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당신에게 하지 못했던 말
엄마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강한 여성이었다.
철없던 어린 시절엔 정말 그렇게 믿었다.
아빠의 직업이 트럭 운전사였기에 아빠가 집에 들어오는 날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엄마는 혼자 아이 셋을 돌봐야 했고, 그러면서 일을 해야 했다.
저녁 늦은 시간, "끼익-" 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지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귀가한 엄마가 들어왔다.
엄마에게는 늘 고기 냄새가 배어 있었다. 고깃집에서 일을 하던 엄마.
마치 중력이 엄마에게만 더 세게 작용하듯 지친 엄마의 어깨와 걸음걸이는 늘 조금 더 무거워 보였다.
돈이 어느 정도 모이자 엄마는 빨래방을 열었다.
빨래방 사장님이 된 엄마는 내 자랑이었다.
초등학교 모둠숙제로 직업 인터뷰를 해야 할 때 나는 "우리 엄마 사장님이야!" 하며 친구들을 데려와 엄마를 인터뷰 했을 정도였으니까.
엄마는 가끔 호랑이로 변신했다.
그냥 호랑이가 아닌, 세상에서 제일 크고 무서운 호랑이였다. 말썽을 피우다 엄마한테 혼나 효자손으로 발바닥을 맞은 날은 엉엉 울며 잠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엄마의 휴대폰에서 울리는 벨소리에 나는 반쯤 깨어났다.
엄마는 나와 동생들이 깰까 봐 귓속말을 하듯 작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모두가 잠든 조용한 새벽, 누가 나와 엄마를 깨운 걸까 궁금했다.
그 생각이 깊어지기도 전에, 몇 초 지나지 않아 엄마의 입에서 "아빠..." 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무너져 내리듯 울음을 터뜨리며 연신 흐느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외할아버지였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미국에 가셨다고 한다. 시차가 있으니 새벽에 전화가 올 수밖에 없던 거였다.
나는 숨죽여 엄마의 흐느낌을 듣고 있었다. 내가 깨어 있다는 걸 들켜선 안 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어린 나는 그저 조용히 이불 속에서 애써 엄마의 울음소리를 외면하며 다시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와 똑같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엄마는 부랴부랴 우리의 아침밥을 차렸고, 다시 '엄마'에서 '사장님'으로 변신하여 빨래방 문을 열었다.
마치 새벽의 그 울음과 숨 막히던 순간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내가 꿈을 꾼 건가? 싶었지만 그 기억은 너무 또렷하고 생생했다.
그때의 나는 그 울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고, 그 상황이 그저 불편하기만 했다.
엄마는 강한 사람이고, 버티는 사람이고,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그날 새벽, 엄마는 아마도 '엄마'라는 역할을 잠시 내려놓고 그냥 한 사람으로, 그리고 외할아버지의 딸로 울고 있었을 거라는 걸.
엄마는 강한 사람이 아니라 강해야만 했던 사람이었다는 걸.
그래서 나는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날의 엄마를, 우리가 깰까 봐 조용히 흐느끼던 엄마를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은 당신을 다 용서했노라고. 이제는 편히 쉬라고.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