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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오 Mar 07. 2020

나도 언젠가 직장인이 되면 이해할 수 있을까

A의 수척해진 얼굴과 껍질이 벗겨져 엉망이 된 손을 이해할 수 있을까

   저 멀리서 걸어오는 A의 모습이 보였다. 몇 년 만인지, 조금은 반갑게, 조금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잘 지냈냐, 오랜만이네. 우리 둘은 근처에 있는 자그마한 카페로 향했다. A는 점심시간을 활용해 잠시 시간을 낸 거라며, 오래는 못 있는 다고 했다. 괜찮다. 너 어떻게 지냈냐. 그냥 회사 다니지, 뭐.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A의 얼굴은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


   A는 고등학교 시절 알게 된 동갑내기 친구였다. A는 공부를 무척 잘했고, 한 반에 한두 명씩 있는 ‘엘리트’에 속했다. 공부를 열심히는 했지만, 성적은 늘 좋지 않았던 나와 학업적으로 연결되는 지점은 없었다. 다만 둘 다 농구를 좋아했고, 이따금 진지한 얘기를 나누며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보통 고등학교 친구들은 20살 이후 특별한 연결점이 없으면 관계가 소원해지곤 했다. 그럼에도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A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군대에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통화를 했고, 휴가를 나오면 이따금 만나곤 했다. 특별히 친한 건 아니었지만, 연결점이 없는 것 치고는 관계가 오래 유지되고 있었다. 그렇게 A와의 인연은 제대 후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A는 이제 회사에 들어가 봐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저 멀리 부산에서 올라왔는데, 30분 남짓 만나고 헤어지는 건 아쉬웠다. 마침 낯선 타지에서 밤을 지새울 곳이 필요했다. 야, 너 회사는 언제 마치냐. A는 10시쯤 마친다고 했다. 그럼 그때쯤 맞춰서 너희 집 가도 되냐. A는 별 망설임 없이 괜찮다고 했다.


   *


   가로등 불빛 때문일까, 다시 만난 A의 얼굴은 더욱 수척해 보였다. 10시를 한참은 넘긴 시각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근처 편의점에 들러 맥주 두 캔과 안주로 먹을 간단한 안줏거리를 사 갔다. 원룸은 무척 좁았다. 휴식의 공간이라기보다 오로지 잠을 자기 위한 공간처럼 다가왔다. 그래도 서울에서 이 정도 방을 얻으려면, 부산에 비해 가격이 훨씬 비싸지 않을까 싶었다. 간단하게 씻고 A와 마주 앉아 맥주 캔을 땄다. 경쾌한 소리가 텅 빈 방을 가득 메웠다.


