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2021. 11. 23 ~2021. 12. 22일까지 제주 한 달 살이
코로나19로 거의 집에서 생활하고 강의까지 줌으로 하다 보니 특별히 밖에 나갈 일이 없다.
일주일에 3,4일은 큰아들도 꼼짝 않고 집 안에서만 생활한다. 2년 이상을 이렇게 지내다 보니 감정은 탈색되고 내 안에서 우툴두툴한 무늬들이 자꾸 퍼져나간다.
글감도 떠오르지 않고,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건지 억지로 만들고 있는 건지 회의적이다. 뒤적거리는 것도 무의미하고, 읽는 일도 몰입이 되지 않는다. 아들 밥해주고 설거지하고, 청소하는 일도 불퉁해진다. 그래도 처지면 안 되니까 수영도 하고 나가서 걷기도 하면서 늘어진 맥을 올려보려고 애쓴다. 눈을 돌리면 읽어야 할 책들은 책상에 쌓여 있고, 써야 되는 글은 머리 속에서 어수선하게 괴어있고... 읽는 것, 쓰는 것, 밥해주는 것들의 일상이 버거운 일처럼 느껴지니 마음의 평화와 안정이 산산조각나 버린다.
안 되겠다. 환경을 바꾸자. 고여있는 것 같은 공기의 숨통을 뚫어보자. 번뜩 이런 생각이 들자 종일 인터넷을 뒤졌다. 처음엔 내가 좋아하는 강원도 정선이나 영월로 가고자 그곳을 검색하고 한 달 살이에 맞는 숙소를 찾아 보았다. 생각보다 밥해 먹을 수 있는 싱크대를 갖춘 숙소가 없었다. 뒤적이다보니 겨울을 지내기에는 적당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산책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는데 그 지역은 눈이 많이 오고 유난히 추운 곳이라 거의 방에만 틀어 박혀 있어야 하는 게 아닌지. 마음을 바꾸어 따뜻한 제주로 시선을 옮겼다. 제주는 한 달 살이의 숙소들이 흘러넘쳤다. 이렇게 많나? 싶을 정도로 놀라웠다. 괜찮다 싶어 찜해 놓고 한 바퀴 더 돌고 오면 이미 내가 원하는 날짜에 누군가 예약해 버렸다. 두 군데를 놓치고 보니 더 이상 망설이면 안 됐다. 꼼꼼하게 살펴보고 찜해 놓은 숙소 중 하나를 예약했다. 그러고 나서 비행기 표도 예약해 놓으니 묵은 마음 한 꺼풀이 벗겨지는 듯 했다.
스스로 밥 한 번 지어 본 적 없는 큰아들을 두고 외부에서 한 달을 살고 들어오려니 슬몃 미안해져 말할 기회를 엿봤다.
- 엄마랑 장 보러 갈래?
아들이 따라나섰다.
- 이건 양념된 불고기니까 먹을 만큼씩 덜어 볶을 수 있지? 양파와 마늘 좀 더 넣고.
- 엄마가 해 줄 거면서 왜?
아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 음, 사실은..... 엄마, 제주도로 한 달 살이하러 갈 거야.
- 응?...... 왜?
- 그동안 쓴 글도 정리하고, 새로운 글도 써야 하고.... 지금은 엄마에게 다른 환경이 필요해.
아들은 순간 당혹스러워했다.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다. 나 또한 복잡하고 모호한 감정들로 막연했으니까.
'네 나이 서른한 살. 이미 독립했어야 하는 성인이잖아? 때로는 서로의 형식적인 웃음이 답답할 때가 많았어. 잠시 떨어져 혼자 무소의 뿔처럼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마음이 반사될 것 같아 아들의 눈을 피했다. 아들은 이미 내 마음을 판독이나 한 것처럼 피식 웃더니, 금세 평정심으로 나를 응원했다.
- 알았어, 엄마. 그렇게 해. 나도 혼자 살아보지 뭐.
- 그래, 너도 혼자서 살림 좀 해 봐. 필요한 것 있어?
뭐야? 이 애도 사는 것에 대한 허기증이 있었나? 말이 끝나자마자 이것저것 카트에 담기 시작한다.
한 달은 족히 먹고도 남을 양식을 담는데......전쟁났니? 으이구, 언제 철 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