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힘날세상 Sep 17. 2024

24 중추절 소묘

와인은 들었고, 아들은 레어로 구워 갈릭파스타, 치즈또띠아를 내놓았는데


수퍼문이라고,

30%는 큰 얼굴을 내밀 거라고 할 때

폭염은 기어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심통을 부린다.



ㅡ일요일에 갈게요. 토요일은 골프약속이 있어서. 가면서 마트 들러서 장 봐서 갈게요. 와인 한 잔 마시게요.


1인 가구인 아들은 혼자라서 자유롭게 놀 궁리부터 하고,


딸네 식구는 귀염둥이 손주들 앞세우고

들어섰고.,

몸 돌볼 겨를도 없는 사위도

어찌어찌하여 휴가를 얻었다고

한가득 들고 왔다.

어쨌든 잠시라도 보내준 국가에 감사하다.



ㅡ할아버지, 루미큐브 해요.

ㅡ할아버지, 배드민턴 치러 가요.

ㅡ할아버지, 탁구 치러 가요.

ㅡ할아버지, 오목해요.

ㅡ할아버지, 바둑 가르쳐 주세요.

손자는 하고 싶은 것도 많다.

ㅡ누니큐브가 뭐야?

ㅡ할아버지, 누니가 아니고, 루미큐브예요

ㅡ그래, 루미큐브가 뭔데?

ㅡ엄청 재밌어요. 근데, 머리를 써야 해요.



명절 휴가가 5일인데도 올 해는 집에서 보낸다.

딸네는 다음 달에 사위가 어렵게 육아휴직을 하게 되어 그렇고,

아직 미혼인 아들은 교과서 집필 때문에 발목이 잡힌 까닭이다.

어디서 보내든 가족이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즐겁다.



루미큐브라는 판을 벌였다.

이게 은근 중독성이 있는데, 고스톱보다도 흥미가 있다.


ㅡ할아버지, 그렇게 내면 안되거든요.

ㅡ같은 숫자는 서로 다른 색일 때만 내는 거예요.

ㅡ조커를 잘 이용해 보세요.


머릿속이 복잡한 까닭에 판단이 흐릿하다.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 기관총처럼 쏘아대야 한다. 명절에 자식들에게 할 말이 뭐겠는가.

결혼하라는 얘기는 해야하지만 쉽지 않다.

그래 기회를 잘 잡아 단도직입적으로 던져야 한다.



오늘은 와인으로 판을 벌인다. 아가들은 사과주스인데, 3학년 짜리 손녀는 화이트 와인이란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 방송댄스하는 얘기, 손자 체스대회 얘기, 장바구니 얘기, 해외여행 얘기.



ㅡ소고기는 레어로, 먹는 게 최고예요.

ㅡ이거 와인 비싼 거냐?

ㅡ막걸리도 좋더구먼.

ㅡ대만맥주 생각난다.

ㅡ다음 달에 남경 몽원이가 제주도에 온다는데.

ㅡ아빠, 비행기 한 번 타아지.

ㅡ10월 달에 마라톤 대회, 신청했다. 엄마랑.

ㅡ5km는 슬리퍼 신고도 달리지?

ㅡ할머니 저 똑똑한 기자상 받았어요.

ㅡ저희 선생님은 정말 재밌어요.

ㅡ송편은 깨를 넣은 게 맛있어.

ㅡ또띠아에 치즈, 새우 올리고 오븐에 돌리면 돼요.

ㅡ맛있다. 이거 한 장 만들어 저녁으로 먹으면 좋겠다.

ㅡ아빠, 심장 박동은 괜찮지?

ㅡ할머니, 더워요. 에어컨 좀 틀어요.

ㅡ18도로 맞춰요.

ㅡ가족 캠핑 한 번 가죠.


와인향은 좋고, 우리의 시간도 향긋했다. 내일은 보름달을 꼭 봐야겠다. 달빛에 젖은 월하노인을 만나야지. 꼭 따져야지.


올해 30%가 더 밝다는 수퍼문. 정말 가깝고 크고 밝게 보였다.


수퍼문은 하늘을 휘어잡았고,

아이들이 모두 제집으로 돌아간

중추절 밤.

달은 밝은데

올 해도 허전하다.


그래, 기다리자. 아들 녀석이 노오오오력하고 있다고 했으니.

이런 요리를 잘 만들면 뭐하냐고, 같이, 먹어줄 여자가 없는데.


아들에게 좋은 사람 만나기 위해

힘을 써보라는 말은 기어이 하지 못했다.


애타는 마음도 몰라주고

무심한 중추절의 밤은 홀로 깊어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23 폭염을 지나는 마음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