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의 경계에 새순이 돋다.

진호의 책방『소프루』

by 쓰는 사람 지민

2023년 11월 23일, 신유진 작가의 『소프루』와 함께한 <진호의 책방> 공연을 기록합니다.



2023년 11월, 초입의 겨울에 불었던 소생의 바람을 기억한다. 낮은 조도만큼이나 묵직하게 내려앉은 공기 속에서 유영하듯 움직이는 무정형의 기억들. 그것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한 채 추위 때문인지, 낯섦 때문인지 떨어야만 했던 냉기 서린 시간들. 그 모든 것들이 녹아 없어질 따스함을 앉고 자리에 앉았다.


-PLAY LIST-

F.Burgmuller - 3 Nocturnes for Cello and Guitar: I. Andantino

D.Scarlatti - Sonata in D minor K.32

F.Burgmuller - 3 Nocturnes for Cello and Guitar: II. Adagio

F.Burgmuller - 3 Nocturnes for Cello and Guitar: III. Allegro

H.Villa Lobos - Brchianas Brasileiras No.5, W389: I. Aria

Nina Simone - Wild is the wind



조명이 무대 위로 서서히 내려앉았다. 대리석 벽에 비친 나뭇잎의 실루엣이 첼로 소리에 공명하기 시작하자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곧 연극 같은 공연이 시작되었다.

『소프루』의 어린 프롬프터 역은 차환희 님, 프롬프터 역은 신유진 작가님, 예술감독 역은 홍진호 님이 맡아 대사를 이어갔다. 막이 내리면 첼로와 기타가 서사를 잇고, 이어 새로운 막이 오른다. 음악 위에 활자가 얹히고 활자의 공백을 음악이 메운다. 낭독과 숨결은 어느덧 음악의 일부가 된다.


공연의 주인공은 ‘프롬프터’였다. 무대 아래에서 배우에게 대사를 일러주는, 이제는 거의 사라진 직업이다.


“기다리고 지켜보며 무대와 무대 뒤 그 경계에서 사는 사람. 경계에 살기. 잠시 머무는 곳에 살기. 무대와 무대 뒤 그 사이에서 살기... 기다리기, 지켜보기, 듣기... 사고를 기다리기. 극장이 세상의 일부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사로잡힐 때, 예기치 않게 기억이 꼬일 때, 현실에서 갈피를 못 잡을 때, 자신이 유한한 존재이고, 완벽한 인물이 아니라 잠시 빌려온 연약한 육신일 뿐이라는 사실을 떠올릴 때, 그를 단어로 구하기, 그의 귀에 속삭이기, 그를 소생시키기.”

(소프루, p.11–12)

‘프롬프터의 말이 텍스트가 되고, 다시 텍스트에서 프롬프터의 숨이 더해져 하나의 발언이 된다.’

(소프루, p.191)


그들의 이야기에 끄덕일수록 텍스트들이 온전히 내 내면을 투과하는 듯하였다. 관객이 없는 공연은 없는 법. 그들은 늘 공연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끝’을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서 무대에 오를 때마다 연주 또는 연극을 시작했던 ‘처음’을 떠올린다고 했다.


공연이 절정으로 치달아 음의 공명이 차곡차곡 쌓일수록 내 삶 또한 겹쳐 떠오르기 시작했다.

특수교사로서의 내 삶은 ‘나’라는 자아의 무대에서 내려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 직업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들어주지 않아도 묵묵히 버텨야 하는 자리. 고개를 숙이고 내 잘못이 아님에도 책임져야 했고 사람들로부터 무시받는 일이 반복되기도 하였다. 젊은 시절에는 이직을 고민하며 사직서를 낼 변명거리를 찾기도 했다. 그러다 존재에 대한 부르심이 나를 본질로 이끌었다. 내가 무엇인가를 이루기보다는 나를 거룩하게 닦아 정체성에 맞게 사는 것이 삶의 목적임을 깨달았다.


무대 감독이 ‘커피’를 권하며 프롬프터를 무대로 나오게 하는 장면을 보며 나를 무대 아래로 내려오게 했던 그 사건이 떠올랐다. 자아에 갇혀 자기 생각과 계획만을 고집하는 나를 알 수 없는 힘이 멈추게 하고 애정 어린 시간으로 이끌었다. 기도할 수밖에 없는 그 틈에서 내 안에 새순이 돋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주인공이 되길 바랐으나 이제는 무대 아래에서, 누군가의 대사에 생기를 불어넣는 프롬프터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능력 있고 업적을 내는 사람은 많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경우는 드물다. 왜냐하면 마음을 위로하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은 상처를 겪고 충분히 치유된 이에게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바라는 바가 있다면 훗날 누군가가 내가 쓴 글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찢어졌는지, 동시에 얼마나 사랑받았는지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주신 분깃의 연구를 묵묵히 해 나가며 무대 밑에서 조용히 빛을 발하는 삶을 살고 싶다.


“죽지 않기. 무엇보다 죽지 않기. 살아가기.

비극의 도입부에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처럼 신중하고 상냥하게 진단을 내리는 의사 앞에서 흐트러지지 않기.

삶의 근간이 되는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고 주장하는 우리가 옳았다는 것을 알기.

의심 속에서도 살아가기. 죽음에 대한 생각에 직면할 때, 우리가 삶에 속해야 하는 이유인 미래의 신비를 다시 확인하기.

세상 사람들이 우리와 합류할 것이라고 희망하며 주저앉아 있을 곳을 알려주며,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따지지 말고 무력한 패배자가 되어 임종의 시간을 기다리라고 말하는 죽음의 상냥한 초대장을 거절할 줄 알기.”

(소프루, p.84)


감성이 농밀한 이곳, <진호의 책방>에서는 더이상 이성의 갑옷이 필요하지 않았다. 거추장스레 입고 있던 갑옷을 벗어넣고 감각에 의한 감정에로의 몰입을 시작하기로 한다. 그날의 연주는 나의 인생 기억을 자극했고 뿌연 상징들은 선명한 언어가 되어 내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금 천천히 따라가 본다.

정적을 살피고 그 애틋함을 기억한다.

그리고 조용히, 내 숨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날의 정적과 선율, 애틋함을 기억하며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