   언젠가부터 A와 만날 때마다 대화 주제가 한없이 깊어지곤 했다. 스펙을 잘 쌓아 대기업에 취업하는 게 목표였던 어느 공대생이, 작가의 꿈을 향해 달려 나가겠다며 세상과 싸우기 시작한 시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새로운 꿈이 생긴 후 나는 늘 세상을 비판했다.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기업에서 요구하는 대로 스펙을 쌓고 대학생활을 저당 잡히는 게 정말 이해가 안 돼. 자기들끼리 그러는 건 상관없는데, 그 줄에서 조금이라도 이탈하면 마치 패배자처럼 취급하는 것도 못마땅하고. 왜 다들 취업에만 미쳐있고, 그 외의 것들에는 관심도 안 두는 걸까. 간혹 A와 통화를 할 때면, 입을 삐죽 내민 채 불평하곤 했다. 그리고 A는 늘 그런 나를 비판했다. 그러다 보면 통화가 한 없이 길어지곤 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나도 달랐던 만큼, 25살의 중간을 맞이하는 A와 나의 상황 역시 대조적이었다. A는 방위 산업 업체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법한 스타트업 회사였다. 이제 고작 25살인데, 벌써 경력이 1년 이상 쌓여 있었다.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만 간다던 유명한 대학에 진학한 것도, 휴학 후 이른 나이에 전망이 밝은 스타트업 회사에서 경력을 쌓는 모습도, 무척 대단하게 다가왔다. 누가 보더라도 엘리트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모습이었다. 반면 나는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다.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보겠다며 무턱대고 내린 결정이었다. 취업이라는 걸 마치 사회악처럼 바라보았으며, 회사에 들어가는 순간 내 꿈이 끝난 거라 확신했다. 같은 25살이었지만, 한 명은 일찍부터 일을 배우며 전문가의 길을 차근차근 걸어 나가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취업을 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여러 모로 서로 어긋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 년 만의 재회였지만 대화는 심오해지고 있었다. 취업을 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대학생은 취업을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데, 무조건 비판하기만 하면 어떻게 하냐. A의 말을 곧장 받아쳤다. 사회가 그렇다고 해서 그대로 따라가면 도대체 무엇이 바뀌냐. 그래도 잘못된 건 잘못된 건데, 당장 바꿀 수 없다는 이유로 가만히 있냐. A는 조금도 밀리지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냥 너가 전공이랑 꿈 사이에서 제대로 결정 못해서, 불안해하고 있는 거 아니냐. A의 지적은 살이 베일만큼 날카로웠다. 잠시 고민하다 이내 대답했다. 당연히 내 고민에서 문제를 인식했고, 이걸 바꾸려고 노력하는 거지. 원래 그런 거 아니냐. 서로 감정적으로 반응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하진 않았지만, 가치관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애초에 서로를 설득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누는 대화는 아니었고, 그 탓에 밤이 깊어지도록 토론은 끝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야기를 하다 말고, 여기저기서 하얀 껍질이 일어난 A의 손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토론에 정신이 팔려, 미처 보지 못했던 걸까. 습진 같아 보이진 않았고, 나로서는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야, 근데 손은 왜 그러냐. 아, 이거... 피곤해서 그런 거라는데. 대답하는 A의 얼굴은 더욱 수척해 보였다. 야, 일을 얼마나 하면 손이 그렇게 되냐... 낮에 커피를 마실 때도 A는  바빠 보였고, 오늘도 밤 10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마치는 모습은 굳이 A의 입을 통하지 않더라도 회사 일이 무척 고되고 힘들 거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다. 


   -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 그렇게 열심히 하면 퇴근하고 다른 거 할 힘도 없겠다. 정규직도 아니고...


   취업은 사회악이고, 꿈을 져버리고 선택해야만 하는 ‘회사 생활’은 되도록 열심히 안 하는 게 미덕이라 굳게 믿고 있었던 나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였다. 당시의 내 가치관, 신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말이기도 했다. A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서로간의 간극이 지난 몇 시간의 토론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


   밤늦게 집에 들어 온 A는 충분한 숙면을 취하지 못한 채, 이른 시간에 다시금 집을 나섰다. 휴학 후 늘 10시, 11시에 일어나던 나에게 아침 8시는 미지의 시간에 가까웠다. 나는 비몽사몽으로 A를 따라 나섰다. A와 나의 손에는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이 각각 쥐어져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야근에 이어, 과도한 업무가 기다리는 이른 아침. 그런 직장인을 위로할 수 있는 건 고작 2천 원도 안 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뿐이다. 이내 갈림길이 나타났다. A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팔자 좋은 휴학생은 오늘도 여기저기 카페와 서점, 공원 등을 거닐며 여행의 남은 일정을 만끽할 것이고, 고단한 직장인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회사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왠지 이번에 헤어지면 A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할 것만 같은 확신이 들었다. A의 수척해진 얼굴과 껍질이 벗겨져 엉망이 된 손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나도 언젠가 직장인이 되며, 그 고단함과 치열함을 느끼게 될까. 그때 다시 A를 만나게 되면, 또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점점 멀어져 가는 A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침 8시의 공기는 유난히도 차갑게 느껴졌다.


p.s

5년 전 어느 날 아침의 낯선 공기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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