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이 여러분 안녕! 지난번 프롤로그는 마치 연구에 대한 진지한 얘기를 늘어놓을 것처럼 거창하게 썼지만 오늘은 공부할 때 정말 필요한(!) 돈 얘기를 해보려고 해요. 여러분을 포함하여 주변에 인문사회과학 분야와 관련된 연구나 공부를 하는 부엉이들을 한 번 떠올려 보세요. 반드시 셋 중 하나일 거예요. 첫째, 연구가 직업이거나 직업과 관련한 분야를 연구하는 부엉이. 둘째, 가정이 비교적 넉넉하여 책도 사보고 공부도 할 수 있는 부엉이. 셋째, 쟤는 대체 어떻게 먹고살지?라는 생각이 드는 부엉이. 여러분은 어떤 부엉이인가요? 첫 번째, 두 번째 부엉이는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는데, 대체 세 번째 부엉이는 진짜로 어떻게 공부를 하는 걸까요? 사실 그런 부엉이들에 대해서는 저, 수리부엉이가 아주 잘 알고 있어요. 왜냐면 바로 제가 그런 부엉이거든요.
언니는 무슨 돈으로 대학원 다녀요?
저는 속칭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의 삶을 살고 있어요. 아주 다양하고 많은 질문을 받으면서 살아요.(여러분도 언제든 질문이 있다면 보내주세요!) 대학원 다닐 때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죠. "언니는 무슨 돈으로 대학원 다녀요?" 사실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도 관련 직업에 안착하지 않고 이런저런 공부와 연구, 노동을 병행하며 살다 보니 이제는 질문이 이렇게 바뀌었어요. "언니 대체 돈은 어떻게 벌어요?" 그래서 어떻게 대학원을 다녔는지 까놓고 얘기해볼까 해요. 그런데 저 같은 삶이 가능하시려면 반드시 대전제가 같아야 합니다. '집으로부터 지원을 받지는 못하지만 집에 지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삶' 이게 핵심이죠 사실.
위의 대전제에 해당한다면 이런 방법이 통할 수 있습니다. 첫째, 입학 후에 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조교를 받을 수 있으면 좋습니다. 미리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입학 전에 학교에서 진행하는 연구재단 혹은 공공기관의 프로젝트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저는 행정조교처럼 주 5일 출근해서 학교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일주일에 1-3회 출근하면 되는 프로젝트 조교를 추천해요. 왜냐하면 연구자에게는 시간을 유연하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프로젝트 조교는 대략 매달 60-70만 원 정도의 급여를 받을 수 있어요. 세금은 원천징수하기 때문에 반드시 차년도 5월에 종합소득세를 신고해서 수령하세요!
둘째, 대학원 내부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학교 선배들과 교수님들과 관계를 잘하면 외부 관련 기관의 파트타임 업무 혹은 학술회의 아르바이트 등도 맡을 수 있어요. 정기적이지는 않지만 단기 스펙도 쌓을 수 있고 다른 연구소나 학회도 경험할 수 있으니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대학원에 다닐 때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외부 연구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요. 이후에 이력서를 쓸 때도 단기 경험으로 기록할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셋째, 나만의 파트타임 분야를 갖고 있는 게 좋아요. 저는 제 연구와 관련 있는 기관에서 파트타임 간사(주 1-2회)를 하기도 했고요, 대학생 때부터 하던 과외도 계속했어요. 그리고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재택근무를 갖고 있어도 좋은데요! 저의 경우는 어차피 논문 쓸 때 필요한 능력이니 교정-교열 업무 등도 함께 병행했습니다. 제가 아는 학생은 야간으로 몇 시간씩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어요. 물론 시간 대비 시급이 높은 일을 하면 가장 좋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하루에 몇 시간을 할애하여 노동을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렇게 하면 매달 다르지만 월평균 150만 원 정도는 확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공부도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30% 정도 받으면 더 여유롭게 살 수 있겠죠! 장학금을 받는 게 어렵다면, 학자금 대출을 고려하거나 당연히 생활비를 줄여야겠죠!
새로운 노동 환경에 맞는 연구자가 되어야 합니다.
위의 방법은 사실 쉽지 않아요. 공부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저런 일까지 해야 하는 건지! 대체 공부는 언제 하는지 궁금하겠지만 시간 관리는 나중에 얘기할 기회가 있을 거예요. 대학원 시절 제 노동의 패턴까지 언급한 건 바로 이 이유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이 세 번째 유형의 부엉이라면
반드시 잔기술을 활용한 유연한 노동 영역을 확보해야 합니다.
부엉이 여러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예견하고 있는 것처럼 노동 환경은 시시각각 바뀌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정규직 노동이 축소되고 플랫폼 노동 분야가 급증한다는 통계를 내놓고 있는데요, 연구 분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느끼고 계시죠? 연구소나 학교의 채용은 줄고 있어요. 정규직은 몇 안되고 경쟁률은 늘어났습니다. 대학의 학부 전공을 살펴보세요. 요즘은 정치학, 사회학 같은 전공이 사라지고 교양학부로 편입되는 경우도 많죠.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에도 안정적인 일자리가 아니라, 길면 2년 정도의 프로젝트 연구교수로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직업으로서 연구를 해나갈 수는 없지만 연구를 지속하고 싶다면, 유연한 형태의 노동을 하면서 연구를 해나가는 것도 방법입니다. 유연한 형태의 노동이라고 하는 이유는 5일 내내 일하는 직업을 가져서는 남는 시간에 연구를 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럴 경우 여러분이 성과를 내야 하는 건 자신의 연구가 아닌 그 회사의 업무가 될 겁니다. 조직에 속해 있다는 부담은 덤이고요. 이제는 여러분의 연구를 꾸준히 하며 여러분의 브랜드를 쌓아나가야 합니다. 연구 노동의 자리가 점점 줄어든다면 아마 학계에도 분명한 변화가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돈보다 중요한 게 있잖아요?
이런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희망적으로 느껴지는 건 이제는 여러분이 어느 연구소에서 일하는지가 아니라, 연구자의 연구가, 연구자의 특성이 더 중요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보세요 여러분. 예전에는 검은 표지의 딱딱한 논문으로만 존재했던 연구들이 대중의 눈높이로 편집되어 단행본으로 나오기도 하고요. 젊은 독립 연구자들의 결과물이 대중들에게 재밌는 방법으로 소개되기도 해요.
최종렬 교수의 연구가 시사인에 소개되면서 단행본으로 나오게 된 것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어요. 진저티 프로젝트와 동그라미 재단이 함께한 밀레니얼에 대한 연구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죠. 모든 연구가 학술지로 나올 필요는 없어요 :)
여러분이 꿈꾸는 연구는 단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 전달되는 연구, 세상을 바꾸는 연구가 아닌가요?
사람들은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결국 돈이 필요하다고 말해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돈이 안 되는 분야인 걸 알면서 굳이 선택한 건 당신이 돈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 아닌가요? 안정적인 자본이 있는 부엉이라도 마찬가지예요. 추가적인 수입이 적을 수 있다는 걸 감안하고 이 분야를 선택한 거니까요. 물론 이 정도로 돈이 안 되는 줄 몰랐을 수 있지만요.(우린 모두 속았어요...) 게다가 이제는 너무 깊이 들어와 버려서 발을 뺄 수도 없습니다! 요즘은 돈을 좇아 사는 걸 인정하는 게 쿨하게 받아들여지더라고요. 그러니 우리도 부끄러워하지 말고 쿨하게 인정합시다. 물론 돈을 벌면 좋지만, 돈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어서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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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리부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