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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와소피 Mar 23. 2023

'선동하지 말라'는 선동?

책 <선동은 쉽고 민주주의는 어렵다> 출간 소식


동의하지 않는 말은 모두 '선동'?


한국 정치에서는 매일같이 상대편에게 "선동을 그만두라!" 혹은 대중에게 "선동당하지 마라!"고 말한다. 문제는 양쪽 모두 자신은 선동가가 아니고 상대편이 선동가라고 말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누가 선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한 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모두 선동가인 걸까.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집단이 ‘선동’을 한다"고 생각하거나 말할 때 우리는 어떤 의미로 선동을 사용할까. 히틀러와 스탈린과 같은 독재자들이 했다는 선동의 의미라면, 우리는 선동에 당해서도 속아서도 안 될 테다. 



한국 정치인은 모두 선동가(?)


이제까지 한국에서 '선동'은 선동의 명확한 정의에 따라 판단하기 보다는 ‘이념적’으로 맞지 않는 상대를 ‘나쁜 놈’으로 몰아가기 위해 사용되어 왔다. ‘북한의 대남선동’, ‘좌파세력의 내란선동’, ‘종북세력의 선전선동’ 등이 이런 표현의 예다. 하지만 상대방이 선동을 한다며 비난하는 사람의 요지를 들여다보면 자신이 동이되지 않는 상대방의 이념과 생각을 선동이라는 단어를 빌려 비난하고 있는 양상이다. 그렇다면 내가 동의하지 않는 사람의 발언은 다 선동이라 할 수 있는 걸까? 적어도 지금 우리나라에선 그렇게 읽히는 것 같다. 




선동이란 무엇인가?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선동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렇다면 상대방도 나를 선동가라고 비난할 것이기 때문에 모두가 선동가가 되어버린다상대방의 생각에 동의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과 그 사람이 선동적 언어를 쓰는지에 대한 판단은 분명 다른 차원의 문제다.


선동을 하고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선동이 무엇인지 보다 더 정확히 알아야 한다. 패트리샤-로버츠 밀러의 책 <선동은 쉽고 민주주의는 어렵다>에 따르면, 선동은 옳고 그름보다는 정체성에 관한 것으로 우리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대편을 희생양 삼는 담론을 말한다. 선동은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우리와 그들로 단순화시킨다. 그리고 논의의 쟁점을 우리편과 상대편 중 누가 더 나은지로 몰아간다. 정치적 언어가 이런 기준에 해당한다면 이는 선동이다. 


위의 기준에 맞춰서 요즘 한국정치의 말들을 다시 보자. 이전에는 내가 동의하지 않는 사람의 말이 무조건 선동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동의하는 사람의 말에도 선동이 있을 수 있다. 선동을 하는 쪽은 상대편일 수도, 우리편일 수도 있다! 




선동이 만드는 악순환을 끊어내려면


보통 선동은 누군가의 일탈로 멈추지 않는다. 한 쪽에서 시작한 선동으로 상대편도 선동을 하게 만드는, 선동 문화를 만들어내는 악순환을 내재한다. 저지되지 않고 확산되어 만들어진 선동 문화는 민주주의를 상대 집단으로부터 우리 집단의 이익을 지켜야 하는 제로섬 게임으로 만든다. 


민주주의는 애초에 이런 식으로 운영된다고 그려지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나와 달라도, 때로는 틀려도 함께 대화하고 생하는 모습, 시간이 오래 걸려도 현재의 최선의 답을 찾아 내는 모습을 이상으로 그린다. 민주적 공론장이 선동의 언어로 가득차게 되면 이상의 건설적인 합의는 더이상 어려워진다. 그러나 선동가가 민주적 합의를 망치고 있으므로 저들을 쫓아내자는 주장을 하게 되면 또다른 선동을 하는 셈이 된다. 



우리는 우리 공동체에서 상대편의 선동가 혹은 그의 추종자들을 정화함으로써
선동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된다. 그것은 선동적인 해결책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 한다.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그저 또 다른 선동가를 얻게 될 뿐이다.
(선동은 쉽고 민주주의는 어렵다, 101쪽)



<선동은 쉽고 민주주의는 어렵다>의 저자는 분명히 말한다. 선동을 몇 가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것은 과장이고 거짓말이라고 말이다. 현실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복잡하다. 그래도 잊지말아야 할 중요한 중심 원칙이 있다. 바로 우리가 '무엇'에 관해 논쟁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논쟁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선동에 맞서는 가장 중요한 전술은 민주적 숙의를 지지하고 주장하는 것(131쪽)이다. 


물론 요즘같이 상대편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는 의견만으로 배신자의 낙인이 찍히는 상황에서 민주적 숙의를 주장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어쩌면 진짜 문제는 선동을 허용하는 우리 안의 선동 문화일 것이다. 선동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테지만, 선동이 민주적 공론장을 완전히 잠식하여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지는 일은 막아야 한다. <선동은 쉽고 민주주의는 어렵다>는 민주적 숙의란 무엇인지, 선동은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선동에 맞서기 위한 방법과 도구들을 소개한다. 어지러운 시대, 민주주의의 위기를 느끼며 이를 지키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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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오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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