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2.
퇴직한 지 2개월째다. 명함도 직함이 없다. 말하자면 지금 나는 무직자다.
매일 한 시간쯤 걷는다.
특별한 목적지는 없다. 운동 삼아, 혹은 그냥 집 안에만 있기가 뭣해서. 신발을 꿰고 나서면 동네 길이 펼쳐지고, 발이 알아서 움직인다.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꽤 많은 생각을 한다. 아니, 생각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따져보면 이렇다.
처음 10분은 무슨 생각을 할까, 를 생각한다. 오늘은 좀 깊은 것을 생각해봐야지. 그동안 바빠서 못 했던 것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남은 삶의 의미 같은 것들. 그렇게 마음을 단단히 먹는 데 10분이 간다.
다음 20분은 오늘 저녁에 뭘 먹을까를 생각한다. 어제는 국이 좀 짰으니까 오늘은 담백한 게 낫겠다. 된장찌개? 아니면 그냥 두부조림에 계란말이? 냉장고에 뭐가 있더라. 어, 그러고 보니 두부를 안 샀는데. 돌아가는 길에 마트를 들러야겠다. 이런 생각이 20분을 채운다.
그다음 20분은 그런 생각을 한 나를 질책한다. 이게 뭔가. 수십 년을 달려온 사람이, 이제 겨우 시간이 생겼는데, 고작 저녁 메뉴나 궁리하고 있다니. 좀 더 생산적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나. 책을 읽든지, 뭔가를 배우든지, 적어도 사람 구실을 해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자책하는 데 또 20분이 사라진다.
그리고 마지막 10분, 겨우 10분 남짓에야 비로소 뭔가 쓸 만한 생각이 스친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오래 미뤄온 것들을 슬슬 시작해볼까. 저 산을 한번 올라가 볼까. 이런 생각들이, 집 앞 골목에 거의 다 왔을 때쯤 피어오른다.
집에 들어서면서 생각했다.
내일부터는 두 시간을 걸어야겠다고.
우습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꽤 합리적인 결론이다. 쓸데없는 생각에 20분, 자책에 20분을 어차피 쓸 거라면 — 차라리 두 배를 걸어서 가치 있는 생각의 몫을 늘리면 된다. 비율은 그대로여도 절대량이 늘어난다. 이 정도면 꽤 생산적인 발상 아닌가.
아니면, 어쩌면 이런 생각 자체가 또 쓸데없는 생각일 수도 있고.
그런데 걷다 보니 조금씩 알 것도 같다.
저녁 메뉴를 궁리하는 것이 그렇게 부끄러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수십 년을 마감과 보고서와 회의 속에서 살았다. 밥 한 끼 먹으면서도 머릿속이 내일 일로 가득했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제 걸으면서 된장찌개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어떻게 보면 꽤 사람다운 하루의 모습이 아닐까.
자책도 마찬가지다. 더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없으면 자책도 없다. 20분짜리 질책은, 아직 나 자신에게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퇴직한 지 2개월. 나는 아직 이 시간의 사용법을 배우는 중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사람이 좁은 골목길에 막 들어선 것처럼, 속도 감각도, 방향 감각도, 조금씩 다시 익혀가는 중이다.
(202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