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서비스 Vs. 유료서비스

강팀장, 스타트업 대표로 살아남기 (15)

by 알록

대산출판사의 계약 파기는 아쉬운 시작이었다. 나는 무책임하게 무너질 수 없었다. 내 주머니 속 퇴직금은 매달 정해진 날짜에 팀원들의 급여로 빠져나가고 있었고, 88%라는 지분은 나에게 '포기할 권리'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한 번의 거절로 모델을 바꾸는 건 성급하다."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구두끈을 조였다. 하지만 시장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냉소적이고, 동시에 다른 곳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두 번째로 찾아간 '지혜의 숲'은 더 참혹했다. 인문학 전문 출판사인 그곳의 편집장은 리포트를 훑어보더니 불쾌하다는 듯 안경을 벗어 던졌다.


"강 대표라고 했나? 책은 영혼의 산물이야. 어디 감히 차가운 기계 덩어리가 독자의 감동을 숫자로 재단하려고 들어? 85%가 재미있다고 하면 그게 좋은 책인가? 1%의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게 진짜 책이지. 이런 식의 접근은 출판의 본질을 훼손하는 거야. 당장 나가게."


세번째로 만난 사람은 트렌디한 에세이를 주로 내는 '북클라우드'의 김 대표였다. 그는 격식 차린 정장 대신 편안한 맨투맨 차림으로 소파에 깊숙이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내가 열정적으로 리포트의 가치를 설명하는 동안에도 그는 연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건들건들한 태도를 유지했다.


"강 대표, 다 좋은데 말이야. 출판 바닥에서 누가 데이터에 돈을 써? 우린 그냥 우리 편집자들 감으로 가. 그게 더 싸고 빨라."


그는 내가 내민 리포트를 대충 훑어보더니 탁자 위로 툭 던졌다.


"근데 이거, 독자들 반응은 꽤 생생하네? 이거 혹시 무료로 풀 생각은 없어? 무료라면 내가 우리 회사 원고 다 던져줄 수 있는데. 무료로 확 풀어버려. 그럼 나 같은 대표들이 알아서 찾아오지 않겠어? 돈 받을 생각부터 하지 말고 판부터 키워봐. 요즘 세상에 누가 처음부터 돈 내고 베타 서비스를 써?"


그의 말은 조언이라기보다 조롱에 가까웠다. 넥스트데이터에서 팀장으로 있을 땐 상상도 못 했던 취급이었다.


'무료로 풀라니, 우리 팀원들의 밤샘 노동을 공짜로 기부하라는 건가?' 가슴 한구석에서 울컥 화가 치밀었지만, 그는 내 표정엔 관심도 없다는 듯 하품을 하며 다음 미팅이 있다며 나를 내보냈다.


그 뒤로도 몇 일동안 나는 다섯 명의 출판사 대표를 더 만나 제안을 했으나 레퍼런스, 성공한 사례를 먼저 만들고 나서 그걸 보고 다시 이야기하자는 비슷한 결론이었다.


매일 사무실로 돌아오면 J와 M, Sunny의 눈초리를 피하기 바빴다. "오늘 미팅은 어땠나요?"라는 질문에 "검토해 보겠대"라는 비겁한 거짓말을 남기고 나는 내 자리에 박혀 모니터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어느덧 목요일이다. 모두가 퇴근한 고요한 오피스텔에서 나는 우리 플랫폼의 관리자 페이지를 열었다. 출판사는 외면했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놓쳤던 거대한 에너지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나는 유료 리포트용 통계 데이터가 아닌, 리뷰어들이 남긴 '비공개 메시지'와 '커뮤니티 게시글'을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다


ID: 책벌레99 "작가님, 이 부분에서 주인공의 심리가 너무 이해돼서 울었어요. 제가 아직 나오지도 않은 책을 미리 읽고 이렇게 의견을 남길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아요. MiriBook 덕분에 제가 정말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제 의견이 책에 반영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거예요."

ID: 새벽독서가 "매일 밤 퇴근하고 MiriBook에 올라온 원고를 읽는 게 유일한 낙입니다. 서점에서 완성된 책을 사는 것보다,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하는 이 기분이 너무 짜릿해요. 이런 서비스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 메시지. 그리고 진심 어린 피드백들. 그들은 우리가 시키지 않아도 원고의 사소한 오타를 잡아내고, 캐릭터의 개연성에 대해 자기들끼리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들에게 MiriBook은 분석 툴이 아니라,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인하고 작가와 연결되는 '광장'이었다.


