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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수레라도 요란한 게 나을까?

셀프 포장 기술이 좋았던 동료의 이직 소식을 들으며

by 홍월

직장을 같이 다니던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지 어언 2년이 되었다. 전화를 한 후배는 의도하지 않았건만 꼭 나를 따라 회사를 그만둔 것처럼 내가 퇴사하고 한 달여만에 퇴사를 해버린 터였다. 또래의 동료가 제법 있었던 후배는 퇴사한 지 2년이 다 되어감에도 여전히 전 직장 친구들과 교류를 하고 있었다. 후배는 아직도 나를 부장님이라고 부른다.


"부장님, 호일(가명)이 회사 관둔대요. 더 좋은데로 이직한대요. 울산에 있는 더 큰 회사래요."

뜻하지 않게 호일의 소식을 들은 나는 그만 본심이 나와버렸다.

"진짜 참, 꼭 그렇게 이기적이고 지 밖에 모르는 싸가지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잘 풀리냐? 신경질 나게."

전화를 하여 소식을 전한 후배도 맞장구를 쳤다.

"맞죠? 역시 세상은 좀 못되게 살아야 되나 봐요. 상사 없다고 볼일 있으면 일찍 집에 가고 늦게 오고 해야 할 일은 늦게 해 주고 해 달라는 건 빨리 달라고 하고. 즈이 아버지 회사 다니는 것처럼 회사 생활하더니. 포장을 얼마나 잘했는지 이직도 성공을 하네요."

비보를 들은 후배는 나에게서 공감을 필요로 했던 것 같다.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죽이 맞아 호일이 뒷담화를 하였다.



호일이가 우리 회사에 입사한 지는 5~6년 전쯤이었다. 수시로 사람이 바뀌는 인사팀 과장 경력직으로 입사를 했다. 처음 입사했을 때 넉살과 친화력이 무척 좋아서 사람들이 좋아했다. 인사팀은 직원들과 너무 친해도 안된다며 약간은 거리를 두었던 전직 인사 과장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말도 잘 걸고, 웃음도 많고 일을 의논하려 가면 주저 없이 회의실로 가서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직원들은 이제야 우리도 제대로 된 인사팀을 가지게 되었다고 반가워하였다.

호방하고 이야기 잘 들어주던 호일이는 그러나, 실제 업무에서 구멍을 보였다. 전임자가 엉망으로 해놓은 서류나 피일을 정리한다고 하면서 인사팀에서 해야 하는 급여, 연말정산, 복지 등의 일상 업무를 회계팀에서 계속해주기를 청하였다. 마침내 가져간 일은 실수가 생겨 수정과 번복을 하기도 했다. 전임자들이 손수 하던 일을 업무 과다라는 이유로 외주를 주는 것들이 생겼다. 원만한 성격의 인사팀 직원이 들어왔다고 반기던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실망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호일이는 직장 상사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상사로부터 평가는 잘 받았다. 우리는 그 점이 더욱 맘에 안 들었다. 우리 회사는 외국계였고 Functional 조직이어서 사장이 인사 평가자가 아니라 내 부서장이 모든 권한을 쥐고 있는 인사 평가자였다. 옆 부서 동료의 평가가 박해도 사장에게 조금은 대들어도 직속 상사만 좋다면 일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는데 인사팀은 특히 더 심했다. 왜냐하면 인사팀의 직속 상사는 외국인 인데다 근무를 해외에서 하였기 때문이다. 즉, 호일이의 일상생활을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호일이는 이 점을 십분 이용하여 자신의 업무를 과다하다고 보고하고 열심히 한다고 포장을 하는 것 같았다. 아주 우수한 영어 실력을 그렇게 써먹고 있었던 듯하였다.


