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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Jun 11. 2020

서평 - 루이제 린저 <삶의 한가운데>

나는 곧 내가 계속 내 자신을 속이고 있음을 알았다. 내 인생에는 전혀 방해물이 없었다. 상처도 없었다. 지금까지 모든 일은 잘 되어왔다. 분명히. 그러나 또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아무것도. 나는 자기 배를 항구에 메어둔 상인과 같다. 배를 내보내야 돈을 벌어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배를 바다에서 내보내는 것은 위험했으며 나는 본래 모험에 적합한 인간은 아니었다.  - p75


상반된 성격의 자매가 있다. 항구에 배를 매어둔 상인처럼 삶을 살아왔던 언니(언니의 이름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와 마치 폭풍우에 의해 약간 손상되었지만 여전히 깊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바람을 안고 가는 배와 같은 삶은 살고 있는 동생 니나. 


12살이나 나이가 많은 언니는 이혼남과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어지러운 1930~40년대의 독일에서 커다란 근심 걱정 없이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니나는 1930년대 초반에 스무 살 성인이 되었고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던 흔히들 말하는 굴곡이 많은 인생의 바다로 뛰어들게 되었다. 


20살 연상 남자와의 사랑, 반나치 활동과 이로 인한 투옥, 결혼과 이혼, 아빠가 다른 두 번의 임신과 출산, 소설가로서의 성공, 상점 점원의 생계활동, 친척 할머니의 죽음, 자살 시도. 


광기와 허무가 같이 점령했던 시대, 니나는 19살부터 이 모든 인생을 담담히 겪어냈다. 아니, 담담히 겪어냈다기보다 니나 스스로 뛰어들었다는 것이 맞다. 니나가 20살 연상이면서 니나를 지독히도 사랑했던 슈타인 박사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였더라면 니나도 언니처럼 항구에 정박한 배처럼 큰 파도에 노출되고 부서질 위험이 없는 편안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니나는 프로포즈를 거절했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던 반나치 활동에 참가했으며 사람들과의 논쟁도 서슴치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운명이 없어. 그런데 그것은 그들 탓이야. 그들은 운명을 원하지 않거든. 단 한 번의 큰 충격보다는 몇백 번의 작은 충격을 받으려고 해. 그러나 커다란 충격이 우리를 전진하게 하는거야. 작은 충격은 우리를 점차 진창 속으로 몰아넣지만, 그건 아프지 않지. 일탈이란 편한 점도 있으니까. 혹은 마치 파산 직전에 있는 상인이 그것을 숨기고 여기저기서 돈을 융통한 후 일생 동안 그 이자를 갚아가며 늘 불안하게 사는 것과도 같지. -p131


니나는 삶에서 작은 충격보다는 큰 충격을 원했다. 그리고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녀는 삶에서 다른 사람보다 한층 더 전진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에서 몇몇 등장인물들은 니나가 사는 인생을 부러워했지만 이해하지 못했고 수용하지 못했다. 때로는 심지어 니나의 모든 것을 사랑한 슈타인 박사조차도. 소설에서 니나의 삶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맡은 니나의 언니조차 초기에는 동생을 전혀 알지 못했다. 


슈타인 박사의 일기를 읽으면서 또 니나와 대화를 나누며 비로소 인생의 한가운데에서 회피하지 않고 슬픔과 아픔조차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니나에 대하여 그녀의 언니는 비로소 니나를 이해하게 되고 정반대로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슬픔도 재산이라는 것“을 마흔 여덟의 나이에 깨달게 되었다. 


니나가 떠나고 아마도 안락한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갔을 니나의 언니는 슬픔을 선택하며 아픔을 받아들이는 삶을 새로이 살았을까? 당시로는 꽤 늦은 나이었던 마흔 여덟의 나이에? 


우리가 그것을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니나의 언니에게도 그리고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니나가 슈타인 박사에게 했던 한마디 말은 여전히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제멋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틀렸어요. 저는 남들을 따라서 사는 게 아니라 내 삶을 살고 있어요. 내 말을 이해해 주길 바라요. 당신도 살기 위해 한번쯤은 그 고상한 조심성을 방기해도 결코 해가 되지 않을 거예요.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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