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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오 Mar 07. 2020

두둑한 통장 잔고는 어느새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삶을 기준으로 타인의 삶을 함부로 평가하고 있었다

   계모임이라는 단어가 우연히 나왔고, 나는 그 단어를 덥썩 집어들었다. 1년에 많아야 두세 번 보는 사이였지만, 학창 시절을 함께 공유한 사이였기에 나름 끈끈한 관계였다. 다만 나이를 먹어가고 사는 지역도 달라지며 다 같이 모이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어느새 서른을 코앞에 둔 시점, 조금이나마 더 자주 모이고, 가까운 곳이라도 놀러 가려면 나름의 장치가 필요했다. 그렇기에 누군가 꺼낸 계모임이라는 단어에 적극 동의하며, 당장이라도 추진해야 할 것처럼 외쳐댔다.


   -아직 취업 안 한 애들도 많으니까, 다음에 하는 게 낫지 않겠나.


   처음으로 반대 의견을 낸 건 B였다. B는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였다. 붙임성 있는 성격 덕분에 쉽게 다가갈 수 있었고, 무려 20여 년을 큰 다툼 없이 가깝게 지냈다. B는 일찌감치 일을 시작했고, 심지어 군 제대 후엔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일에 집중했다. 우리 중 사회생활을 가장 먼저 시작했다. 그러다 지금은 늦은 나이에 다시 대학에 입학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또래보다 일찍 돈을 벌었는데, 그들이 돈을 벌 때쯤 다시 공부를 시작한 셈이다.


   B는 우리 모임에서 중심에 가까운 역할을 맡고 있었다. 각자 다른 지역으로 대학을 가거나 취업을 한 상황에서도 명절이나 연말, 연초면 술자리를 만들었고, 거의 모든 모임에 참석했다. 그런 B가 낸 반대의견은 꽤나 묵직하게 다가왔다.


   나는 곧장 반대 논리를 펼쳤다. 그래도 한 달에 5천 원, 만 원 정도는 괜찮지 않냐. 술 한 번 안 먹으면 되는 건데. 조금씩이라도 돈을 모아야 1년에 한두 번은 다 모이고, 여기저기 놀러 다닐 수도 있지 않겠냐. 이내 B의 반박이 이어졌다. 직장인한테는 얼마 안 되는 돈이라도, 취준생한테는 안 그럴 수도 있잖아. 야, 그래도 한 달에 5천 원을 못 내냐. 오늘 술자리도 한 사람당 2만 원은 나오겠는데. 이 말을 시작으로, 서로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술자리는 이내 B와 나의 대화로 가득 채워졌다.


   너가 돈 없는 사람의 심정을 아냐는 B의 말에, 순간 욱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장난하나. 나도 통장에 만 원이 없어서, 같이 카페 온 후배가 5천 원짜리 넘는 메뉴 고를까 봐 걱정했던 적도 있다. 그것도 불과 2년 전에. 그때 내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아나. 공과금 석 달이 밀리니까 전기랑 가스 끊긴다고 문자도 오더라. 거기다 월세도 두 달이나 밀려 있었는데. 왜 가난을 비교하노. 니만 힘들어 본 줄 아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의견과 의견의 대립이 아닌, 감정과 감정의 대립, 더 나아가 자존심과 자존심의 대립으로 이어지자 사소한 말다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같이 있던 친구들이 우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얼른 계산하고 나가자며 급하게 자리를 정리했지만, B와 나의 다툼은 좀처럼 마무리되지 않았다. 한 달에 5천 원 모아서 계모임 하자는 게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싸울 얘기가. B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나를 쏘아보던 눈에서는 이윽고 눈물 몇 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니는 돈 없어서 굶어 봤나. 고작 몇천 원이 없어서 굶어봤냐고. 아무리 그래도 니가 그런 얘기 하면 안 되지. 니가... 순간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반박할 말을 떠올리며 바쁘게 돌아가던 머릿속은 작동을 멈췄고, 날카로운 언어를 쏟아 내던 입은 굳게 닫히고 말았다.


   *


   스물아홉. 하나둘 취업해서 각자 밥벌이를 하고 있을 시기.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계속 있음에도 B는 대학 입학을 결정했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지만, B를 기다리고 있는 건 산뜻한 캠퍼스 생활이 아닌 현실적인 문제였다. 방세며 생활비, 교재비 등을 감당하는 게 쉽지 않았다. 거기다 높은 학비는 B의 어깨를 더욱 짓눌렀다. 여느 20대 초반처럼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 B는 언제까지 모아놓은 돈을 까먹을 순 없어 다시금 알바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삶의 퍽퍽함은 나아지지 않았다.


   B의 이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한 달에 고작 오천 원’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로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 셈이다. 돈 없어서 굶어봤냐는, 감정에 복받친 B의 목소리는 과거가 아닌 현재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너가 그러면 안 된다는 그 한 마디는 무척 아프게 다가왔다. 나라는 사람이 통째로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돈이 없을 때 받았던 도움은 까맣게 잊은 채, 이제 돈을 벌게 되니 상대방을 함부로 재단하고 있었다. 기나긴 여정에서 각자 다른 시기를 지나고 있음에도, 내가 머물고 있는 삶을 기준으로 타인의 삶을 평가하고 있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과 만든 계모임에 한 달에 삼만 원씩 나가는 게 너무 부담된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 하고 다니면서, ‘고작 오천 원’이라는 단어를 직장에 다니지 않는 B에게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B가 돈을 벌 때, 나는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단어였다.


   *


   결국 B는 자리를 박차고 술집을 나갔다. 뒤따라 나가려 했지만, 발걸음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B가 떠난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렇게 궁핍하고 찌질했던 놈이 이제 직장인이 되었다고, 통장에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온다고, 꼴에 책 내고 강연하면서 멋있어 보이는 일을 하고 다닌다고, 오만이라는 감정이 스멀스멀 나의 머릿속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 감정은 질 나쁜 언어가 되어 B를 푹 찔렀다. 손목을 두르고 있던 시계의 삐까번쩍함과 더 이상 월세가 밀리거나 공과금을 내지 못해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되는 지갑의 두툼함은 유난히도 비루하고 남루하게 다가왔다. 나의 오만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무언가를 건드렸고, 그로 인해 드러난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의 흉한 몰골이었다. 이제까지 나에게 안정감을 주던 두둑한 통장 잔고는, 어느새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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