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등단하기
혜인은 사람을 참 좋아했다. 이건 이유를 명명할 수 없는 본능이었다. 어쩌면 무리 속에서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인간의 원초적 욕망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제주로 떠난 이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녀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 어렵지 않았고 특히 제주에서는 더욱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그녀의 과거와 나이, 직업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었다. 또한, 여행자로서 만난 이들은 그러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지 않기도 했다. 그 사람들에게는 그 순간의 모습이 아는 전부가 될 것이며 그 사실이 혜인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그녀는 미소짓기를 잘했고 밝게 웃으며 상대를 기분 좋게 하는 말들을 하는 것에 어렵지 않았다. 타인의 기분을 세심하게 알아챘고, 종종 유머러스한 말로 타인의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자신의 농담에 타인이 웃을 때 묘한 뿌듯함을 느꼈다.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서 그녀는 커피를 내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수집하는 일이 퍽 즐거웠다. 그녀의 오래된 습관으로 말할 것 같으면, 어느 정도의 친밀함을 쌓은 이후에 모든 관계에 약간의 경계심을 갖기 시작하여 거리를 둔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겁이 많았다. 어느 정도 이상 가까워지면 서로 상처를 주는 순간이 오고, 실망을 동반한 그 순간을 싫어했다. 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이 무서웠다. 그래서 애초에 서운함을 느낄 만큼의 관계를 쌓지 않으려고 했다.
게스트하우스 스텝으로 일하면서 손님들에게 인생에 대해 종종 물었다. 주로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든지, 다들 어떻게 버티면서 사는지와 같은 질문이었다. 어떤 대답도 혜인에게 느낌표를 주진 못했다. 그저 버티고, 견디고, 수긍하는 삶들이었다. 혜인은 뭔가 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 여전히 기대했다. 인생이 정말 눈에 보이는 이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정말이지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젊은이들은 먹고 마시는 것, 다른 이로 하여금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 더욱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혜인도 그러한 것들의 즐거움을 잘 알았다. 예쁜 옷을 입고, 꾸민 겉모습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호의를 얻기 쉬웠고 그건 지름길처럼 느껴졌다. 삶에 관성을 지닌 나이가 든 어른들은 어딘가 체념적인 어투였다. 대단한 것을 기대하지 않고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혜인은 삶의 구성물이 하루하루의 꾸준함이 된다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그러한 시간들이 쌓여 분명 어떤 모양을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계획한 설계도대로는 결코 인생이 흘러가지 않았다. 마치 모래성처럼, 기껏 쌓아놓으면 파도가 쳐 모든 것을 허물어버리는 기분이었다. 그리하여 몇 번의 모래성쌓기를 시도하다가, 끊이지 않고 찾아오는 파도에 결국은 모래성 쌓기를 포기해버리고야 마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제 '외교관 시험'이라는 모래성이 무너지고, '작가'라는 새로운 모래성 쌓기에 돌입했다. 그러나 아직은 어떡해야 파도에서 이 모래성이 허물어지지 않을지 고심하는 중이다. 어느 곳에, 어떤 재료로, 또 어떤 모양으로 이 모래성을 쌓아야 할까? 파도를 피할 순 없지만, 쌓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모래성은 언젠가 완성될 것이고, 이 모래성이 누군가에게 찰나의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