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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화제의 논문을 읽어보았다

칡부엉이의 사통팔달 : 연구자에게 전하는 영감

by 힐데와소피

어느 날 트위터를 보다가 논문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3천 명 가까이 리트윗 한 '개인투자자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를 하는가'란 논문이었지요. 질문 형태의 제목만큼이나 그 내용도 흥미로워 보였습니다. 때마침 코로나19와 함께 증시가 대폭 하락하면서 동시에 '동학개미운동'이라 불리우는 개인투자자들이 늘어났었습니다. 정보를 찾아 헤매는 개인투자자가 늘어나서 일까요, 이 논문은 누군가에 의해 발굴되고 전파된 것입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한 주제였습니다.


목요일의 부엉이를 준비하는 칡부엉이에게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소재였죠. 이 화제의 논문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읽어봤습니다.


화제의 논문.PNG


김수현씨의 논문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꽤 단순합니다. 주제의식이 명확하다는 것이 더 분명한 표현일까요. 이 논문의 문제의식이자 제언은 아래 문장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형태재무학의 설명에는 그러한 인간의 심리가 작동하는 장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재생산되고 있는지에 관한 문화적 과정에 대한 설명은 결여되어 있다. 이러한 심리가 작동하고 있는 구조적 조건과 문화적 과정을 모두 살펴보아야 실패의 원인을 개인의 잘못된 선택으로 돌리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 「개인투자자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를 하는가」, 45쪽


개인투자자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는 형태재무학에서만 다뤄졌던 모양입니다. 저자는 개인투자자의 심리에만 의존한 연구는 개인투자자가 왜 등장했고, 그리고 포기하지 않으며, 실패함에도 계속 투자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완전히 대답하지 못한다고 평가합니다. 이에 인류학 전공인 저자는 '구조적 조건'과 '문화적 과정'을 살펴 이를 통해 개인투자자에게만 실패의 원인을 찾는 오류를 벗어나자고 합니다.


논문은 로얄매매방이라는 곳에서 활동하는 개인투자자들을 인터뷰를 주 기반으로 합니다. 어떻게 그들이 개인투자자로 전업하였고, 투자의 형태와 철학, 로얄매매방을 들어오게 된 계기 등을 묻습니다. 그리고 일련의인터뷰를 통해서 로얄매매방의 개인투자자들의 사회적 배경을 발견합니다.


로얄 매매방을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경제 활황기였던 8~90년대 대기업 등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다가 은퇴한 이후 개인투자자로 전업한 4,50대가 대다수였습니다. 그들은 자사주 보유 등 의 우연한 기회로 '주식'을 처음 접했다가, 정년퇴직 혹은 희망퇴직 이후에 본격적으로 '투자'를 전업으로 선택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일반의 상식과는 달리, 주식 투자가 자영업보다 초기 투자비용이 낮고, 진입장벽이 낮으며, 정년이 없어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고, 활동시간과 휴식시간이 정확히 나눠있다는 점(주식 거래장이 마감되면 퇴근하는)이었습니다.


주식투자는 리스크가 많은 일입니다. 논문 곳곳에서도 수 억을 벌었다가, 한꺼번에 탕진하는 사례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그렇다면 반복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놓지 못하는 개인투자자들의 심리는 무엇일까요. 김수현 씨는 여기서 단순한 심리분석에서 벗어나 그들의 신념을 묻습니다.


그중에 눈에 띄던 것은 '경제적 자유라는 신기루'입니다. 로얄매매방을 이용하는 투자자들은 언젠가 자신이, 자본수익으로 인한 불로소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상태, 즉 '경제적 자유'를 획득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자본의 크기를 충분히 키우면 적은 이윤이라 할지라도 월 1000만원을 거뜬히 벌 수 있다는 계산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실상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이들이 전업투자를 결정하고 이에 종사하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신자유주의의 금융정책과 고용정책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이념의 귀결이다.
(중략)
우리사회에는 이러한 현실에 조응하여 대박을 통한 '경제적 자유의 획득'이라는
신자유주의의 꿈이 잔혹한 낙관주의의 형태로 환산되고 있다.
-173쪽



그리고 이러한 신기루를 만드는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라는 구조, 문화였던 것입니다. 국가는 중독성이 높은 주식 투자를 합법적으로 허용하는 가운데, 정년 퇴직 이후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가장은 그럴듯한 일자리와 '경제적 자유'라는 대박의 꿈을 꾸며, 개인투자자로 나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판돈을 잃고서야 그들은 로얄매매방을 떠납니다.


칡부엉이는 이 화제의 논문을 읽으면서 '잘 쓰인 논문은 잘 쓰인 책과 다르지 않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논문이 '저널리즘'과도 맥이 닿아 있음을 느꼈죠. 참여관찰과 인터뷰로 이루어진 연구방법의 특성이 취재방법과 유사한 측면이 있었을 겁니다.


이어서 든 생각은 '롱폼 저널리즘(Long Form Journalism)이 필요하지 않은가'였습니다. 최근 영상으로 만나는 다큐멘터리는 매우 익숙해졌지만, 긴 글의 저널리즘을 만나기 힘듭니다. 화제성에 집중하는 단신이나, 범죄나 심각성을 주목하는 시사프로와 달리 롱폼 저널리즘은 사회현상에 대한 복합적인 이해를 제공합니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긴 글의 저널리즘이란 그나마 주간지에 실리는 분량 정도이죠. 시사를 전달하는 정보는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 때문에라도 더욱 사회적 맥락과 조건을 긴 안목에서 바라보는 연구와 저널리즘이 요청됩니다. 김수현 씨의 논문은 바로 '동학개미운동'이라 불리우는 투자 광풍에서 대중이 궁금해하는 현상에 대한 사회적 설명을 담은 글이었기에 호응을 얻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와 지도교수만 읽는 논문이 아닌, 책으로서도 충분히 출간될 수 있는 연구결과물 만들기.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부엉이라면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한 목표 아닐까요? 부엉이 여러분의 작업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참고:

김수현,「개인투자자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를 하는가」, 서울대학교, 2019

인류학논문이 왜 거기서 나와? 주식방 화제의 논문 김수현씨. 중앙일보. 20.07.07

https://news.joins.com/article/23818825?cloc=joongang-home-newslistleft




글. 칡부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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