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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키코모리 K선생 Aug 25. 2024

두 개의 지옥 그리고 나 (1/2)

동굴 속 이야기 스물여섯

순간순간 극단의 환경을 오가는 경험을 일생동안 몇 번이나 할 수 있을까? 여름에서 겨울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자주 경험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경험한다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무엇인가 바뀌게 될까?


지난주에 감사하게도 적당히 견딜만한 극단의 환경을 순간순간 오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음료공장 냉동창고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영하 18도 냉동창고와 영상 35도 뙤약볕을 오가는 일이었다. 25kg 냉동 음료 박스를 적재하고 수백 번 트럭에 싣고 물품을 내렸다. '가족 같은 분위기'란 광고처럼 쉬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고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감사했다. 내가 바라마지않던 고단한 환경이다.

냉동창고는 이런 느낌이다




PET병에 든 음료를 빠르게 얼리는 냉동창고에서 쉴 새 없이 땀이 흘렀고 몸에선 김이 모락모락 올랐다. 입김은 하얗고 자그마한 얼음알갱이로 속눈썹에 방울방울 맺혔다.


 마스크를 쓴 입안으로는 짭조름한 물이 흘러 들어왔다. 땀인지 콧물인지 마스크 안에 맺힌 입김이 녹은 물인지 그 모든 것이 뒤섞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3M 장갑과 두 겹의 목장갑에도 불구하고 손끝과 발끝에 추위와 고통이 밀려왔다. 냉동창고 팬은 지옥 같은 찬 바람을 불어댔고 귀마개를 뚫고 들어오는 귀를 아프게 하는 웅웅 거리는 큰 소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추위와는 가장 거리가 먼 매미소리로 바뀌어 들렸다.


'아... 추위는 지옥이구나.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다'

눈썹에 얼음알갱이가 맺힌 여름은 처음이다.




냉동창고에서 가끔씩 35도의 뙤약볕으로 호출되었다. 불볕더위에 방한복, 귀마개, 깔깔이, 장갑을 훌훌 털어 벗었다.


두 겹의 팔은 벗지 못했다. 옷을 벗었다 다시 입을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긴 팔을 껴 입고 옷깃을 세우고 귀마개를 목에 건 채로 검은 아스팔트 위에 섰.(옷차림과 더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옆 공장, 건너편 공장 아르바이트 분들은 정신 나간 인간을 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래도 좋았다.




뜨거운 더위로 몸속이 익어갔다. 


발걸음이 비틀거린다. 뒤늦게 어지러움이 찾아왔다. 현기증이란 발이 더 신호가 빠른 법이구나. 새로운 지식을 얻었다.

지난주엔 여름이 더워서 좋다는 말을 했었는데... 정신 나간 소리였다


'추운 건 아플 뿐이지만 더운 건 몸이 위태롭네? 더위보다는 추위가 나은 게 아닐까?'




곧 땀에 젖은 채로 다시 냉동창고에 들어간다. 또다시 밖으로 나와 작렬하는 햇빛과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에서 현기증과 씨름한다.


이젠 25kg 음료 박스나 땀, 끈적이는 음료, 몸에 새로 생긴 멍 따위는 신경도 쓰이지  는다. 오로지 추위와 더위의 지옥을 아무 생각 없이 쉴 새 없이 오갈 뿐이다.


그래 이곳은 지옥이다.

퇴근시간은 멀기만 하다. 물론 잔업은 예고 없이 다가온다.




며칠이 지났다. 지옥 같은 추위와 더위에 조금은 익숙해졌다.


그리고 내게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난 혼란에 빠졌다.



- 힘들었던 상하차 일이 달콤하게 느껴졌다. 육체의 고단함은 당연했지만 그것을 넘어 고통이 느껴졌다. 새벽까지 온몸이 아파서 끙끙대다가 통증에 잠깐씩 잠에서 깨기도 했다. 아침에 출근할 때 즈음이면 그제야 몸의 통증이 사라지고 잠시나마 단잠을 이룰 수 있었다.


- 몸에 여유가 없어지자 마음에 두려움이 자랄 틈이 없었다. 다행이다. 축하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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