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진 것으로 충분하다.
창문을 열자 빗소리가 들어왔다. 하늘은 먹구름에 가려 어두웠고,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점점 더 많이 내릴 것 같았다. 나는 작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런 날엔 따뜻한 커피지.’
부엌 선반 구석에 있는 주전자를 꺼내 물을 올렸다. 시간이 지나자 하얀 김이 오르며 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나는 수증기에 얼굴을 갖다댔다. 기분 좋은 따뜻함이 얼굴을 감쌌다. 얼굴만 빼꼼 사우나에 넣었다 뺀 것 같았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컵에 커피믹스를 넣고 물을 쪼르륵 따랐다.
차가웠던 컵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갓 뜨거운 물을 부은 커피는 바로 마시면 입천장을 다 데일 게 분명했다. 나는 마시지도 않은 채 커피를 호호 불며 창밖을 바라봤다. 창밖이 더 선명해졌다.
우산을 쓰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산의 색이 다양해서 위에서 내려다보면 알록달록한 그림 같았다.
검은 우산을 쓴 남자는 서류가방을 들고 누군가와 전화를 하며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반대로 초록 우산을 쓴 꼬마는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장화를 신고 물웅덩이 위에서 개구리처럼 제자리 뛰기를 하며 까르륵 웃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나는 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좋을 때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가끔은 저들의 순수함이, 때 묻지 않은 웃음이 참 예뻐 보이면서도 부럽기까지 하다.
마시기 좋게 커피가 살짝 식었다. 나는 한 모금 호로록 들이켰다.
따뜻함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속이 금방 데워졌다.
기분은 최고였다.
이 완벽한 기분으로 무엇을 할까?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닌텐도 게임을 할까, 책을 읽을까 고민했다.
나는 결국 최근에 산 책 <<명상록>>을 책장에서 꺼냈다.
요즘 스토아 철학에 큰 관심이 생겨 관련된 책들을 사서 모으고 있다.
그중 가장 읽고 싶었던 책은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었다.
좋아하는 책 한 권, 그리고 따뜻한 커피 한 잔. 이 정도의 행복이면 충분하다.
이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으랴.
마르쿠스가 남긴 말들 속에서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지금 가진 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지금 이 상태가 딱 좋다.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