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뭐 가정부야? 왜 나만 힘든 거 같고 손해 같지?
결혼하고 나서 남편이 (나쁘게) 변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불현듯 깨달았다.
결혼하고 그가 변한 게 아니라 내가 불행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나도, 남편도 원래 집에서 하던 대로 자기 성향이 극단적으로 뚜렷해진 거지 딱히 본질이 변화한 건 아니었다.
연애 때 종종 남편과 우리 집 근처 감자탕을 먹으러 갔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혼자 친정에 가서 그때 그 감자탕을 먹는데 웬걸 너무 먹기가 어려웠다.
그때서야 나는 항상 남편이 발라주는 고기를 먹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그게 당연했다.
집에서 대게를 먹을 때 남편이 손질해서 가지런히 잘라놓은 대게를 냠냠 손쉽게 먹는다.
결혼하고 나서 남편이 변한 게 아니라 내가 서운한 면만 크게 본 거구나 비로소 알았다.
감자탕 뼈 골라주던 그 사람이 결국 대게 껍질 골라주는 이 사람이구나…(!)
남편은 연애 때도 다정다감하게 예쁜 말하거나 여자의 기분을 잘 알고 센스가 넘치는 성격이 아니었다.
깜짝 선물, 이벤트 그런 게 다 뭐람 그저 순박하고 무던하고 처음부터 아저씨 같았다.
결혼하고 그게 극단적으로 서운해져서 뭐라 하며 많이 싸웠다.
애초에 그에게 없던 것들을 끌어내려는 내가 문제였던 걸까…? 늘 서운한 나에게 남편은 굉장히 힘들어했다.
내가 생각을 조금 바꿔보니 상황이 달라 보였다.
같이 쉬는 날 남편이 약속이 있었다.
약속이 늘 많은 사람이다. 난 늘 그게 불만이었다.
왜 그렇게 나가고 친구를 만나고 넌 나랑 보내는 시간은 소중하지 않아?
쭉 그렇게 생각해 왔다.
나가면서 남편이 점심은 약속이 있으니 저녁은 같이 먹자 그때 장보고 오자라고 말했다.
생각해 보니 남편은 피곤해 죽으려고 해도 어쨌든 꼬박꼬박 나랑 시간을 보내려 하고 있었다.
자기는 늘 노력하고 있다는 말, 싸울 때마다 그가 억울해하며 하는 말이었다.
(물론 그땐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난 남편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 다 한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고도 친구랑 이렇게 여행을 자주 가고, 약속도 많고, 대체 뭐를 노력한다는 걸까
그런데 여행 가서도 늘 내걸 제일 많이 사 오고, 연락도 열심히 하고, 술약속도 최대한 빨리 들어오고, 적어도 한 끼는 나랑 먹기 위해 애쓴다는 걸 몰랐다.
아니 알면서도 미운 마음에 노력이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또 다른 평일에도 친구 약속이 있다고 해서 평소 같음 모질게 쏘아붙이고 화냈을 텐데 "나도 오빠랑 보내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소중한데 저녁은 퇴근한 나랑 먹고 친구랑 점심에 만나면 안 돼?"라고 하자 순순히 그러겠다고 했다.
남편이 평일 쉬는 날에 출근하는 나를 차로 1시간 정도 걸려서 출근시켜 준 적이 있다.
덕분에 얘기도 하면서 쾌적하게 출근했다.
퇴근길에는 평소처럼 대중교통을 타고 퇴근했다.
나는 늘 덥고, 피곤한데 사람 많고, 자리도 없고 못 앉아서 가는 게 짜증이 났다.
그날은 내가 득도를 한 날이었는지 이상하게 짜증스럽지 않았다.
남편에게 오늘 태워준 덕에 아침을 편하게 와서 그런가 퇴근길이 평소와 달리 그리 피곤하지 않다. 고맙다. 라고 문자를 보냈다.
고마운 그의 수고로움을 말로 표현했을 뿐인데 남편은 내 말에 크게 기뻐했다.
그 이후로도 남편은 쉬는 날에 본인 잠을 포기하고 잘 태워준다.
딩 뭔가 머리를 맞은 기분이다.
내가 누르고 세게 말할수록 남편은 더 어긋난다.
내 기분을 비꼬지 않고 솔직하게 얘기하면 남편은 들어주고 보통은 날 위해준다.
내가 더 많이 해 내가 더 힘들어 불만 가득 재고 따진 건 나였다.
문득 남편에게 너무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결혼하고 변화하는 혼란함 속에서 좋은 점 말고 다른 모든 걸 너무 많이 보게 된 탓일까 그의 장점보다 단점이 두드러지게 계속 보였다.
결혼 생활동안 남편이 나를 불행하게 했다고 생각했지 이런 나의 생각이 나를 불행하고 있다는 걸 몰랐다.
갑자기 이걸 왜 깨달았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좋아해서 결혼했던 그 사람의 장점을 잃어버리지 않게 지켜주는 것도 결국엔 내 몫이었다.
배우자가 결혼하고 변했다. 사라졌다 생각했지만 내가 좋아서 결혼한 사람은 언제나 내 옆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