르겄다마는 이대로 내가 가믄 남은 사람들 가심에 한을 심을 것 같애서... ... 와 이렇게 맴이 담담한지 참 내가 생각해도 이상타. 내가 죽으믄 모두 고생만 하다가 갔다 할 기고 특히 영광이 가심에는 못이 박힐 기다. 그러나 나는 안 그리 생각한다. 그라고 후회도 없다. 이만하믄 괜찮기 살았다는 생각이고, 장돌뱅이로 장바닥을 돌믄서 투전판이나 기웃거릴 놈이, 하늘 밑의 헐헐단신 계집이나 어디 하나 얻어걸리겄나. 그렇다믄 많이 출세한 거 아니가. 새삼시럽게 지나온 길을 돌아보이 정말 괜찮기 살았구나 싶다. 넘한테 큰 실수 안 하고 이렇기 가는 것도 다행 아니겄나. 이것은 진정이다. 여한이 없다. 자식들은 제 갈 길 갈 것이고 다만 내 모친이 어디서 어떻게 돌아기싰는지 자식 된 도리, 시신이 어느 산천에 묻혔는가 모리고 가는 것이 나한테 남은 응어리다. 그라고 내 내자가 불쌍할 뿐이다. 그러나 본시 심성이 착하고 가는 베 재 놓은 듯키 말이 없는 사람이니 크게 남한테 폐가 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 사람을 당부한다고 전해주라. 홍이 니한테는 신세 많이졌다. 고향 산천이 보고 싶고 작별하고 싶은 얼굴도 많다마는 어차피 사람은 혼자 가는 거 아니겄나.


지금 이렇게 옮겨 쓰는데 또 눈물이 나네요. 사람의 맘이 참 희한합니다.

그 어떤 미사여구와 휘황찬란한 언어의 향연보다 담백하고 여백이 있는 글이 저는 좋습니다. 당신이 쓴 이 유서는 식자가 뽐내려고 쓴 글이 아니라 내가 진심을 담아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흔적이 역력히 보입니다. 가족과 삶에 대한 당신의 후련함이 보입니다. 진정으로 후회 없이 뒤끝 없이 미련 없이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진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은 최서희를 먼저 생각하고 김길상을 먼저 떠올리고 용이와 월선이, 김두수라는 인물을 <토지>를 생각할 때 우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송관수, 당신의 이름 석 자를 먼저 기억하겠습니다. 조연이었지만 주연보다 더 많이 활동하고 움직인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처음과 끝은 아니지만 중간에 나와서 말미즈음에 사라진 당신을 생각하겠습니다. 백성과 함께 움직이고 백정을 대표하며 민초의 마음을 대변한 당신을 떠올리겠습니다.


<토지>와 함께 한 1년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1권을 시작할 때는 이거 언제 다 읽겠냐,했던 것이 마지막 5부를 시작할 때 일부러 천천히 읽고 싶었습니다. <토지>를 보내기 너무 아쉬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웬만하면 한번 읽은 소설을 두 번을 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토지>는 10년 뒤에 또 한 번 더 보려고 합니다. 두고두고 보려고 합니다. 송관수 님을 비롯하여 <토지>에 나왔던 수많은 민초들을 사랑합니다. 내 이웃 내 할머니 내 동료 같은 평사리의 그들을 사랑합니다. 친구 동지 적과도 같았던 서울의 지식인과 만주 연해주의 투사들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백정의 사위 송관수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종종 생각하겠습니다. 그러니 그곳에서 슬퍼말고 그리워마십시오. 당신들 덕분에 우리는 지금 잘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년 6월 어느 날 송관수를 기억하고픈 한 독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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