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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함도 재능인걸요,
너무 매이지 마세요.

수리부엉이의 저슷두잇 : 연구자의 일에 대하여

by 힐데와소피


연구가 내 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나는 이해도 못 하겠는 방법론을 쉽게 쓴 연구를 볼 때. 이론을 피상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찰떡처럼 적용한 연구를 볼 때. 거기다 문장까지 유려한 연구를 보면 더 이런 생각이 들죠. 역시 천재는 따로 있는 거야. 연구도 할 사람이 따로 있는 거고. 이건 내 길이 아니야... 낙담하고 있는 부엉이들을 흔히 우리를 위로하는 말이 있죠. 재능보다도 중요한 건 꾸준함이다. 그래. 내가 재능은 없어도 노력하면 될 거야. 노력하면 다 되는 거랬어! 그러나 실상은 그 '꾸준한 노력' 조차 하지 않는 나를 보며 자괴감을 느낍니다. 하루에 몇 시간 집중하는 것도, 책을 한 권 다 읽는 것도 힘이 들어요. 남들처럼 계획을 세워 붙여놓아도, 오늘의 할 일 목록을 작성해도, 알람을 맞춰놓아도 다 소용없습니다. 오늘은 그런 부엉이들을 위한 글을 써보았습니다.


daniel-chekalov-OxU08SFhPbI-unsplash.jpg Photo by Daniel Chekalov on Unsplash



그거 아세요, 부엉이 여러분? '꾸준함'도 재능입니다.


약 한 달 전, 지인들이 수많이 공유했던 글이 하나 있습니다. 이슬아 작가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재능과 반복>이라는 칼럼이었습니다.


재능과 꾸준함을 동시에 갖춘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창작을 할 테지만 나는 타고나지 않은 것에 관해, 후천적인 노력에 관해 더 열심히 말하고 싶다. 재능은 선택할 수 없지만 꾸준함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십 년 전의 글쓰기 수업에서도 그랬다. 잘 쓰는 애도 매번 잘 쓰지는 않았다. 잘 못 쓰는 애도 매번 잘 못 쓰지는 않았다. 다들 잘 썼다 잘 못 썼다를 반복하면서 수업에 나왔다. 꾸준히 출석하는 애는 어김없이 실력이 늘었다. 계속 쓰는데 나아지지 않는 애는 없었다. - 이슬아, <재능과 반복>


이 글에 대해서 많은 지인들이 재능이 없어도 꾸준히 하는 것만으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글에 위로를 받았다는 코멘트를 달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글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살짝 갸우뚱했습니다. 꾸준함이 노력이라고? "사실 꾸준함은 재능인데?"




시간을 투자해서 반복하는 능력은 재능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노력은 시간을 투자해서 반복적으로 일을 해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노력 또한 재능이라는 점. 오랜 기간 과외를 하며 깨달은 불변의, 만고의 진리였습니다. 수학 과외를 시작하고 약 3-4년 동안 저는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습니다. "잘 못 하고 모르는 건 괜찮은데 열심히 안 하는 건 용납 못 해." 숙제를 열심히 안 하는 애들을 보고 있으면 과외비가 아깝고, 이해도 안 갔죠. 혼쭐을 내기도 했습니다. "이 녀석들아, 실력이 없으면 노력이라도 해야지!" 이런 말을 하면 학생들이 "하기 싫어서 안 했어요!" 이렇게 반응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많은 수의 학생들이 띄엄띄엄 수식을 적어 놓은 공책을 만지작 거리며 고개를 푹 숙입니다. 그리고 억울하다는 듯이 "쌤 저는 열심히 한 거에요..." 라고 말하는 거 있죠. 아니, 대체 내가 뭘 보고 너가 열심히 했다고 믿어야 하는데! 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4년 정도 지나자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그 학생과 저의 열심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무언가를 동일한 시간을 들여 꾸준히 해내는 것 또한 사실은 재능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특히 스스로 자신의 시간을 통제하는 것은 엄청난 재능입니다. 이건 단지 기술로만 해낼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지금 하는 일에 방해되는 것을 차단하고 오랜 시간 무언가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힘이 필요합니다. 지금부터 3시간 동안 공부할 거야!라고 선언하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습니다. 시간을 채우기 위해 억지로 책상 앞에 앉아 있는다고 효율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구요. 그런데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기도 합니다. 무리 없이 가볍게 3시간 동안 집중할 수 있는 사람도 있거든요.


사실 꾸준하게 열심히 하는 것도 일종의 재능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마음이 조금 편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재능'이라는 건 과도하게 높은 수준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반복적으로 무언가에 시간을 투자하는 '노력'은 쉽게 평가하면서 오히려 사람들을 위축시키는 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치 노력마저 안 해? 넌 낙오자야! 이런 느낌이에요. 특히 실패한 사람들을 볼 때 그 사람의 '노력' 탓을 하는 걸 보면 이 또한 뭔가 잘못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일 내가 꾸준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영역은 한정적입니다.


만일 내가 꾸준함을 재능으로 갖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잘 살펴보세요. 모든 일에 있어서 당신의 꾸준함이 발현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저는 3시간 동안 책은 읽을 수 있지만 3시간 동안 춤은 출 수 없습니다. 요리를 배우기 위해서는 적은 힘으로도 집중할 수 있지만, 화분을 가꾸고 무언가를 기르는 데는 도무지 집중이 안됩니다. 그러니 당신이 그 분야에서 노력할 수 있다면 그것도 재능입니다.


재능이라고 하니 노력하는 것마저 타고나야 한단 말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재능은 타고난 천재적인 능력만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DNA에 새겨진 능력일 수도 있지만 환경에 의해 계발된 것일 수도 있어요. 꾸준하게 노력하는 것도 재능이나 환경의 영향일 수 있다는 점. 저는 더욱 개인의 노력 탓만 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부엉이 여러분 꾸준히 안 한다고 스스로를 너무 채근하지 말고 마음을 조금 편히 가지세요. 여러분이 이 분야에 계속 머무르기로 선택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굳이 채근하지 않아도 어차피 써야 할 글은 쓰게 되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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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리부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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