내가 회사를 그만 둘 때까지 호일이랑 같이 생활한 것은 약 3~4년 정도였는데 회사가 어려워 모두의 승진과 급여 인상이 심히 박했음에도 호일이는 사내에서 승승장구하였다. 급여는 서로 기밀사항이라 얼마나 월급이 올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3년 사이 연차도 차지 않았는데 과장에서 차장으로 승진한 것을 보면 미루어 짐작이 되었다. 내가 퇴사를 한 후에도 바람결에 실려오는 이야기를 들어보자니, 호일이는 별로 바쁘지 않은데도 바쁜 티를 낸다고 하였고 직속 상사가 없으니 스스로 자유로운 근태를 한다고 하였다. 얄미운 호일이의 직장 새활은 그렇게 계속되다가 마침내 자신의 경력을 잘 포장하여 더 큰 회사로 성공적인 이직을 하였다는 것이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그런 사람 꼭 있다. 가진 것은 3인데 9를 갖고 있는 것처럼 '체'하는 사람, 직장생활 7~8년인데 15년 차 들이나 할 법한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어 남들보다 더 많은 고생을 했다고 무용담을 늘어놓는 사람, 동료들이 한 일을 지켜보았을 뿐인데 마치 자기가 일을 다 한 것처럼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 동료들이 일이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면 마치 니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나는 다 안다는 식으로 제대로 듣지도 않고 건성으로 그래그래 하는 사람, 특별히 바쁠 것 없다는 걸 모두 다 아는데도 바쁜 척하며 회사 일은 혼자 다 하는 것처럼 호들갑 떠는 사람.


교과서와 책에서는 자신의 일을 떠벌리지 말고 묵묵히 일을 하다 보면 주위에서 저절로 알아준다, 라며 꾸준하고 열심히 하는 태도를 장려하였다. 보통 사람들은 타인을 배려하고 내가 조금 더 손해를 보는 삶이 결국은 이기는 삶이라고 선생님들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어릴 때부터 배워왔다. 공자나 의인, 열사들처럼 모범적이고 먼저 행동하는 삶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는 말자, 타인의 아픔에 공감을 하는 사람은 되자, 라는 정도의 자세로 그저 그렇게 살아 내고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회를 알면 알수록 그저 묵묵히 내 할 일을 하면서 살아내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인지 생각을 곱씹게 된다. 회사에서 일 잘하고 부지런한 사람은 그 잘하는 일 때문에 정작 자기 이력서 한 장 쓸 시간조차 없어서 이직도 못하고 계속 매인 몸으로 일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반대로 자기 몸을 편하게 하는 데는 머리가 탁월하게 잘 돌아가서 표가 안 나는 일은 교묘히 떠넘기고 그 시간에 자신을 잘 포장하는데 여력을 다한 사람은 인사 고과도 잘 받고 이직에도 성공을 한다. 일을 넘긴 여유 시간에 이력서를 만들고 포장을 이쁘게 하고 언어와 인맥을 다듬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희망퇴직을 받을 때도 그렇다. 희망퇴직가 생긴 초기에 굳이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아도 되는데 동료들이 불편한 것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먼저 퇴직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줄 알고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해오던 사람들은 지옥 같은 바깥세상을 잘 모르고 퇴사 이후에 후회를 하는 아버지, 선배들이 많았다. 끝까지 버티었거나 보기 좋게 마케팅을 한 사람들은 살아남아 남은 영화를 누리기도 하였다.


학교를 다닐 때처럼 열심히만 하면 성과가 나고 결과가 나오는 사회라면 얼마나 좋으련만, 아쉽게도 사회라는 곳은 마냥 그런 곳만은 아니다. 적절한 포장의 기술도 필요하고 적당한 정치도 필요하다.

일 잘하는 사람이 포장도 잘하고 정치도 잘해서 승승장구하면 참으로 기분 좋은 박수를 보낼 수 있겠지만, 내가 보아 온 다수의 승승장구의 모습은 호일이의 경우처럼 그저 그런 일 솜씨에 포장과 정치가 뛰어나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점프 업을 하는 경우였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다가 호일이 경우를 맞닥뜨리게 되면 '우리는 왜 이렇게 순진하게 세상을 살았는가'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오늘 내가 가진 이런 아쉬움들이 그렇게 수많은 자기 계발서와 인간관계에 대한 책을 낳게 했나 보다. 우리는 학교에서 교과서에서 포장의 기술과 처세술을 배울 수 없고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직장 생활에서 승승장구 까지는 아니더라도 살아남기라도 하려면 포장과 처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버리는 것이다. 그런 것을 가르쳐주는 곳을 찾다 보니 뻔한 소리인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나 '직장에서 성공하는 법' '조직에서 살아남는 법' '성공의 처세술'과 같은 자기 계발서를 읽고 그것을 사회생활 교과서인 것처럼 대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가장 부질없는 책 종류 중 하나가 자기 계발서인 줄 안다. 주변에도 아이들에게도 자기 계발서 읽지 말고 고전과 문학을 읽으라고 말하고 다녔다. 지금 같은 기분이면 내 정책을 바꿔야 하나, 고민이 살짝 든다. 나와 꼭 같은 아쉬움과 여한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느끼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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