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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Jul 22. 2024

[태백고원 여행 ] 1 낯섦에 위치하는 바람의 언덕

바람이 살아있는 백두대간 태백 바람의 언덕


태백고원, 바람의 언덕에 차를 세웠습니다. 아직 해가 조금 남아 있는데도 올라온 사람들은 금방 내려갔습니다. 장맛비가 내렸던 까닭일까요?


 백두대간 등성이를 이루고 있는 매봉산 바람의 언덕은 받아낸 빗방울 하나 남기지 않고 죄다 흘러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어디서 바람만 잔뜩 불러 모아 젖은 땅을 말리고 있습니다.



태백으로 오는 길은 참 멀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려오기는 했지만, 마음은 쾌청하지 못했습니다. 차창에 온몸을 부딪는 빗방울을 좀 낭만적으로 바라보려고 했습니다. 감성을 돋궈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빗방울은 와이퍼를 흔들어 닦아내야 하는 장애물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야를 차단당한 채로, 마음을 짓눌린 채로 달리는 차에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삼수령에서 바람의 언덕을 오르는 찻길은 쓸쓸하게 비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가쁜 숨을 헐떡이는 자동차. 모른 체하고 액셀만 짓궂게 밟아 올랐습니다. 그 휑한 채소밭을.  비를 걷어낸 하늘이 시나브로 파란빛을 끌어  모으고 있을 때, 바람은 더럽혀진 구름을 한 보따리 풀어놓고는  무표정하게 바람개비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바람의 언덕은 정말 황량한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음이 풀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어딘가 낯선 곳에 서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거대한 바람개비를 돌리고 나서 찢긴 바람 아래 서 있습니다. 상처 난 바람일지라도 시원합니다. 1,000 미터가 넘는 산등성이에 넓은 도로가 있습니다. 배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편의를 위해 낸 길입니다. 그래도 무단으로 걸어봅니다. 앞에 보이는 봉긋한 봉우리가 매봉산입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백두대간 종주할 때 걸어갔던 길입니다. 오늘은 매봉산 등성이에서 한밤을 지새우려고 합니다. 이제 화두話頭를 챙겨 들고 어두워지기만 기다리면 됩니다.


써놓은 글마다 생명을 불어넣지 못했습니다. 내 마음에 담기는 글이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영혼을 담지 못했습니다. 생각이 여물기도 전에 마구마구 쏟아 놓았던 것입니다. 알사탕 먹듯이 마음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궁굴리며 가다듬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황금알을 낳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거위의 배를 갈랐던 것이었습니다.



은퇴하면서 아름다운 황혼을 기대했습니다. 낯선 곳에서 기분 내키는 대로 한 달이든 두 달이든 마음을 풀어놓으려고 했습니다. 조금은 무질서한 걸음을 걸어보려고 했던 게지요. 자유. 온전하지 않더라도 오롯한 자유를 조금 누려보고 싶었습니다. 퇴임을 한 달 앞두고 코로나19가 세상을 휘저었습니다. 아주 맹렬하게.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사람들의 연결고리는 무참하게 떨어져 나갔습니다. 사람들은 집안에 갇혀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채 겨우 숨을 이어갔습니다. 자유는 없었습니다. 자유롭게 내딛겠다는 나의 무질서한 걸음은 가차 없이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상당히 기진맥진한 상태로 두 달 만에 을 쌌습니다. 묘한 기분이 흔들어댔지만, 가만히 생각하니 내가 꿈꾸던 자유였습니다. 카오스 Chaos 상태는 아니었지만, 내가 찾던 낯선 곳이었습니다. 여섯 달 동안 남양주 천마산 아래에서 객창감을 즐기며 재미나게 살았습니다.


숨을 쉬는 것조차 낯설다. 밤이 시나브로 내려오는 것도 어색하고, 불을 밝힌 놀이터를 차지한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조차 매끄럽지 않다. 집 앞 상가에 진열되어 있는 그 흔한 물건들까지 어쩌면 이렇게도 부자연스러울까. 굽이를 돌면 무엇이 있을까. 순댓국밥집은 어디에 있을까. 2번 버스의 종점에는 어떤 이야기가 살고 있을까. 저 산은 어떤 길을 내놓을까.

그렇다. 우리는 새로움을 맞고 있었다. '새 New'라는 관형사는 언제나 기대감을 더불고 다가왔고, 그것은 잔잔한 행복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늘 숨겨진 속살 같은 설렘의 느낌이 슬몃슬몃 곁을 맴돌았다. 늙은이들의 활력이었다.

                                                                                ㅡ  2021. 07. 03일 일기에서


간밤에 된통 심술을 부리던 바람을 달래 놓은

새벽은 스며드는 빛처럼 차창에 매달렸습니다. 밤을 보냈습니다. 어둠뿐인 바람의 언덕에서, 홀로.


개운합니다. 몸도, 마음도. 어둠이 걷히는 것을 차 안에서 바라보는 일은 차박車泊의 고갱이입니다. 좀 푸석푸석한 마음일 때 짓눌림에서 벗어나기 딱 좋습니다.



봄 풀들의 싹이 땅 위로 돋아나기 전에, 흙 속에서는 물의 싹이 먼저 땅 위로 돋아난다. 물은  풀이 나아가는 흙 의 길을 예비한다. 얼고 또 녹는 물의 싹들은 겨울 흙의 그 완강함을 흔들어서, 풀어진 흙 속에서는 솜사탕 속처럼 빛과 물기와 공기의 미로들이 퍼져나간다. (...)

풀싹들은 헐거워진 봄 흙 속의 미로를 따라서 땅 위로 올라온다. 흙이 비켜준 자리를 따라서 풀은 올라온다. 생명은 시간의 리듬에  실려서 흔들리면서 솟아오르는 것이어서 봄에 땅이 부푸는 사태는 음악에 가깝다.

                                                                                       ㅡ 김훈, <자전거 여행>에서



내 마음이 먼저 부서져 헐거워져야 새로운 미래가 열린다는 깨우침입니다. 나를 부수는 것이야말로 움켜쥔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낯섦에 위치하는 것. 그것도 마음을 여는 하나가 아닐까요. 홀로 여행, 차박 같은 것 말입니다.

바람을 맞으며 밤을 보내고, 김훈의 큰 울림을 받을 수 있어서 여간 다행이 아닙니다. 바람의 요정이라도 다녀간 것일까요.



바람의 언덕. 새벽부터 빛은 산산이  흩어졌습니다. 다시 비가 내릴 듯한 기운입니다. 비탈을 이루고 있는 고랭지 채소밭은 여전히 거친 돌밭입니다. 척박하고 황량한. 그래서 도저히 배추가 자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농부들은 그 너른 땅에 배추를 습니다. 북돋아 주고, 흠뻑 물을 주고 기다립니다. 농부가 뿌린 물은 김훈이 말한 것처럼 메마르고 거친 흙 속에 뿌리가 뻗어갈 길을 내겠지요. 그 길을 따라 배추는 스스로 몸을 키우고, 여물어갈 것입니다.



ㅡ배추를 품자. 척박한 바람의 언덕을 푸른빛으로 보듬는.



이른 아침 바람의 언덕을 내려갑니다. 검룡소. 한강을 이루어냈다는 은둔의 샘  검룡소의 새뜻한 느낌을 아금박스럽게 거두어보려는 셈속입니다.


태백고원에서 나는 또 다른 탐욕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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