그렇다. 우리가 공략해야 할 대상은 돈줄을 쥐고 있는 보수적인 출판사가 아니었다. 내용에 목말라 있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열광적인 독자들이었다. 북클라우드 김 대표의 '무료로 풀어봐'라는 건들건들한 조언과, 리뷰어들의 '이 서비스가 너무 소중하다'는 간절한 외침이 내 머릿속에서 하나의 점으로 만났다.


'출판사에게 구걸하며 리포트를 파는 하청업체가 아니라, 수만 명의 독자 권력을 쥐고 있는 플랫폼이 된다면? 그래서 출판사가 우리 데이터 없이는 책을 내는 게 두렵게 만든다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전율이 일었다. 이것은 단순한 사업 모델의 수정이 아니었다. 드림소프트의 존재 이유를 통째로 바꾸는 위대한 후퇴이자, 새로운 진격이었다.


다음 날 아침, 9시. 나는 평소보다 더 단단한 표정으로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퉁퉁 부은 눈으로 출근하는 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나는 보드 중앙에 크게 'FREE' 라고 적었다.


"애들아, 나 며칠 동안 대산, 북클라우드, 지혜의 숲... 10개 출판사.. 대표를 만났잖아. 결론적으로 그들은 우리에게 10원 한 장 줄 생각이 없어. 실제로 해본 결과를 먼저 보자고 하는데 그냥 하는 소리야. 우리가 아무리 정교한 리포트를 가져가도 그들에겐 그저 '그저그런 외부 데이터'일 뿐이야."


사무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J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나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 결정했어. 우리 이제 출판사한테 돈 안 받아. 이 서비스를 완전히 무료로 푼다. 누구나 원고를 읽고, 누구나 작가에게 피드백을 주는 '독자 놀이터'를 만들 거야. 출판사가 우리에게 의뢰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독자들의 데이터를 쥐고 출판사를 선택하는 구조로 간다."


"무료요? 대표님, 그럼 우리 수익은요? 퇴직금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잖아요." M이 당혹스러운 듯 물었다.


"북클라우드 대표가 그러더라. 무료라면 자기네 원고 다 던져주겠다고. 그래, 차라리 그 원고들을 우리 플랫폼의 '미끼'로 쓰자. 유료 리포트 장사하느라 6개월 버틸 에너지로, 3개월 안에 유저 1만 명을 모으는 데 올인하자. 1만 명의 데이터가 쌓이면, 그때는 출판사들이 우리 데이터를 사러 줄을 서게 될 거야. 구걸하는 을이 아니라, 시장을 흔드는 갑이 되자는 거야. 나 믿고 딱 3개월만 이 도박에 동참해 줘."


사무실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하지만 그 긴장감은 실패에서 오는 무력감이 아니었다. 다시 한번 제대로 싸워볼 수 있다는 희망의 열기였다. 나는 지우개를 들어 화이트보드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3,000,000원'이라는 숫자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대신 그 자리에 '10,000 Members'라고 적었다.




[경영 수업 제15강] 유료 Vs. 무료


강 대표와 드림소프트가 유료 B2B를 버리고 무료 B2C로 돌아선 것은 감정적인 선택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냉정한 데이터와 시장의 신호에 근거한 결정이어야 합니다.


ㅇ유료와 무료를 결정하는 4가지 참고 기준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항목은 '가치'일 것입니다. 제 경우, 비싸더라도 유튜브나 넷플릭스의 광고 없는 요금제를 쓸수 있지만 티빙은 (무료가 없어서) 가장 저렴한 광고요금제를 쓰는 이유입니다.


반면 회사가 무료로 언제까지 성장할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시장의 요구, 투자자의 압박 등 내외부 환경의 변화로 인해 유료 전환을 할때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무료고객은 무료고객일 뿐입니다. 과거 프리첼 유료화 전환할때 네이버 카페로 거의 모두 옮긴 사례에서 보듯 고객은 당연히 이기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요금 정책 선택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부디 강 대표의 선택이 옳았기를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ㅇ강 대표의 무료화 결정 기준

Friction(마찰): 유료 결제라는 벽이 우리 서비스의 성장을 막고 있는가? (YES. 출판사의 보수성이 성장을 가로막음.)

Network Effect(네트워크 효과):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서비스의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가? (YES. 독자가 많을수록 리포트의 신뢰도가 상승함.)

Monetization(수익화) 지연: 당장 돈을 못 벌어도 나중에 '시장 지배력'으로 회수 가능한가? (YES. 독자 데이터를 쥐면 광고, 출판 중개 등으로 확장 가능.)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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