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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맥스 Feb 26. 2024

남자, 51세에 홈베이킹을 시작하다

빵 만들고 싶은 남자

올드맨은 슬프다

이제 50대다. 올해로 정확히는 쉰한 살. 지천명의 나이다.

내 운명이 무엇인지, 소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나이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여기저기 아픈 곳이 늘어난다는 것만 알겠다.

작년에는 갑자기 전립선염에 걸렸다. 자다가 몇 번을 깨서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비뇨기과 선생님은 말하길 '이 나이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증상입니다' 슬펐다.

아픈 것도 슬펐지만 이제 나도 올드맨이고.. 처량하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 초부터 책이 잘 안 보여서 안과에 갔더니 노안이란다.

불편했다. 안경을 새로 맞추고 일상용, 책 작업용 구분해서 안경을 만들었다.

핸드폰을 보려면 이제는 손이 안경부터 벗긴다.

노안으로 한차례 타격을 받았는데 전립선염까지 겹치니 확실했다.

나도 이제 늙었다.

아무리 동안이라고 한들, 대학원생 같다고 한들 다 부질없는 얘기다.

내 몸이 말하고 있다. 너는 늙었어.......

늙은 개는 어디에도 쓸데가 없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요새 머릿수가 부쩍 빠진 거 같다.

그런데 천명은 여전히 아리송하다.

그저 월급쟁이로 20년을 살았을 뿐인가?

내천명은 월급쟁이란 말인가?

더 슬펐다.... ㅜㅜ


결정타 오십견

엎친데 덮친다고 했던가

때는 2023년 11월 28일.

김장을 앞두고 어깨가 움직이지를 않는다.

내일 집에 내려가서 배추 400포기 김장을 해야하는데,

팔이 올라가지를 않고 극심한 고통에 잠을 잘 수가 없다

병원에 갔다.

오십견이란다.

누구나 나이 들면 찾아오는 병이니 잘 치료하라는 의사의 말.


미치겠다. 삼연타다.

노안에 전립선염에 오십견까지.

나는 확실히 늙었다.

그로부터 두 달간 손에서 일을 놓았다.

 

우선 어깨가 아파서 컴퓨터 작업을 못하니 글을 쓸 수가 없다.

의욕도 떨어진다. 박연폭포만큼 격하게 떨어진다. 다 싫다. 아무것도 하기싫다. 더 하기싫다.  

월화수목금금금 인생이 월화수 얼렁뚱땅 목금 인생으로 바뀌었다.

23년말에 내야할 책도 접었다.

24년에 내야할 책 기획도 잠시 미뤘다.

내 몸이 우선이다. 천명도 모르겠는데 어깨까지 나가고

여기서 더 큰게 터지면 나는 더이상 물러설곳이 없다.

내몸이 우선이다 ~~~~~~~~~~~~~~~~


주말에는 공기 좋은 곳에 간다고 북악산에 가거나,

맨발 걷기가 좋다고 해서 안산 청계산 맨발 걷기 길을 찾아다녔다.

흙길을 맨발로 걷는다.

청계산 살얼음 동동길도 맨발로 걸었다.

나는 늙었다 그러나 노병은 죽지 않는다. 오기로 걸었다.

마주 오는 사람들이 묻는다... "발안 시려요?"

속으로는 발이 깨질 통증이 찾아오지만 "견딜만하니 시원합니다"

맨발로 걸어도, 산에서 머물러도 허전하다.

내 천명은 무엇이었을까? 도대체 나는 무엇을 했어야 나에게 삶을 주신 그분에게 의미를 되돌려드릴 수 있단 말인가....



면역 그리고 빵

빵얘기의 서사가 길었다.

이곳저곳 몸이 아프니 면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장이 우리 면역을 결정한다. 마이크로바이옴의 종류와 양이 사람을 만든다.

사람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장내 미생물과 합성체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기능의학 서적을 읽고 감명받고 동조하고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제2의 뇌 장혁명. 깨끗한 장이 병을 치유한다, 면역력을 선물합니다. 등등이다.

가장 관심 있게 다가오는 부분이 장내 미생물과 관련해서, 당분과 밀가루의 영향에 관한 부분이다.

당과 밀가루는 프로바이오틱스의 최대 적중하나다는 주장.

우리 집에 같이 사는 빵순이, 그리고 그녀의 두 자녀.

고기와 빵을 밥보다 더 많이 자주 먹는 아이들에 생각이 미쳤다.

빵을 내가 직접 만들어야겠다. 건강한 빵. 글루텐 프리빵.

그렇게 51세 남자 홈베이킹을 시작했다.



빵이 탔다 검다 슬프다

빵 레시피를 찾아본다.

오븐이 필요하다.

집에 오븐 없앤 지가 몇 년째다.

나는 그래도 빵초보는 아니다.

5년 전에 외국에 살 때 파운드 카스텔라 피자 쿠키 이런 기본적인 것들은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간도 없고 오븐도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프라이팬 올리브오일 정도다.

유튜브를 뒤져서 노오븐 레시피를 찾았다.

바나나 팬 빵이다.

바나나를 설탕에 깔고 반죽을 팬에 올려서 만드는 빵이다

5분 영상이다. 쉬워 보였다. 바로 도전이다.

유튜브 영상대로 했다. 바닥이 탔다. 거뭇하다.

왜 중불에서 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지 않는 거지ㅜㅜ

여하튼 빵 비스름한 게 나왔다. 탄 부분은 칼로 긁어내고 사진을 찍는다



나의 첫 홈베이킹 빵이다

긴 여정의 첫 시작이다.

그런데 검다. 탔다. ㅎㅎㅎㅎ


 

그래도 빵이 되기는 되는구나

자신감을 얻는다

다음날 중불로 천천히 익혔다.

이번에는 안 탔다

그러나 그렇다고 특별히 낫지도 않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역시 빵이다.


자 이제 가능성을 확인했으니 다시 도전이다

이번에는 스콘이다.

프라이팬으로 만드는 스콘이 있구나

바로 도전이다.

다시 탔다.

검다.

그러나 스콘맛이 난다고 아이들은 말해준다. 고맙다.




물욕이 솟는다

이제 고민이 크게 든다

오븐을 사야 할까.

이 고민은 여기서 끝냈어야 한다.

홈베이킹이든 골프든 등산이든 캠핑이든 조금이라도 경험해 보면 안다.

장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을.


하여튼 51살 먹은, 지천명을 알아야 할 50대 남자의 슬픔은 다 사라지고

오직 고민하나 만 품은 하이에나가 되었다.

오븐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인생 최대의 고민에 휩싸였다.

오븐 오븐 오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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