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제주로, 어느 날

제주도 게하 스텝 생활 시작

by 혜시

일단 무엇이라도 써내려가야 한다. 적어도 무언가를 쓸 때만큼은, 쉴 새 없이 밀려드는 공허감과 모멸감에서 벗어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혜인은 29살 아홉수였다. 그녀는 실패한 20대를 보냈다. 야심차게 시작한 고시 공부는 매일 부족함을 느끼게 했고 텅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부지런히 채우고 채웠으나 역부족이었다. 누군가는 합격하고 누군가는 떨어진다는 것.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듯이 시험은 철저히 결과로 그 사람의 노력을 재평가했다.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탈락자라는 주어진 역할을 받아들고, 볼멘소리하는 어린아이처럼 징징댈 수는 없었다. 이건 제비뽑기도, 선착순도 아니었다. 모든 비난의 화살은 온전히 자신에게 돌아갔다.


노력한다는 것, 열심히 한다는 것과 성공한다는 것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 혜인은 오랜기간 인정받기 위해 살아왔다. 누구나 타인의 인정을 바라며 살아간다. 혜인 역시 그래왔고, 종종 그녀의 열심으로 그 인정을 얻어내었다. 물고기에게 조금씩 입질을 주듯이, 때때로 주어지는 작은 성공들 앞에서 큰 안심과 위안을 얻은 것이다. 그녀는 삶의 정답을 찾고 싶었다. 정답, 이라는 동그라미쳐진 문제들 앞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삶이 캄캄한 동굴 속처럼 시리고 무서웠기에, 확실해보이는 무언가를 찾아 해메었다. 혜인은 그것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그녀에게 ‘선’이었고, 정답이었다. 완벽한 동그라미는 그녀에겐 안전지대를 의미했다.


혜인은 열심히 했다. ‘열심히 하다’의 정의대로 살았다. 잠을 줄였고, 먹지 않았으며 남들보다 일찍 도서관에 나와 가장 늦게 집에 갔다. 집중력을 더 높이고자 갖은 방법을 동원했고, 어딘가 강박적이고 가학적인 잣대를 스스로 들이밀었다. 쉬는 것을 죄악시하고 모든 관계를 끊어냈다. 친구들의 연락을 거절하는 것조차 시간 아까워서 나중에는 아예 메세지를 읽지 않았다. 혜인은 부모님도 만나지 않았고, 공부 이외에 다른 것들을 하는 시간을 기피하면서 그런 자신에게 은근한 뿌듯함과 남들과의 비교로 우월감을 느꼈다. 나만큼 ‘열심히 하는’ 사람 있어? 그리고는, 최후의 승자는 자신이 될 것이라 굳게 믿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노력은 종종 아쉬운 결과를 가져다주긴 했어도 끈질김 앞에서는 성취를 얻어낸 전적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매우 꾸준했고, 성실했다. 매일 6시에 일어나 국제법 조문을 외우며 도서관에 가장 일찍 와서, 가장 늦게 집에 갔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열람실을 오고 갈 때 그녀는 무척 피곤했지만 쾌감과 안도감을 느꼈다.


동시에 혜인은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조소를 보냈다. ‘저렇게 열심히 안 할 거면 왜 고시를 하지?’ 라는 생각을 속에 품으며, ‘저런 사람들이 있어야 내가 합격하지, 고맙네’라는 교만하고 이기적인 생각을 품었다. 기둥을 타고 올라가는 애벌레 무리처럼, 그녀는 위의 애벌레에 대한 열등감과 밑의 애벌레에 대한 우월감으로 살아갔다. 그리고 한 번, 두 번, 이윽고 세 번째 탈락의 고배를 마시자 드디어 이 애벌레는, 누구보다 열심히 기둥에 매달려있던 애벌레는 힘이 풀려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이제서야 모든 열심이 허탈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 고시를 시작한 이유는 장대했고 결연했다. 언제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라’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었다. 또래 아이들이 유치해보였고, 그녀의 정신세계는 아이의 몸에 갖혀있기에 지나치게 성숙해서 갑갑하다고 느꼈다. 어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떠앉는 어른이 되면, 정신에 걸맞는 육체를 소유하게 되면 이 세상을 호령할 것이라고 믿었다. 아주 빛나는, 눈부신 어른이 되어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지금이 그녀의 현재였다. 시간 여행을 한 것처럼 눈빛이 빛나던 9살 어린 소녀는 패색이 짙은 29살의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초라했고, 아무하고도 진실된 눈맞춤을 할 수 없었다. 눈만 감으면 어릴 때의 마음으로 여전히 돌아갈 수 있었다. 흔히 할머니들이 마음만은 소녀야, 라고 하는 것처럼 마음은 여전히 그때의 자신감이 생생했다. 그러나 스러지고 깨어져 빛나던 영감의 진주는 베트남산 가짜 진주, 플라스틱 진주에 불과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열심히’ 한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무엇을’, ‘어떻게’, ‘왜’ 열심히 하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었다. 혜인은 이 셋 중에 잘못된 것이 무엇이었을지 고민했다. 지난 3년 간의 노력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하면, 그 허무감에 잡아먹힐 것만 같았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바다를 사랑했다. 어린 시절 가족들과 제주도로 떠난 여행에서 한참을 튜브에 두 팔을 걸치고 바다 너머 수평선을 바라본 기억이 동그란 병 안에 담겨 있었다. 수평선을 멀리 멀리 바라보다가. 잠수해서 또 바다 밑을 바라보고, 흐릿한 경계선으로 존재하는 두 발을 바라본다. 왜곡되어 어딘가 물렁해보이는 자신의 다리와 발이 천천히 움직인다. 미역과 물고기가 있다. 그리고 다시 수평선을 바라본다. 바다 위에서 혜인은 지구라는 행성 위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게 느껴졌다. 인간은 종종, 아니 대부분 자연을 소유한 것처럼 마구 이용하고 필요에 따라 쓰다 버리지만, 사실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이 바다 위에 떠있으면 온 세포로 느껴졌다. 미소는 바다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 안아주고, 품어주는 바다 속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동그라미가 아닌 곳에서 무언갈 노력하지 않아도 존재를 인정받는, 아니 포용받는 자연 속에서 행복을 느꼈다. 세상에서 혜인은 동그라미의 갯수나 크기로 쓸모를 증명해야 했다. 자신의 먹고 마심이 무리의 양식을 축내기에 정당성을 부여받도록, 계속 소속되고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아 보호의 우선순위가 되기 위해 그녀는 더 미소짓고 상냥하며 열심히 노력해야 했다. 인정받아야 했다. 그러나 바다는 혜인에게 그러한 쓸모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시험에 떨어진 그녀가 향한 곳은 ‘제주’였다. 그곳에 가면 막연히 어릴 때 느낀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돈이 없는 고시생, 이젠 고시생은 아니지만 여전히 돈이 없는 그녀는 게스트하우스 스텝으로 지원했고, 다행히 가장 가고 싶었던 곳에서 오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